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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May 08. 2019

오늘 연차는 목적에서 멀어져 아름다웠네

글쓰기에 왜 목적이 있어야 했을까

동네에서 사 온 김밥을 먹으며 따뜻한 볕을 느끼고 있자니 아, 연차가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
금융권에 있는 친구들 중엔 연차를 쓰지 않고 연말에 돈으로 보상받는 애들이 많던데 이런 행복감을 꾸준히 느낄 수만 있다면 그 돈 안 받더라도 연차를 택하겠다(그 친구들은 연봉도 억대를 넘던데 그러면 연차수당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겠지? 받아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네).


이곳은 동네에 있는 청운 문학도서관이다. 창밖으로는 아담하게 조성한 대나무 숲이 보인다. 그 위로 좀 더 무성하고 짙은 색깔의 나무가 겹쳐지고. 빛이 일렁이고 산들산들 바람이 분다.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써야겠다 생각한 뒤로 많은 것들이 글쓰기의 소재로, 글쓰기의 장소로 바뀌는 중이다. 한 달 전쯤인가, 이곳에 처음 다녀간 이후로 책도 보고 글도 쓰며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면 참 좋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오늘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가방에 김밥과 노트북을 챙겨 넣고 아침 10시에 이곳에 왔다.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김밥집에서 종이에 둘둘 말아준 김밥을 도시락 통에 담아온 일이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김밥을 먹고 있자니 뭔가 산뜻한 기분이 든다. 둘째가 쓰던 헬로키티 물병도 어찌나 귀엽던지 인스타용으로 사진도 찍었다.


오자마자 전투적으로 글을 쓰려했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면 나는 이미 뭐가 됐어도 됐겠지. 카뮈의 <페스트>도 꺼내 읽고,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뒤적거리고,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도 갖다 놓았다. <페스트>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는 거의 첫 장부터 멋진 문장도 발견했다. 페스트 문장부터? "어떤 한 도시를 아는 편리한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하나 더? "사람이란 일단 습관을 붙이고 나면 그날그날을 힘들이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법이다." 글쓰기가 습관이 돼 아침이든 밤이든 즐거운 글쓰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는 정말이지 근사하고, 세상사를 꿰뚫는 듯한 문장이 나와 감탄했다. 헤밍웨이의 글은 아니고 영국 시인인 존 던의 말이다.


"어떤 사람도 그 혼자서는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니.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 땅은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다. 한 곳이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고. 그대의 친구나 그대의 영토가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그만큼 나를 줄어들게 한다. 나는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시인이란 종종 '감성의 눈'을 지닌 사람이라 일컬어지지만 가만 보면 이 세계를 얼마나 넓은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지. 좁게도 보고, 넓게도 보고, 감성으로도 보고, 이성으로도 보는 이가 시인 이리라. 그 한 문장, 한 문장은 읽는 동시에 여러 생각을 떠올리게 할 만큼 공감의 폭이 컸다. 서촌이 개발되면서 다슬기 해장국집과 카페 키오스크를 포함해 내가 좋아했던 곳들이 하나씩 사라졌는데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이 이런 거였구나. 나의 영토가 씻겨져 나간 거였구나.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출장을 갔을 때였다. 루카란 지역의 작은 숲 속 별장 같은 곳에 머무르며 종탑과 포도밭이 펼쳐진 길을 산책할 때였는데 저 멀리 마을 한편에서 댕~댕~ 맑고 영롱한 종이 울렸더랬다. 시간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을 테지만 그때 그 순간의 종소리는 나를 위한 것처럼 느껴졌다.


도서관 바깥쪽에 마련된 휴게 의자에 앉아 김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최소 글 두 편은 쓰려고 도서관에 왔는데 오늘도 틀렸고만. 왜 이렇게 안 써지는 거야?!' 브런치에 만들어 둔 매거진 타이틀이 떠올랐다. 그중 하나가 <균형 잡기의 기술>. 아빠와 직장인으로, 집과 가정에서, 회사원과 온전한 나 사이에서 조금이나마 균형 잡는 법을 정리해보자고 생각해 이름 붙인 건데 5월의 볕과 느긋한 풍경에 한 번 마음이 풀어지고 나니 뭔가 목적이 있는 행위는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왜 에세이를 쓰면서도 '이렇게 쓰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까?' '이런 키워드를 제목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고심했던 나날이 떠올랐다. 피천득 선생이 말한 대로 수필은 마음의 산책인데 나는 내가 주인공인 산책에 자꾸만 관중석을 욱여넣고 있었던 셈이다. 목적 없이 걸으며 생각지 못한 생각을 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얻는 것이 산책의 묘미인데 자꾸만 흥행을 염두에 두고 주제와 목적을 정비한 것 같았다. 바보 같으니라고. 


그러다 이 글을 쓴다. 그래 이거야! 신나는 마음으로 메모하고 저장해 놓은 <작가의 서랍> 속 아이디어가 10개가 넘는데 주제도 없고, 목적도 없는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굳이 주제를 달자면 여기에 붙인 부제대로 에세이에 왜 목적이 있어야 했을까, 정도가 될 터다.


생각 없이 타이핑을 하면서 뿌옇게나마 주제가 떠오른 셈인데 내가 공감하고 좋아했던 에세이 중 상당수가 어떤 목적이 없었던 듯하다. 박완서의 에세이도 그렇고, 김연수와 피천득의 그것도 그렇다. 한 치 두 치 꼼꼼하게 계산해 이렇게 쓰면 감동을 주겠지, 웃음을 주겠지, 인생의 재미를 전달하겠지 하지 말고 그저 마음이 가는 곳과 그 주변의 풍경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느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전부일지도. 글쓰기에서도 개성은 남을 의식하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일지 모르겠다.   


오랜만의 연차다. 애 아빠가 되고, 업무가 많아 하루 연차도 마음 편히 낼 수 없는 환경에 있다 보면 많은 경우 연차에 목적이 생기게 마련이다. 사실 오늘 연차도 올해 초등학생이 된 둘째를 위해서다. 아침 8시~8시 40분까지 학부모들이 돌아가며 횡단보도 앞에서 교통 도우미를 하는데 오늘이 우리 아이 차례였고 아내가 일이 있다며 부탁을 하길래 그래 알았어~ 했던 거였다. 교통 도우미가 끝나고 나면 청운 문학도서관으로 올라가 글을 써야지! 했던 거고.


원래의 계획대로 하루가 풀리지도 않았고, 목적했던 두 편 대신 생각지도 않았던 이 한 편의 글만 얻게 됐지만 나름 만족스럽다. 목적지향적인 사람이라면 이 하루를 실패로 결론지을 수 있겠지만 인생 세옹지마라는 것쯤은 나잇값으로 안다. 목적을 이룬 오늘이 길게 봤을 때는 아등바등 바쁘게 보낸, 그저 그런 또 하루의 연장일 수도 있는 거다.


오후 4시까지는 집으로 내려가야 한다. 장모님이 오이소박이 담그는 법을 가르쳐 주신단다. 그때까지 읽고 싶으면 읽고, 글 쓰고 싶으면 쓰고, 이것저것 다 팽개치고 밖에 나가 볕이나 쐬고 싶으면 또 그렇게 해야지. 너무 목적목적, 계획계획, 시간시간 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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