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형 스파크/출처-쉐보레
올해 국내 완성차 5개사의 경차 신차 판매량이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중고차 시장에서는 경차가 판매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례적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차량 선택 기준 변화와 모델 부족, 실내 공간 선호 등이 경차 신차 부진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반면, 경기침체로 인한 실속 소비 확산은 중고 경차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기아·한국지엠·르노코리아·KG모빌리티 등 국내 완성차 5개사의 2025년 1월부터 10월까지 경차 판매량은 총 6만 64대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8만 2천485대)보다 27.3% 감소한 수치다.
이 추세라면 올해 연간 경차 판매량은 약 7만 대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국내 경차 판매 집계 이래 가장 낮은 수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캐스퍼/출처-현대차
판매 모델 자체도 크게 줄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국산 경차는 현대차 캐스퍼, 기아 모닝과 레이(레이EV 포함)뿐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요 모델로 꼽히던 쉐보레 스파크는 생산이 중단돼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에 따라 2022년 13만 3023대, 2023년 12만 3679대를 기록했던 경차 판매는 지난해 9만 8743대로 10만 대 아래로 내려앉았다.
업계에서는 경차 신차 모델 출시 부재와 소비자 트렌드 변화가 이 같은 부진을 초래한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2021년 캐스퍼, 2023년 레이EV 이후 신형 경차는 출시되지 않았다.
여기에 모델 노후화도 영향을 미쳤다. 매년 3만 대 이상 판매되던 캐스퍼는 올해 1∼10월 6725대에 그쳤다. 캐스퍼의 전기차 버전인 캐스퍼 일렉트릭은 소형차로 분류돼 경차 통계에서는 제외된다.
경차 판매 부진은 한국 소비자 특유의 차량 선택 기준에서도 기인한다.
한국은 유럽이나 일본과 달리, 같은 가격이면 더 큰 차를 선호하는 성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족 단위의 이동이 잦은 문화적 배경 속에서 넓은 실내 공간이 중요시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모닝/출처-기아
실제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같은 외형의 차량이라도 실내 무릎 공간과 머리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설계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와 기아 차량은 외국산 차량보다 넓은 실내 공간을 갖춘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징은 좁은 공간을 가진 경차에 대한 기피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연비 측면에서도 경차의 경쟁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소비자들은 일반적으로 경차가 연비가 좋을 것으로 여기지만, 실제 성능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반면 중고차 시장에서는 경차의 인기가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중고차 플랫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중고차 실거래 대수 기준으로 기아 모닝이 1위, 쉐보레 스파크가 2위, 기아 레이가 4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경차 3종이 전체 판매량 상위 5위 내에 포함되며 신차 시장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2025 모닝/출처-기아
업계는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 등으로 차량 구매에 있어 가성비를 우선 고려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점을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특히 보험료와 유지비가 낮은 경차는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중고차 구매자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다.
이 같은 경향은 해외에서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일본 시장에서 ‘인스터’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며, ‘2025~2026 일본 올해의 차’ 최종 후보 10개 모델에 포함됐다.
인스터/출처-현대차
경차 신차 시장의 침체와 중고차 시장에서의 반등은 소비자 성향과 시장 환경의 변화가 자동차 수요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업계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