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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Jun 15. 2019

100번을 들어도 좋은 음악들

집에 있는 오디오의 CD 플레이어가 반 고장이다. CD 를 넣어야 하는데 한 번 닫히면 잘 열리지를 않아 한쪽 끝을 포크로 들어 올리거나 해야 간신히 열린다. 음악이 듣고 어 오디오를 켰는데 이번에는 아예 음반이 들어있지 않는다. 젓가락과 연필을 이용해 간신히 덮개를 열었다. 이번에 또 닫히면 잘 안 열릴테니 두고두고 오래 들을 음반을 넣자. 뭐가 좋을까. 잠시 고민하고 선택한 음반은 요요마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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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이 음반을 참으로 많이 들었다. 좋은 날은 좋은 날이라 좋았고, 우울하고 힘든 날은 위안받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첼로는 날카로운 고음을 내는 바이올린과 바위처럼 묵직한 콘트라베이스 사이에 있다. 날카롭지도 둔중하지도 않은 딱 좋은 소리랄까. 여름과 겨울 사이, 아니 초가을과 늦가을 사이, 볕이 두터워지고 만물이 서서히 고요해지는 그 계절의 선율 같다.

요요마는 깊은 사람처럼 보인다. 6세에 리사이틀을 열고 데뷔하고 7세에 줄리어드음악학교에 입학할 만큼 어릴 때부터 천재 첼리스트로 유명세를 탔지만 꾸준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음악 챕터를 써 나가는 느낌을 준다. 베를린필, 빈필하모니 등 세계적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그이지만 사회적 활동도 열심이다. 최근에는 미국과 멕시코 접경에 있는 두 도시, 라레도와 누에보를 오가며 연주회를 갖고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맞아 점점 분리되는 두 나라를 향해 마음의 연결을 강조했다고 한다.


요요마와 실크로드 앙상블은 그의 인생 후반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벌써 20년 넘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음악과 소리를 발굴, 클래식과 접목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첼로에 장구 소리가 섞이고, 노련한 첼리스트의 음악에 신예 연주자들의 박력 넘치는 소리가 합쳐진다. 그런 사람이 연주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음악은 언제 들어도 따뜻하다. 강물처럼 마음을 적신다. 다른 악기는 전혀 섞이지 않고 첼로 하나로만 만들어내는 단순하되 풍성한 선율. 바흐의 음악은 늘 성스러운 면이 있는데 그런 음악과 요요마의 내면은 궁합이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  


말이 끝나는 곳에서 음악이 시작된다고 했던가. 피곤한 마음으로 집에 와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어떤 말로도 대신하지 못할 위안을 받는다. 시끄러웠던 마음이 잔잔해진다. 잡지사 기자일 때 음반 담당을 한 적이 있는데 아무리 바빠도 잠시 새로운 음반을 들으며 집중하는 시간을 갖곤 했다. 기사를 쓰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음악을 듣고 있으면 잠시 다른 시공간으로 짧은 여행을 떠난 듯 했다. 이어폰만 꽂으면 연결되는 다른 세상. 음악 듣기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일지 모른다. 

요요마의 음반과 잠시 갈등을 했던 음반이 하나 있다. 러시아의 국보급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슈베르트, 베토벤 음반. 2장의 CD로 되어 있는데 특히 첫번째 슈베르트의 음악을 좋아한다. 이유는 간결하고 시적인 터치 덕분이다.  이 거장은 강약, 특히 약의 파트를 감질나리만치 섬세하게 표현한다. 어떤 부분은 연인이 조심스레 서로를 애무하듯 너무도 부드럽게 건반을 눌러 마치 내가 그 손길의 대상이 된 것처럼 감미로운 기분을 느낀다. 몇 번이나 마음그 속으로 아...탄성을 내뱉은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곧 폭풍우처럼 빠르게 타건을 하는데 그럴 때는 또 전혀 다른 음악이 시작된다. 몇몇 베토벤의 음반을 들어봤는데 그렇듯 드라마틱한 선율은 경험하지 못했다.


그 실력이 놀라워 그의 이력을 찾아다. 16살에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을 차지하고 연주에만 집중하는 은둔자적 성격으로 러시아 밖으로는 어지간해서는 나가지 않는 사람. 이견을 좁히고 토론을 하는 시간마저 아까워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하지 않고 피아노 소품을 연주한다고. 마디마디를 완벽하게 장악하며 극도의 긴장감과 서사를 만들어 낸다는 게 그를 향한 평론가들의 공통된 의견다.


데미안 라이스의 앨범 <O>도  반복해 듣는 음반이다. 영화 <클로저>에 삽입된 그 유명한 곡 'The Blower's Daughter가 실린 앨범이다. 데미안 라이스는 뭐랄까. '한'의 서정을 아는 사람 같다. 대부분의 곡이 마른 바람처럼 쓸쓸하고 구슬프다. 그의 콘서트를 두 번 본 적이 있는데 몸통에 기타 하나 둘러 매고 무대에 올라 2시간 넘게 홀로 노래하고 연주하면서도 청중을 사로잡았다. 관객을 무대에 올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여행하면서 경험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면서. 보헤미안 기질이 있는 그는 어느 날 훌쩍 이탈리아 토스카나 같은 곳으로 떠나 방랑객처럼 떠돌다 다. 이런저런 노동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그런 세월이 목소리와 음표에 어떤 방식으로든 다 들어간다고 믿는다. 독특한 향기가 되어.


곧 이사를 가는데 좋은 오디오와 스피커 한 조 꼭 갖고 싶다. 음악의 힘은 평생 유효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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