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4 GT-Line/출처-기아
기아가 북미 시장을 겨냥해 추진하던 전기차 출시 계획이 전면 재조정에 들어갔다.
EV4와 전기 픽업트럭 등 전략 신차들이 모두 보류되거나 지연되면서 현대차그룹의 북미 전동화 전략 자체에 제동이 걸린 모습이다.
고율의 수입 관세와 전기차 수요 둔화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기아는 사업성 검토와 일정 조정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기아는 ‘2025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북미 시장 전용 중형 전기 픽업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해당 프로젝트는 추진이 멈춘 것으로 나타났다.
EV4/출처-기아
25일(현지 시각),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 카스쿱스 등 외신은 기아가 준비하던 EV4 세단과 전기 픽업트럭의 미국 출시가 관세 문제로 인해 차질을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아 미국법인 마케팅 부사장 러셀 웨이거는 “EV4와 향후 픽업트럭의 운명은 관세 안정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EV4는 이미 출시가 여러 차례 연기된 상태이며, 전기 픽업 역시 내부 검토 단계에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기아는 처음에 이들 모델을 무관세 조건을 가정해 사업 타당성을 검토했으나, 현재 미국이 한국산 수입 차량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수익성 확보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웨이거 부사장은 “관세가 15%인지 25%인지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사업성을 평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EV4와 전기 픽업이 멈춘 가운데, 기아는 소형 SUV 전기차 EV3에 대해서는 계획대로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EV4/출처-기아
EV3는 미국 내에서 비교적 수요가 높은 소형 SUV 수요를 고려해 우선 순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 역시 관세 영향을 완전히 피해가진 못할 전망이다.
기아는 EV3와 EV4 모두 4만 달러 이하 가격대를 목표로 했지만, 공급망 이슈와 수입 관세로 인해 가격 전략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웨이거는 “가격과 공급 가능성은 여전히 평가 중이며 연방 세액공제 종료로 인한 수요 위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전기차 시장은 연방 세금 혜택 축소 이후 판매 비중이 급감했다.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내 전기차 판매 비중은 10%에서 4% 수준으로 떨어졌고, 시장 자체가 재정비되는 중이다. 기아는 이러한 불확실한 시장 흐름 속에서 EV3의 정확한 수요 예측도 어려운 상황이다.
기아가 북미 시장에 투입할 계획이었던 전기 픽업트럭은 현재 계획이 사실상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타스만/출처-기아
당초 올해 초 공식 발표됐던 프로젝트였지만, 다시 초기 검토 단계로 되돌아갔다. 웨이거는 “포드 F-150 라이트닝조차 가격 변동과 생산 중단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기아 역시 전기 픽업 출시 여부를 신중히 따져보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의 이른바 ‘치킨세’로 불리는 픽업트럭 25% 수입 관세는 전기 픽업의 북미 진출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웨이거는 “이러한 관세 환경에서는 ‘타스만’과 같은 전기 픽업 모델 출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EV4는 올해 초부터 생산을 시작했으나, 미국 출시 시점은 여전히 미정이다. 기아는 EV4의 캐나다 출시를 2026년으로 보고 있지만, 미국 시장에 대한 일정은 관세가 해결되기 전까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기아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약 8개월간 관세 부담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버텨왔다. 하지만 이 같은 전략이 장기적으로 유지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웨이거는 “다른 브랜드들이 가격을 인상하면서 판매가 둔화된 사례가 있다”며, 기아도 가격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타스만/출처-기아
기아의 미국 내 생산기지인 조지아 공장은 일부 전기차 모델을 다른 내연기관 차량 등으로 전환해 생산하고 있으나, 생산 전환의 유연성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 내 판매 모델 수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사태는 기아에 국한되지 않고, 현대차그룹 전체의 북미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북미 시장에서 ‘높은 상품성 대비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경쟁력을 앞세워 점유율을 높여왔다. 하지만 수입 관세가 장기화되면 이러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EV4/출처-기아
업계는 기아가 EV4와 전기 픽업의 현지 생산 전환, 출시 지연, 또는 일부 모델 철수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내부 조정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기아는 “중장기적으로 북미 시장에 경쟁력 있는 전기차 포트폴리오를 갖추겠다는 전략은 변함없다”며, 관세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