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버티기, 이런 날도 있어야 다시 버티지
1. 좋은 날엔 뷰~~리풀 하고 오버하기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였어요. 홈 스테이를 했는데 안주인이 뷰~리풀을 입에 달고 사셨지요. 햇빛 쨍쨍, 날씨가 좋은 날엔 밥Bob(제 영어 이름이었습니다), 잇츠 뷰~~~리풀 아웃사이드it's beautiful outside 하고 감탄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분이 나를 집 밖으로 내 보내려고 저러나 언잖기도 했습니다. 실제 "Bob, you have to go out~" 하며 눈살을 지푸리기도 했어요. 밥, 이렇게 좋은 날에 집에서 뭐 하니, 안돼 안돼 나가서 놀아야지, 하는 표정이었지요. 실제로 그녀는 날 좋은 날을 만끽했습니다. 애들과 자전거를 타고, 실내 체육센터에서 테니스를 치고, 롱 비치로 드라이브를 다녀왔지요. 저도 몇 번 동행을 했는데 50대가 넘은 양반이 테니스는 왜 이렇게 잘 치며 드라이브 내내 뭘 저리 행복해 하는 건지 놀랍고 의아했습니다.
은연 중에 옆에서 보는 것이 무섭다더니, 한국에 돌아온 후 저도 날 좋은 날에는 뷰~~리풀 하고 감탄을 합니다. 날씨가 좋을 수록, 기분이 좋을 수록 뷰~~~~~~의 발음이 길어지지요. 누가 들으면 정신병자인줄 알 거예요^^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 드라이브를 할 때는 차문을 열고 뷰~~~~리풀 하고 외친 후 이즌 isn't it 하고 덧붙입니다. 외국 사람들은 그 말을 정말 많이 쓰던데 영어에 능숙한 양 그렇게 부가의문문을 써 먹는 것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한 술 더 떠 아름다운 초록 자연을 볼 때면 룩 앳 댓Look at that, 오 마이 갓Oh my god 하고 오버를 합니다(천성인 듯도 합니다). 좀 살아보니 이렇게 오버하는 날도 있어야 버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분이 안 좋고, 묵직한 고민이 들어차 있을 때는 저런 말 자체도 하지 않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단하고 힘든 날도 많기 때문에 한번씩 기분이 좋고, 풍선이라도 된 것 처럼 기분이 붕붕 뜰 때는 미적지근하게 보내지 말고 화끈하게 오버를 하며 즐겨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즐거움을 모아 놔야 또 버틸 수 있는 듯요.
2. 잘 때는 입꼬리 올리기
어느 자기계발서였을 겁니다. 고단하고 상처받고 힘든 하루였을지라도 잠을 잘때만큼은 그래도 좋았고 고마웠던 일을 생각하며 '그래 이런 일도 있었어' ' 그래 이 정도면 오늘 하루도 괜찮았어' '그래 오늘 하루가 최악은 아니었어' 라고 되뇌이며 흐뭇한 심정으로 입꼬리를 올리고 자라는 겁니다. 안 좋았던 건 생각하지 말고 밝았던 순간만 생각하라면서요. 나름 말이 되는 것 같아 그 날부터인가, 그 다음 날부터인가 침대에 누워 잠을 잘 때면 귀여운 척 입꼬리를 올려 봅니다. 처음에는 좋고 고마웠던 순간들도 생생하게 생각나더니 시간이 조금 지난 후부터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떠오르지도 않고 그냥 습관처럼 입꼬리만 올라가더군요. 재미있는 건 그렇게 입꼬리만 올렸을 뿐인데 기분이 썩 꽨찮아 진다는 겁니다. 오늘 하루도 뭐 괜찮았네 싶고, 안 좋은 일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건 뭐 내 잘못이 아니야', '그 사람 때문에 귀한 내 시간 망치지 말고 잘 자자' 하는 마음도 들더라고요. 그러고보면 머릿 속이 맑고 깨끗한 채로 푹 자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호주 수영 선부 이언 소프한테 "어떻게 사는 것이 럭셔리한 삶 같느냐"고 물었을 때 "별 거 없지 뭐. 밤에 푹 잘 자는 삶이 럭셔리한 거 아니야~"하고 대답했는데 현답이었습니다.
물론 기분이 정말 안 좋고, 큰 고민이 있을 때면 입꼬리도 안 올라갑니다. 아예 입 꼬리 올리고 자야지, 하는 생각 자체가 안 들죠. 분노와 걱정이 뇌에 꽉 들어차 있으니까요. 그런 날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버리는 날 셈 치는 수밖에요. 저도 마찬가지인데 스트레스가 덜한 날, 그래도 행복했던 날은 입꼬리를 올리고 자려 노력합니다. 그 표정을 아무도, 나 스스로도 못 본다는 것은 다행이네요. 불편할 것 같습니다.
3 주말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산책하기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가, 저는 자연이 좋습니다. 주말에는 거드름도 피우고 이불 속에서 뭉기적대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데 저는 빨리 일어나 빨리 산에 가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볕이 뜨거워지기 전에, 숲이 청신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볕이 순할 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마음이 바빠집니다. 오늘도 아침 6시 30분 쯤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대충 옷을 걸쳐 입은 후 집을 나섰습니다.
숲과 산은 늘 아름답습니다. 생기와 활력으로 가득차 있지요. 특히 이른 아침에 가면 새 지저귀는 소리가 오케스트라 소리처럼 들립니다. 산책하는 이를 어설프게 위로하려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리듬대로 또 하루의 아침을 맞지요. 산을 오르다보니 그 무던하고 꾸준한 활력이 좋더라고요.
그렇게 산책을 다녀와 노곤한 상태로 책을 보거나 설핏 낮잠에 빠져들 때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입니다. 이 순간을 위해 산책을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CBS 라디오에서 강석우가 진행하는 클래식 방송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들으며 라운지 체어에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행복한 기분이 됩니다. 김민식 PD를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그 분도 주말 아침 이른 산책의 효용에 대해 말씀하시더군요. 아침 일찍 산책을 다녀오면,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구나 하는 보람과 안도감, 딱히 한 것도 없이 하루를 보냈구나 하는 자괴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거지요. 몸이 힘들고 주중 계속 야근을 한 날은 아침 일찍 못 일어나지만 최악은 아니다, 싶은 날엔 어떻게든 산에 오르려고 노력합니다. 걸으며 생각하는 건 사람을 벽으로, 구렁으로 몰아세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은 듯 합니다. 바람도 느끼고, 햇볕도 받다보면 화와 걱정으로만 똘똘 뭉친 뇌에도 틈새가 생기고 그 틈새 덕분에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폭주기관차는 안 되는 듯 합니다.
PS. 이런 습관, 이런 기술들도 다 좋은 순간에 하는 자기기만일 수 있습니다. 진짜 힘들고 진짜 괴로울 땐 아무런 기술도 작동하지 않지요. 그럼에도 이 방법 저 방법을 시도하며 평정심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생 아닐까 싶습니다. 허지웅이 그랬던가요. 인생은 버티는 거라고. 버티다보면 좋은 날이 온다는 건 누군가에겐 거짓말이니 행복할 때 최대한 행복하자고, 그렇게 내성을 키워놓자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