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 후속조치 / 출처 : 연합뉴스
미국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가 일본에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일본이 지난 4일 미국과 무역합의를 끝내며 오는 16일부터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춰받기로 확정된 반면, 한국은 여전히 25%의 고율 관세를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 시장 점유율 11%를 기록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한 지금, 10%포인트 차이나는 관세 격차는 치명적 불리함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 7일 미국 워싱턴으로 향한 한국 통상 실무대표단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와 상무부가 지난 7월 30일 구두로 합의한 내용의 명문화를 요구하는 가운데, 핵심 쟁점마다 이견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관세협상 후속조치 / 출처 : 연합뉴스
한국은 당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다. 이에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던 25%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했지만, 아직 서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 측은 한국이 제시한 투자협력 펀드에 대한 구체적인 운용 방식과 이익 배분 방안을 문서로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조선업에 1500억 달러, 반도체 등 전략산업에 2000억 달러를 투자하되 직접 투자는 5% 수준으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보증으로 채우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미국은 더 높은 비율의 직접 지분 투자와 전액에 대한 재량권을 요구하고 있다. 투자 대상 선정 주도권도 자국이 갖겠다는 입장이고, 투자 이익의 90%를 미국이 보유하겠다는 조건까지 내세우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은 지난 8일 “3500억 달러 펀드 운용 방안을 놓고 한미 간 협상을 수십 번 했다”며 협상 과정의 복잡함을 드러냈다.
한미 관세협상 후속조치 / 출처 : 연합뉴스
일본이 미국과 맺은 합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한국과의 접근법 차이가 선명해졌다. 일본은 5500억 달러라는 더 큰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지만, 미국에 사실상 모든 주도권을 넘겨줬다.
아카자와 경제재생상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서명한 양해각서에 따르면, 투자처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천한 곳 중에서만 선택할 수 있다. 투자위원회는 미국 측 인사로만 구성되며, 약속한 투자를 충분히 이행하지 않으면 관세를 인상할 수 있는 조항까지 포함됐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백지수표를 제공했다’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김 실장도 “일본에 제시된 문안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 중에 누가 그 문안 그대로 서명해야 한다고 생각하겠나”라며 “우리는 절대 그런 문안으로 서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 자동차업계가 처한 상황은 심각하다. 현대차 그룹이 2024년 미국에서 150만 대 이상을 판매하며 토요타 다음가는 경쟁자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관세 격차는 곧바로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한미 관세협상 후속조치 / 출처 : 연합뉴스
같은 품질의 차량이라도 일본차보다 10%포인트 높은 관세 부담을 안게 되면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 부담이 커진다. 이는 시장 점유율 감소는 물론 국내 자동차산업 전반의 생산과 고용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낮은 관세 혜택으로 미국 시장 점유율을 늘려가는 동안, 한국은 높은 관세 부담으로 경쟁력을 잃어가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크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수동적으로 피해를 해소한다는 입장보다는 미국과 정면 돌파를 통해 공생하며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정부는 조선업 협력 등 한국만의 전략적 강점을 활용해 협상에서 주도권을 되찾아야 하는 중대한 시점에 직면해 있다. 이번 실무협상이 한국 자동차업계의 미래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