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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위한 제도" 악용 의혹에 당국 긴장

by 이콘밍글

고무보트로 460km 건너온 중국인들
무사증 제도 악용해 밀입국 시도
해안 경비 허점 드러나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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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고무보트 제주 밀입국 / 출처 : 연합뉴스


제주 앞바다를 가로지르며 460km를 항해한 고무보트 한 척이 한적한 해안가에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90마력 엔진과 수십 개의 기름통, 그리고 6명의 중국인을 태운 채 말이다. 관광 활성화를 위해 만든 무사증 제도의 허점을 노린 치밀한 밀입국 작전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새벽 해안가에 나타난 의문의 고무보트


지난 8일 오전 7시 56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해녀탈의장 근처 해안에서 주민이 발견한 고무보트는 단순한 표류물이 아니었다.



배 안에는 낚싯대 2대와 구명조끼 6벌, 중국산 빵과 비상식량이 가득했다. 20리터 기름통 8개에는 연료가 온전히 채워져 있었고, 빈 기름통과 일부만 사용한 기름통까지 총 12개나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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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고무보트 제주 밀입국 / 출처 : 연합뉴스


이 고무보트의 주인들은 지난 7일 오후 중국 장쑤성 난퉁시에서 출발해 밤새 바다를 건넌 중국인 6명이었다. 이들은 도착과 동시에 뿔뿔이 흩어져 제주도 곳곳으로 사라졌다. 해경과 경찰의 추적이 시작됐고, 8일과 9일 2명이 연이어 붙잡혔다.



10일에는 서귀포경찰서에 직접 나타나 자수한 중국인 1명이 추가로 검거됐다고 제주지방해양경찰청이 발표했다. 현재까지 3명이 체포된 상태지만, 나머지 3명은 여전히 도주 중이다.


뚫린 바다의 방어선, 무력화된 감시망


시속 60km로 달려도 7시간 넘게 걸리는 험난한 항해를 마친 고무보트가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제주 해안에 당도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제주 해상 경비를 담당하는 해군과 해경, 제주해안경비단의 감시망이 완전히 뚫린 셈이다.



사건 당일 제주 서쪽 해상에는 대형 경비함정 1척이, 남쪽 해상에는 또 다른 1척이 배치돼 있었다. 북부와 남부, 동부 앞바다에는 중소형 함정들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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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고무보트 제주 밀입국 / 출처 : 연합뉴스


해경 관계자는 “경비함정 1척이 담당하는 제주도 서쪽 해상만 해도 한중잠정조치수역까지 2만 8000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며 “야간에 위치추적장치도 없는 고무보트를 발견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더 심각한 것은 제주해안경비단의 열영상감시장비 3대마저 무용지물이 됐다는 점이다. 고무보트가 해안가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어떤 이상 징후도 포착하지 못했다. 첨단 감시 장비들이 한순간에 무력화되면서 해안 경비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브로커 조직 개입한 치밀한 계획범죄


체포된 밀입국자들 대부분이 과거 국내 불법체류 전력을 가진 인물들로 밝혀지면서 이번 사건의 조직적 성격이 부각되고 있다. 정상적인 입국 방법이 막히자 이들은 브로커에게 수백만 원을 건넨 후 목숨을 건 밀입국을 시도했다.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넉넉한 연료와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휴대전화를 꺼둔 채 밀입국을 감행한 점에서 치밀한 사전 계획이 엿보인다. 경찰과 해경은 현재까지 밀입국자 3명과 조력자로 추정되는 중국인 여성 2명을 검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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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고무보트 제주 밀입국 / 출처 : 뉴스1


이번이 첫 고무보트 밀입국 사건은 아니다. 2017년부터 제주 해안을 통한 밀입국 시도가 반복돼 왔으며, 최근에는 브로커 조직의 개입으로 더욱 조직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광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무사증 제도가 오히려 밀입국의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30일간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는 제주의 특례 제도가 불법 체류를 노리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입국에 성공할 경우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지만, 조직적 범죄로 판명되면 더욱 엄중한 처벌이 기다린다.



해경은 “도주 중인 밀입국자 3명을 신속히 검거하기 위해 중국해경국과 협력하고 수사 인력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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