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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May 14. 2019

"난 이렇게 살아서 너무 좋아요"

구례 민박집 '산에 사네'에서 느끼는 심플 라이프

"아, 오랜만이에요. 내가 유O, 유O 기억하지. 특히 가O씨는 내게 너무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에요. 너무너무 반가워요."

애들 이름도 나왔고, 아내 이름도 나왔는데, 내 이야기만 없다. 아뿔싸...내가 그렇게 존재감 없는 사람이었던가.


구례에 있는 민박집 <산에 사네>는 우리 가족이 좋아라 하는 곳이다. 개울이 흐르고 밭이 드넓게 펼쳐지는 마을에 자리하는데 부지가 꽤 넓다. 개울이 흐르는 곳에서 좌회전을 해 들어가면 나오는 두번째 집인데 앞쪽에는 카페 겸 책보는 공간이, 그 옆으로는 방 두 칸과 공동 화장실이 있다. 시선을 정면으로 두면 또 한 채의 한옥이 보인다. 큰 방 2개, 각각 화장실이 딸려있다. 한옥과 한옥 사이에는 넓은 마당. 아이들은 공놀이 하면서 놀고 나는 마루에 누워 화단 구경을 하거나 저 앞으로 펼쳐진 산세 바라보며 논다. 볕은 따숩고 풍경은 넉넉하고 시간은 복되게 흐르는 것 같아 그저 좋다. 안쪽으로는 사장님 내외가 거주하는 집이 는데 이곳의 앞마당 역시 넓다. 텃밭에서는 상추와 고추가 자라 한쪽에서는 고사리며 엄나물이 일광욕을 한다.

이곳을 좋아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안 사장님 덕분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반짝반짝한 눈, 날쌔고 바지런한 느낌을 주시는 분인데 생기와 활력이 넘친다. 호호호 웃음도 많고 말씀도 재미있게 하셔 듣다 보면 박장대소를 할 때가 여러 번이다. "여기에 강동원이 왔었잖아요. 그런데 내가 못 알아봤요. 내가 막 좋아하는 타입은 또 아니야. 나는 좀 두툼한 남자를 좋아하는데 강동원은 얍상하자네. 그 유명한 사람을 못 알아보고 '어디서 오셨어요?'하고 물었다니까. 나중에 알게 됐는데 사람이 참 좋았어요. 착하기도 하고. 갈 때도 손을 몇 차례나 흔들어 주더라고요~" 우리 부부는 강동원이 어디 가서 "어디서 오셨냐?"는 질문은 처음 받아봤을 거라며, "엄청 신선한 질문이었겠다"며 웃었다.


사장님과의 대화가 즐거운 이야기는 툭툭 편하게 내뱉는 말씀들에 삶의 주관소신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사장님, 그런데 여기에 책을 이렇게 많이 가져다 놓고 늘상 열어 두고 다니시던데 그러다보면 분실되는 책도 많지 않나요? 컵이나 물건도 마찬가지고" 하고 물었는데 사장님 말씀이 이랬다. "그런   다 신경쓰고 있으면 내가 피곤해서 못 살아요. 책이든 컵이든 훔쳐가는 사람이 평생 멍에를 짊어지고 가는 거지 뭐. 나는 괜찮아요. 호호호"


이번에도 근사한 관점을 보여 주셨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바깥 사장님이 또 능력자였다. 구례의 슬로건이 <자연으로 가는 길>인데 공모전을 통해 뽑은 그 문장이 남편의 작품이란다. 산에 사네란 민박집 이름도 남편 분이 지은 거고. 자연으로 가는 길 공모전으로는 상금 100만 원도 받으셨단다. 그러면서 사장님이 하시는 말씀. "남편한테 그런 감성이 있어요. 촌놈이자네!" 


대화는 자연스럽게 사장님의 고향으로 이어졌다. 사장님 역시 촌사람이었다.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촌사람. "어릴 때부터 자연에서 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청보리 사이사이에 돌미나리가 있었는데 그것 캐며 놀고 했어요. 버들 강아지도 좋아라 하고. 지금도 봄이 되면 섬진강가로 봄 마중을 나가요. 언제는 청보리를 꺾어다가 집안 화병에 꽂아두었는데 엄마한테 혼났어요. 먹을 걸 꺾어다 놨다고. 하도 없이 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기억도 아주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어요. 같은 사건이라도 누군가한테는 힘들고 아픈 걸로 남고 또 누군가한테는 따뜻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는데 나는 좋게 기억이 되더라고. 이렇게 밀짚 모자 쓰고 밭일 하고, 자연 보면서 사는 게 내 꿈이었요. 지금 이렇게 살 수 있으니 너무 행복하지 뭐."

사장님이 얼마나 행복한지는 아침 밥상에서 증거처럼 드러난다. 손님들 밥 차리는 일이 고역일 수도 있지만 사장님은 내 새끼 밥 먹이듯 적극적이고 열심이다. 저번에도 각종 나물 설명 들으며 이 반찬 저 반찬 맛있게 먹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자, 여러분~ 나물 수업을 시작해 봅시다. 식사 하시면서 들으세요. 이건 키다리꽃다물. 나도 여기 와서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어요. 그리고 이건 명이나물. 삼겹살 집에 있는 거랑은 또 달라요. 이렇게 데친 건 또 처음일 걸요? 그리고 이건 엄나무순. 또 이건 박완서 소설 제목에도 나오는 싱아. 아주 쌉사름하면서도 맛있어요. 그리고 이건 돼지 감자. 가을에도 캐는데 나는 봄에 캐는 돼지감자가 훨씬 맛있더라고요. 봄의 땅 기운을 뚫고 나온 거라 그런 힘이  느껴져어요. 아스파라거스도 꼭 먹어봐요. 귀한 건지 알지요? 호호" 배부르게 밥을 먹고는 루콜라를 다듬으라고 시키더니 선물이라며 다 가져가라고 하셨다. 바람의 지휘에 따라 땡땡 들려오던 처마 끝 풍경 소리, 마당과 집 주변을 환하게 밝히던 볕을 보며 먹는 아침밥은 정말 맛있었다.


사장님을 보면서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상을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아니, 막상 그렇게 살면 정말 행복할까? 생각했다. 그것을 갖기 위해 놓았던 손 안의 것들이 계속 생각나진 않을까? 놓친 것 계속 반추하며 되새김질해 아내에게 "그만 좀 해" 소리를 자주 듣는 나는 놓친 것들이 아쉬워 사장님처럼 명확하게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고보면 원하는 바에 따라, 잔가지를 다 쳐내고 명확한 삶을 사는 이들은 얼마나 대단한 지. 삶이란 밭을 일구는 가장 중요한 자원은 용기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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