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레인베이글 Oct 06. 2019

왜 너는 남의 이야기만 하냐는 사람들에게

-나의 태도를 바꾼 말들

잊을 만 하면 한번씩 고개를 치켜 드는 컴플렉스가 있다. 나의 이야기를 잘 하지 못한다는 것.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등에 없고 이런저런 대단한 경험을 한 것도 아니고, 학창 시절 온갖 기행을 저질러봤던 것도 아니라서 딱히 나 자신에 관해 할 말이 없다. 지금 하는 일에서 멀리 떨어져 뿌리로 내려가면 갈수록 더 할 말이 없어진다.


이런 태도가 사는 데 큰 지장은 되지 않는다. 내 안쪽을 보여줄 기회가 그리 많지도 않다. 정작 고민은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부터 시작됐다. 그간 적지 않은 글을 발행했는데 구독자수와 공유 수는 거칠고 경사진 길을 리어커로 밀고 가는 것처럼 조금씩, 힘겹게 늘 뿐이다. 왜 이렇게 수치가 오르지 않을까? 고민을 하다 그간 쓴 글을 돌이켜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혹 남의 이야기가 많아서는 아닐까?' 직업이 에디터라 취재 이야기, 만난 사람 이야기가 많았는데 반응이 시원찮다보니 그 사람 이야기는 그 사람이 가장 잘 할텐데 이렇게 이야기를 옮기는 게 과연 생생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싶었다.

페이스북 친구로 인연을 텄다가 우리 회사 다른 매거진 파트에 에티터로 들어와 가까워질 뻔 했던 동갑내기 기자가 다. 서로 좋아요도 누르고 댓글도 달며 호감도 내보이고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탐색도 했다. 취재한 이야기, 소소한 가족 이야기를 하는 내 계정이 잔잔한 호수 같다면 그의 계정은 파도 치는 바다 같았다. 그는 마감이 끝나거나 고민할 거리가 많아 머리가 복잡할 때면 공사현장에 갔다. 시쳇말로 노가다. 처음 그 피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잡지업계그렇듯 수컷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남성적이고, 호쾌한 캐릭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먼지 묻은 운동화, 그 옆에 놓인 곡괭이가 놀라우면서도 신선하게 와닿았다.


그의 피드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차를 몇 대씩이나 갖고 있는 듯 했고 또 어떤 날은 오토바이를 탔다. 단순히 부자라서 차와 오토바이가 많기 보다는 타고 싶은 차, 갖고 싶은 차를 중고차가 됐든, 신차가 됐든 어떻게든 구매하고 타 볼 만큼 타본 차는 다시 파는 구조인 듯 했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사진도 자주 올라왔다. 긴 머리칼을 미역처럼 휘날리며 산소통을 매고 물질을 하는 그는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는 쾌남 같았다. 그는 에디터로 일하면서도 늘 사업을 병행했다고 한다. 호기심이 생기는 분야가 있으면 끝까지 경험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 자동차 정비사 자격증,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을 포함해 이런저런 자격증도 여럿이었다. 그런 사람이 올리는 피드는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였다. 생생했다. 드라마틱했고 역동적이었다. 나의 피드에는 없는 뜨거움이 있었다.

그가 언젠가 내 피드에 남긴 말이 흉터처럼 남았다. 취재 뒷 이야기, 만난 사람 이야기, 읽은 책 이야기를 하는 내 피드가 영 싱겁고 무료하게 느껴졌는지 직접 부딪히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뉘앙스로 머리 말고 몸으로 사는 을 추천하는 내용이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고 저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으니 난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와는 그저 그런 사이가 됐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내 피드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다. 알고보면 영 재미없는 사람임을 확인받은 듯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후로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간접경험을 옮기는 일은 그만 하고 싶었다. 잠수부처럼 깊이 들어가 생생하고 특별한 빛깔장면을 여주고 싶었지만 딱히 하고 싶고, 궁금한 대상이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열심이었던 브런치는 개점 휴업에 들어갔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마음을 달리 먹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회사 월례회의에서 <대통령의 글쓰기> 로 유명한 강원국 씨를 모신 날이다. 그는 글쓰기의 효용과 보람을 설파하면서 글이 잘 써지지 않거든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 된다고 했다. 아, 또 저 얘기구나...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별다른 이야깃거리도 없고 마땅히 쓸 글감도 는 자신의 직업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본인이 만나고, 처리하고, 기안을 올린 서류는 오롯이 본인 거라는 얘기였다. 광고 회사 직원은 많지만 그 모델과 그 콘셉으로 그 현장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됐든 오렌지쥬스가 됐든 음료수를 홀짝이며 광고를 찍은 사람은 그 사람 뿐이라는 거다. 직업이 없다면 그것 역시 본인만의 이야기. 하루를 어떻게 무슨 생각을 하며 보냈는지는 다른 사람과 결코 같을 수 없다.


메마른 마음밭에 꽃씨가 날아와 느닷없이 을 피워낸 기분이었다. 과연 그랬다. 이어령 선생을 인터뷰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걸까요? 묻고, 현대무용가 차진엽을 만나 아니쉬 카푸어 작품 정말 좋지 않아요? 하며 흥에 겨워 대화를 나눈 사람도 나였다. 종이 잡지를 하다 디지털 미디어로 넘어와 팔자에 없는 수치 관리를 하며 제 때 화장실도 못가고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나였다. 내 이야기였다.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그 마디마디 생각하고 고민하고 느끼고 흥분하는 것은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

이제 마음을 다시 먹는다. 왜 너는 남의 이야기만 하느냐는 자책은 그만. 남의 말에 지나치게 흔들리는 것도 그만. 나의 태도를 바꾼 말들이라는 주제로 브런치에 매거진을 발행해 내게 큰 울림을 준 인터뷰이의 말들을 하나씩 소개해볼까? "나는 이렇게 살아서 정말 행복해요" 라고 말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리해까? 머릿 속에서 활발한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오랜만에 글쓰기 공장에 전원 버튼이 들어오고 제법 빠른 속도로 기계들이 돌아가는 기분이다.


이 세상 모든 종교와 철학의 궁극적 목표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아는 것.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자신 안에서 평정심을 갖는 것. 왜 너는 남의 이야기만 하느냐는 질문과 눈길을 언제든 또 받겠지만 이런 자각의 경험을 통해 그것이 오랜 동안 나의 직업이었고 또 잘하는 일이라고 차분하게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40대, 행동하는 30대에게 배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