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식이

허무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친구

by 윤슬하

피식이는 허무 위에서 조용히 앉아 나를 보고 "…푸흡" 하고 웃는 아이다.

되살이 대륙 & 허무평원 출신으로 감쟈월드 B4층 , 되살이와 수이 사이에 살고 있다. 주로, 무표정 + 피식 웃음 그리고 말보단 숨소리로 말한다.

감정의 무게가 너무 커질 때, 그 감정이 나를 짓누를 때 무심한 듯 한 줄기 웃음을 뿜어내어
고요한 해방을 주는 존재이다.

내가 철학적인 허무(?)에 빠질 때마다 뒤에서 “푸흡” 하고 웃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ㅎㅎ

허무를 깨뜨리기보다, 허무 위에 조용히 앉아 작은 파문을 퍼뜨리는 피식이는 허무이를 무력화시키는 작지만 강한 친구다.


피식이의 몸은 은은한 연보랏빛 구름처럼 몽글몽글하고, 가운데엔 작고 투명한 ‘허무의 알’이 둥둥 떠다닌다. 내가 보기엔 제법 허무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허무이는 아닌 것 같다! 그치만 은근 기다리기도 하는 것 같긴 하다.)

얼굴엔 표정이 거의 없지만,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가 있어 항상 “피식 직전”의 미소를 띠고 있다.

등에 작은 의자를 달고 다니는데, 본인의 말로는 나를 앉히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거라고 한다.

음.. 어떤 느낌의 친구냐면,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주는 친구이다.
감정 처리 방식이 말 대신 “푸흡”, “피식”, “…?” 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감정 친구들이 살짝 당황해한다. 그런데 또 신기하게 그 반응이 심각한 분위기를 아주 살짝 뒤틀어 작은 웃음으로 순환의 문을 열게 한다.


아마 관계 회복 능력 “그래도 웃을 수 있잖아.” 를 보여주는 존재인 것 같은데, 감정이들 사이에서 갈등 조정도 매우 잘한다.

어제는 내가 "나는 모든 걸 뛰어넘을 거야" 하고 선언했는데, 곧이어 "근데 피곤하니까 오늘은 눕자" 할 때 피식이 등장해서는 "푸흐…"하고 가버렸다...

또 내가 철학적으로 진심과 허무를 토론하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작은 쿠션 들고 앉아서는 "피식."하고 웃었다. 피식이 반응에 가끔 진지모드가 풀려버리고 그냥 에이 살아있음 됐지 싶어진다.

허무 내성력 99로 허무이가 와도 피식 웃고 넘긴다. 그래서 허무이는 피식이가 웃으면 조용히 스르르ㅡ하고 사라진다.
감정 순환 개입력도 매우 높아서, 심각함을 풀고 다시 흐름을 트이게 한다. 존재 유머력 90 으로, 존재 자체가 아이러니한 웃음인 아이다. 언어 최소사용지수 도 MAX!!!로 대사 없이 존재 자체로 의미 있다.

피식이가 주로 하는 말은, “......푸흐” “살만해졌구나.”

(가끔 아주 작게) “됐어. 이 정도면 살만하잖아.”

“그래도 웃음 나오네. 그러면 아직 살아있네.” 이런 말들이다. 정말 말도 안 되게 허무한 순간, 터지는 작은 웃음의 아이. 이 정도면 내가 사라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살아있는 게 어이없어서 웃을 때 그때 피식이가 곁에 있다.


무표정 쿠션을 들고 다니며 심각한 얘기 중간에 던진다. 제법 성격이 있다. 피식 방울을 내뿜는데 공기 중에 튕기며 퍼지는 작은 웃음의 모양이다. 되살이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다니며 내가 너무 멀리 가면 보여준다. 거기엔 “숨은 쉬었니?”, “밥은?”, “울었어?”, “조금은 웃었어?” 이런 현실적인 것들이 적혀 있다.


피식이는 허무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 대신 허무 위에 조용히 웃음 하나 올리는 존재다.


그래서 내가 “이제 좀 살만해졌나 봐 ㅎㅎ” 하고

피식 웃을 때 그 옆에서 같이 웃고 있던 애가 바로 이 피식이다.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은 순간,
모든 게 다 무너져 내렸어도,
그 사이에 웃음 하나가 번진다면
그게 바로 한 줄기의 숨. 피식이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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