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언제쯤 질풍노도의 시기를 졸업할 수 있을까?
며칠 전 후배가 회사에 놀러왔습니다. 브런치를 아주 열심히 하는 후배인데 글을 그렇게 잘쓰는 줄 몰랐습니다. 눈에 쏙쏙, 뇌에 쏙쏙 박히는 문장과 사례를 버무리며 어찌나 글을 잘 쓰던지 브런치 초보인 제가 노하우를 전수 받고 싶어 놀러 와, 점심 한 번 먹자 카톡으로 말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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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브런치에서 발행하는 매거진 중 하나가 <질풍노도의 30대입니다만> 입니다. 이런 저런 고민이 많고 방황도 하고 있다, 는 의미이지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후배에게 그랬습니다. "질풍노도는 40대에도 계속 돼.어쩌면 죽는 날까지도 계속되지 않을까?"
실제로 그렇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잘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회사를 나가는 순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할 것 같아 불안합니다. 어느 날은 잠도 안 오지요. 그럴 확률이 높은 것이 잡지 기자로 오랫동안 살아온 저에겐 기술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글을 정말 잘 쓰느냐...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남의 얘기를 했지 내 얘기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글은 기사체로 흐르기 쉽고, 나만의 콘텐츠는 없다고 느끼지요. 애들은 커가고, 별 볼 일 없는 미래를 살 것 같습니다. 지인들은 만나는 사람도 많고, 글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할 일이 많으냐,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하지만 자꾸만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점점 자신감을 잃는 과정이 아닐까 싶네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아 답이 없구나 40대 역시 수시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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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함께 글을 쓰는 연대의 힘이 크더군요. 브런치에서 처음 만난 이들이 성장의 비결이란 주제를 잡고 각자 정해진 요일에 글을 올렸답니다. 직업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니 저마다 생생한 이야기가 나왔고 공감하는 이들도 생겨났지요. 혼자 할 수 없을 땐 그렇게 함께 하는 것도 방법이더군요.
낯설고 어쩌면 불편한 사람들끼리의 약속이니 쉽게 깰 수도 없고, 어떤 날은 억지로, 또 어떤 날은 신명이 나서 글을 쓰다보니 그렇게 습관이 들고,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구나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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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한 팀에서 몇 년간 일을 했는데 그녀에게 그런 추진력과 실행력이 있는 지 몰랐습니다. 그녀는 몸이 치푸둥하면 요가를 했고, 영어 실력이 부족한 것 같으면 학원에 나갔습니다. 최근에는 유튜브를 시작했고, 혼자 쓰는 글은 덜 재미있고 계속 해 나가기도 힘드니 그림 그리는 친구와 얘기해 친구는 그림을 그리고 후배는 글을 쓰더군요. 스스로를 위한 선물이 필요하다고 느끼거나,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겠다고 생각드는 날에는 의식처럼 고기를 굽고요. 그런 루틴이 글을 반짝이게 했습니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지요. 발리 같은 곳에 가서 요가하고 글 쓰고 유뷰트하다 또 끌 쓰는 게 후배의 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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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를 만나 점심을 먹은 후 행동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아, 이대로 괜찮을 걸까. 하는 물음에 가장 구체적인 답변을 주는 것은 일단 행동하는 것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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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마나 있는 재주란 글을 쓰는 거고, 그나마 특별한 건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니 그 시간들을 기록해보면 어떨까, 책 한 권 내는 걸 올해의 목표로 잡고 생각나는 대로, 틈틈히, 하지만 열심히 글을 써보자! 하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사실 그런 고민은 10년 전부터 했지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시간에 맞서 격렬히 투쟁해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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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많고, 살 맛이 안 나고, 답을 모르겠을 때는 마음 터 놓을 누군가를 일단 만나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지요. 어떻게 살아야 할 지는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답이 많은 물음.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누구를 만나면 어떻게든 '힌트'를 얻을 확률이 높은 것 같습니다.
"무언가에 공포심을 느끼는 때란, 그것이 잘 보이지 않아 짐작하기 어려울 때다. 밤길을 걷는 것이 무서운 것은 길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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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쓰케 마사노부가 쓴 <앞으로의 교양>에 나오는 글입니다. 40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이 나이에도 미래는 여전히 캄캄하지만 그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어야만 보이는 것이 있고, 또 손에 쥘 것이 있다는 걸 행동하는 후배를 만나 알게 됐네요. 그러고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문제 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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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의 30대, 여전히 질풍노도의 40대....50대에도, 60대에 여전히 질풍노도일 수 있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이나마 조금 또렷해지고, 그 방향을 향해 느린 걸음으로라도 천천히 움직이는 내일이 됐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