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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미쪼 Aug 19. 2024

슬렁슬렁 기술

<주제 글쓰기-기본기>

'기본기'

이번 주제를 받고는 나에게 부족한 다양한 분야의 기본기들이 떠올라서 머리가 좀 아팠다.

내가 살아온 방식의 대부분이  '슬렁 슬렁', '어영부영', '혼나지 않을 만큼만.'이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시험공부할 때 교과서를 한번 쑥 훑고 문제집을 들입다 푼다.

제대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문제를 많이 푼다.

그러면 걸리는 것들이 있다. 이 문제집 저 문제집에서 나오는 비슷한 것들..

그럼 그게 중요한 것이구나 하고 그것만 공부한다.

그렇게 시험 보면 중간 이상은 간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교 1등 아이와 같이 공부하다 음악 책 저 귀퉁이 아래에 있는 작은 글씨 하나까지 외우는 모습을 봤다.

"뭐 그런걸 외워? 선생님이 강조하지도 않았잖아."

"그러다 여기서 시험이 나오면 어떡해?"

"야, 그런 선생님이 어딨냐? 중요한 걸 시험에 내야지. 그런 걸 내는 선생님이 이상한거야."

그 아이는 역시 100점을 맞았고 난 맞지 못했다. 이유는 말안해도 알 것이다.

이상한 문제를 냈다며 선생님 흉을 보면 봤지 내 공부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딱 그만큼만..중요한 것만..혼나지 않을 만큼만..하는게 편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공부를 이렇게 했었으니 악기도..운동도..어학도..이런 방식으로 늘 슬렁 슬렁 넘어갔다.

그러니 만족할 만큼의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합리화는 또 얼마나 잘 하는지..

이게 초등교사에게 딱 적합한 특징이라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야기했었다.

딱 그만큼만..조금 할 줄 알 정도만..초등 아이들에게 보여줄 정도만 다양한 분야의 것들을 섭렵하면 초등교사의 자질을 갖춘 것 아니냐며..


지금까지는 슬렁슬렁 이 기술 정도만 있으면 사는데 큰 지장은 없었고

오히려 여기 조금 저기 조금 발을 담그나보니 경험치가 올라가 아는 척 하기도 좋았고 뿌듯함에 만족감을 느끼며 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야할 중년이 되니..

그 동안의 슬렁슬렁 기술로 넘어갔던 것들에 아쉬움이 남는다.

영어를 매일 매일 지금까지 잡고 있지만 제대로 된 문법 체계로 공부하지 않았더니 중학생 수준의 것들에서도 헤매고 있고..

우쿨렐레도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잘하는 모임에 들어가 스트로크 하나도 제대로 물어보지 못하고 어영부영 5년을 열심히 쳤더랬다. 

근육 운동을 병행하며 꾸준히 연습했어야 할 러닝도 무대포로 뛰기만 했더니 결국에는 다리에 무리가 와서 대회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생겼다.


꾸준히 작은 목표를 성취하는 기쁨을 누리자는 인생 모토에 맞추어 열심히 살았지만, 스스로 알고 있다.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걸..

싫어도 꼭 해야 하는 우쿨렐레 손가락 연습...

학창 시절에 익혔어야 할 영어 기본 문법 익히기...

모든 몸쓰는 것의 기본이 되는 기초 근육 운동..

이 기본기들을 그냥 넘겨 지금의 만족스럽지 못한 내가 되었다.


이렇게 자조적으로 글을 썼으니 

"그래 그럼 알겠어 이제부터라도 내가 한번 열심히 기본기를 다져보겠어!"

라고 앞에 있는 것들을 시작하면 좋을텐데..


역시나 나는..

"그럼 일본어 공부를 시작해보자! 일본어 기본기를 다져보는 거야!"

라고 또 새로운 거 할 궁리만 한다.

사람은 쉽게 안변한다.

변하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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