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글쓰기-자전거>
"오늘 아침에도 타고 왔잖아."
결혼식에 가느라 유난히 곱게 차려입은 후배가 말했다.
우리 약속도 꽤 긴 거리를 걷는 거였고,
헤어지면 남자 친구와 약속이 또 있고
다음 날에는 당일치기로 바다를 보러 강원도까지 간다고 했다.
체력도 좋다 감탄하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뱉은 말은
오늘 새벽에 일어나 자전거를 20km 타고 결혼식에 다녀왔다는 거다.
나도 아침에 일어나 독서 모임도 하고 오고 나름 열심히 오늘 하루를 보냈지만
지금은 예쁜 원피스를 입고, 새벽에 쫄쫄이 바지를 입고 멋지게 mtb자전거를 타는 180다른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멋있어서 나도 자전거를 타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건강 유튜브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나이가 들수록 허벅지 근육이 중요하다여서..어떤 운동을 해야 허벅지가 튼튼해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체를 낮게 숙이고 헬맷을 착용하고 빠르게 달리는 날렵한 모습.
이거다...
하지만 난 지지리도 자전거를 못탄다. 운동 신경도 없는데다 불안도 심해서
바퀴가 커서 발이 바닥에 닿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견디겠다.
(수영도 이와 비슷한 까닭에 별로 하고 싶지가 않다.)
물론 내가 자전거를 처음 시도해본 건 아니다.
휴직했을 때 공유용 자전거를 타고 수변 공원을 돌기도 하고,
근처 아울렛까지 가서 구경을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공유용 자전거가 전동으로 바뀌었고 페달을 한번 밟으면
웅~나가버리는 전동 자전거는 내 불안을 증폭시켜 타기를 포기했다.
옆에 있던 선배는 자전거를 왜 못타냐며 어렸을 때 자전거 타고 놀지 않았냐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했다.
그 시절엔 왜 그리 자전거 도둑이 많았는지 우리집 대문을 열고 가져가는 대범함을 보인 도둑 때문에 자전거를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솔직히는 자전거 타는게 무서웠어서 잃어버려서 잘됐다 생각했는 지도 모르겠다.
내 몸 상태와 몸쓸 운동 신경을 모두 알고 있는 후배는
"언니 미니벨로라고 있어. 그건 바퀴 작아서 바닥에 발이 닿으니까 안무서워서 괜찮을거야."라고 처방을 내려주었다.
미니벨로..
이름만 들어도 뭉게 뭉게 구름처럼 가볍게 날아갈 것만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행과 헤어지고 미니벨로 검색에 들어갔다.
'mini+Velo(프랑스어로 자전거)'
라는 뜻이며 휠이 20인치 이하인 자전거를 말한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어린이 자전거처럼 생겼는데 말끔한 정장을 입은 멋진 남자가 출근할 때 타는 모습이 보인다.
자전거를 타라고 계속 부추겼던 다른 이가 있었는데 그녀에게 물어보니 본인 자전거도 미니벨로라며 자전거 세계에 들어온 나를 환영했다.
당근에서 적당한 자전거를 찾아주었다. 곧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생각에 이미 내 허벅지가 김종국이 된 것 마냥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주인과 연락해서 몇 시간 뒤에 찾으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렸다는 어이없는 말을 했다.
말했다면 미리 갔을텐데 이런 똥매너가 없다.
나랑 만날 운명이 아니었다 생각하고 다른 자전거를 검색했다.
접이도 되고, 기어도 더 많은 더 고급진 자전거가 내 생각보다 살짝 높은 가격에 나와있었다.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지금 당장 너무 타고 싶은데 가격 때문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철인3종을 하는 남편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 정도면 괜찮다고 그냥 사라고 했다.
주변에 자전거 전문가들이 이리 많을 줄이야.
접이식이라 차에도 실을 수 있고 흰색 색상도 먼저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마음씨 착한 주인은 나를 만나기 전에 공원에서 바람도 넣고 시운전을 하고 있었다.
접는 방법도 하나 하나 알려주고 악세사리들도 덤으로 주었다.
아까 그 못난 자전거를 만났다면 요 아이를 만나지 못했을거다.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달려가기에는 조금 먼 거리, 운전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거리는 자전거로 딱이었다. 예전같으면 주차가 무서워 안갔을 바닷가 거리도 자전거로 휘 다녀오니 금방이었다.
달리기하면서는 힘들어서 보지 못했던 주변 풍경도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면서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툴러서 풀숲에 얼굴을 박기도 하고 사람들 많은 곳에 엉덩방아를 찧어서 큰 멍도 들었다.
그래도 정말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익숙해져서 실수하는 횟수가 줄고 있다.
지난 번 가족들 모임에서 자전거보다 달리기가 빠르니
얼른 쫓아가겠다고 했던 길을 이제는 자전거로 나도 갈 수 있다.
달리기를 하면 다시 돌아올 길을 생각해서 집 근처 5km정도만 갈 수 있었는데
자전거를 타니 반경이 10km 이상으로 넓어졌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숨은 공원과 아름다운 뷰를 가진 명소들이 많았는지 자전거를 타기 전에는 잘 몰랐다.
<아무튼 바이크>에서 작가는 바이크를 타면서 한계에 있었던 장소들을 넘어서서 인생의 반경이 넓어졌다고 했다.
아직 겁쟁이인 나는 바이크는 죽었다 깨도 못타겠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공감할 수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치한이 나타나면 뛸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살짝 생겼는데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치한이 나타나도 도망가는 건 문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한이 자전거를 타고 오면 문제는 좀 달라지겠지만..)
나이가 들며 도장깨기 하듯 이것 저것 하나씩 시도해보는 삶이 참 재미있다.
이제 또 어떤 도장을 깰지 레이다를 켜고 물색해봐야지.
그럼 내 삶의 반경은 한뼘 더 넓어질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