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미국 기업 문화에서 상사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대접을 받는 일은 드물다. 에어비앤비 코리아를 방문했을 때다. 한국 지사장님을 뵈러 갔는데 따로 '방'이 없어 깜짝 놀랐다. 누구든 원하는 자리에 앉아 근무하는 평행 구조. 일렬로 따닥따닥 붙어 있는 책상에 다른 직원들과 섞여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취재를 마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한국 임원들처럼 따로 방을 갖고 싶지 않으십니까?" 슬쩍 여쭈었는데 이런 문화를 오랫동안 경험하다보면 그런 생각이 안 든다고 했다. 옆에 있던 홍보 책임자는 "단독주택을 사옥처럼 사용하다보니 날 좋은 날이면 옥상에서 바비큐 하는데 지점장님을 위한 상석 같은 것도 없다. 잘 구운 고기를 접시에 담아 가져다 주지도 않는다. 그냥 그렇게 안 하는 게 문화다"며 웃었다. 에어비앤비 코리아 지사장이 얼마를 받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 연봉을 받으면 나도 아무 자리에서나 일할 수 있긴 하다. ^^
최근 해외에서는 호텔이고 공항이고 셀프인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를 잡아가는 듯 하다. 한국에서도 김밥천국이며 배스킨라빈스31까지 기계주문이 빠르게 정착되는 것 같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분들에게는 주문 조차 고역일 것 같아 마뜩치 않지만 '고객은 왕'이란 신봉, 그 가치를 떠받들다 보니 모두가 과도한 친절을 요구하는 그릇된 가치를 개선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최근 독일 출장을 다녀왔는데 아니나다를까 셀프 체크인 시스템이었다. 모니터에 관련 정보를 입력하자 객실 키가 아래쪽으로 톡 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먹는데 '역시나' 점원이 부족했다. 놀라지도 않았다. 커피 스테이션에 가서 직접 커피를 따라왔다. 빵을 먼저 먹어 접시가 깨끗하길래 그 접시를 그대로 들고 가 두번 째 음식을 담아왔다. 점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다 먹은 접시를 옆에다 밀어놓은들 빨리 치울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런 일로 계속 신경을 쓰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싶지도 않았다. 출장지나 여행지에서의 조식은 너무도 소중한 시간인데 그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왜 접시 안 치워주지? 왜 커피 안 갖다 주지? 신경쓰며 허비하기 싫었다.
일정을 마치고 뮌헨 공항에 가니 또 '셀프 체크인'이다. 발권도 스스로 하고 짐도 스스로 붙이는 시스템. 창구에 가서 보딩 패스를 받고 짐을 붙여도 되지만 줄이 길었다. '항공사 직원들은 대체 뭘 하는 거야? 자기들 권익만 있고 고객은 안중에도 없나' 짜증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에어프랑스 같은 곳은 자기네들의 권리를 위한 파업이 워낙 잦아서 '파업이 국가 스포츠'라는 말까지 있다. 그러면서도 짐 분실율도 높고 딱히 친절하지도 않다. 그렇게 수시로 파업을 하고, 일견 말이 안 되는 요구들이 끝내 관철되는 문화가 신기할 뿐이다. 처음에는 이런 얘기들을 반 우스갯소리로 했지만 요즘은 그런 곳이 워낙 많다보니 불평도 하지 않고 그냥 포기하는 심정으로 스스로 한다. 최근에는 나름 편하고 좋은 점도 발견하는 중이다. 긴 줄을 설 필요 없으니 체크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빠르면 10분, 길어봐야 30분. 출국장에서의 시간이 한결 여유로워지긴 했다. 인간적 터치라고는 없이(바로 이 지점에서 브랜드와 고객간의 '접점'이 없어진다고 스타벅스는 진동벨을 쓰지 않고 고객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모든 것이 기계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시스템으로 바뀌는 것이 건조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적어도 나는 받는 쪽, 너는 봉사하는 쪽으로 서비스문화를 이분화하고 은연중에 '갑질'문화를 조장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점점 편한 곳으로 무섭게 진화한다. 잡지에서 가끔 '서울에 살아 좋은 것'을 조사, 기사화하는데 빠지지 않는 것이 "보일러가 고장나도, 인터넷이 안 되도 하루만에 AS를 받을 수 있다. 밤 10시에 배송을 시켜도 다음 날이면 받아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주문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없이 편리하고 새로운 직업도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의 희생과 불편, 정신없이 바쁘고 고단한 노동을 깔고 들어가는 사회적 무심함, 조금 과장하면 사회적 폭력의 증거라고도 볼 수 있다. 퇴근 무렵 늦은 밤에 아차 하며 먹을거리를 주문하는, 모두가 여유없이 빡빡하게 살아가는 슬픈 자화상일 수도 있다. 그런 지점에서 한국에도 좀 '불편한' 서비스와 공간이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어떤 건 아주 천천히, 거의 눈치 챌 수 없을만큼 더디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웬만한 건 스스로 하고 호텔 종업원이건, 배달원이건, 학생이건 모든 사람은 다 '어렵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유럽에서 종업원에게 '여기요~'하고 손을 드는 것을 실례로 여겨 어지간하면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처럼. 잠시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아는 문화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