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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점 노렸나..” 사각지대 파고든 테슬라·GM

by 이콘밍글

‘운전자 책임’ 기술, 인증은 면제
미국産 자율주행, 규제 비껴 상륙
국산차만 제자리… 구조적 차이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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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X/출처-테슬라


미국의 자율주행 기술이 한국 도로에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과 GM의 ‘슈퍼크루즈’가 연이어 국내 시장에 진입하면서, 운전대에서 손을 떼는 ‘핸즈프리’ 주행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술은 정부의 별도 승인 없이 도입됐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자율주행 단계별 인증 제도의 차이가 그 배경으로 지목된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같은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고도 상용화를 미루는 상황과 대비되며, 구조적인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테슬라 FSD·GM 슈퍼크루즈, 한국 도로에 ‘상륙’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완전자율주행(FSD·Full Self-Driving)’ 기능을 지난 23일 한국에 정식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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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S/출처-테슬라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방식으로 제공된 이 기능은 미국에서 생산된 HW4 사양 ‘모델 S’와 ‘모델 X’ 차량에 적용 가능하며 옵션 가격은 900만 원대다. 한국은 미국·캐나다·중국·멕시코·호주·뉴질랜드에 이어 일곱 번째로 FSD 도입 국가가 됐다.


앞서 테슬라는 12일, 서울 시내에서 촬영된 시험 주행 영상을 SNS 플랫폼 ‘엑스’(X·옛 트위터)에 게시했다. 영상 속 차량은 운전자 개입 없이 한강공원 인근의 출입구, 지하도로, 좁은 도심 골목길을 주행해 관심을 모았다.


테슬라는 이 기능을 ‘감독형’ 자율주행 시스템으로 소개하며 운전자가 항상 전방을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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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드 IQ/출처-캐딜락


같은 시기, 제너럴모터스(GM)도 레벨 2 자율주행 기술 ‘슈퍼크루즈’를 탑재한 캐딜락 전기 SUV ‘에스컬레이드 IQ’를 국내에 공식 출시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이 기술이 도입되는 국가다.


GM 측은 “슈퍼크루즈 국내 도입을 위해 약 100억 원을 들여 한국 도로 환경에 맞는 고정밀 지도와 OTA 서버를 구축했고, 라이다(LiDAR) 기반의 차선 단위 매핑으로 곡률, 버스전용차로, 공사 구간까지 반영했다”고 밝혔다.


자율주행 ‘레벨 2+’, 인증 없이도 진입

이들 기술이 별도 승인 없이 한국 도로를 달릴 수 있는 배경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있다.


FTA에는 미국산 자동차 중 미국 안전기준(FMVSS)을 충족한 차량에 한해, 연간 5만 대까지는 한국의 안전기준(KMVSS)을 면제해주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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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FSD/출처-테슬라


여기에는 자율주행 기술도 해당한다. 자율주행은 국제 기준에 따라 ‘레벨 0’부터 ‘레벨 5’까지 나뉘며 FSD와 슈퍼크루즈는 모두 운전자의 개입을 전제로 한 ‘레벨 2+’ 수준에 해당한다.


이 단계는 가속, 제동, 조향을 시스템이 수행할 수 있지만, 운전자는 전방을 계속 주시해야 하며 사고 책임도 운전자에게 있다.


국내에서는 레벨 2까지만 자기인증 방식으로 도입 가능하며 전방 주시 의무가 면제되는 ‘레벨 3’ 이상의 기술은 국토교통부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레벨 3은 주행 중 운전자가 눈을 떼는 것이 가능해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며 “레벨 2는 운전자가 계속 주시해야 하기 때문에 별도 승인이 없어도 도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산차만 ‘발 묶인’ 자율주행 기술

이와 달리 국내 완성차 업체는 같은 기술을 두고도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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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90/출처-제네시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제네시스 G90과 EV9에 레벨 3 자율주행 기술 ‘HDP(Highway Driving Pilot)’를 적용하겠다고 예고했지만, 현재까지 상용화 일정은 불투명하다. 회사 측은 ‘내부 사정’이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으며 홍보자료 일부를 삭제하는 등 혼선도 빚었다.


현대차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의 진화형인 ‘SCC2’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고, 기아도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하면 경고음을 줄이는 ‘HDA+’ 기술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기술 모두 국내 적용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의 HDP는 고속도로 등 일정 조건에서 차량이 조향을 맡는 레벨 3 기술로, 도입 시 제조사가 일정 부분 책임을 지게 된다”며 “레벨 2보다 훨씬 까다로운 인증 요건과 보험 구조 때문에 상용화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자율주행 기술 관계자도 “FTA의 인증 면제 조항을 활용한 미국 업체들의 선점으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같은 기술을 보유하고도 시장 진입이 늦어지고 있다”며 “현 제도는 사실상 국내 업체에게만 규제 장벽을 부과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자율주행 사고 시 ‘운전자 책임’, 법적 분쟁 우려도

외산 자율주행 기술이 빠르게 도입되는 가운데,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는 여전히 운전자에게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FSD나 슈퍼크루즈처럼 운전자 개입이 전제된 기술은 사고 발생 시 제조사가 아닌 운전자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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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9/출처-기아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기술에 의지하다 보면 운전자의 감독이 느슨해질 수 있고, 사고가 나면 사망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며 “국내에서도 소송이 대거 발생할 수 있으며 전방주시 태만이나 안전거리 미확보 등의 사유로 운전자에게 큰 책임이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는 FSD 사용이 가능한 HW4 탑재 차량이 국내에 약 900대 수준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술이 상륙했지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차량은 아직 한정적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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