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랫동안 혼자 상황을 해결하려 했을 때 생긴 아이
과해석이는 불안한 사람이 아니라, 설명받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에게서 생긴 감정이다. 어른들이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고, 분위기로 눈치를 봐야 했던 상황. "왜?"를 물으면 답 대신 회피나 화가 돌아왔을 때, 말과 행동이 자주 어긋날 때, 뇌는 이렇게 배웠다.
"말은 불완전하다. 진짜 정보는 말 사이에 있다."
이게 과해석이의 시작이었다.
과해석이는 작은 어린아이만 한 크기에 존재감은 작지만, 눈은 유난히 동그랗고 크다. 항상 반짝이는데, 그 반짝임이 설렘이 아니라 경계다. "혹시...?"를 말하는 눈.
한 손엔 늘 돋보기를 들고서 사소한 말, 표정, 말끝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그걸 잘 놓지 못한다. 내려놓으면 뭔가 놓칠 것 같기 때문이다.
몸은 연한 회색 + 연보라 빛으로 완전히 어둡지도, 밝지도 않다. 불안과 지성의 중간색이다. 말랑하지만 차갑지 않고, 따뜻이 않아주면 가볍게 떨린다.
과해석이는 늘 항상 한 발 뒤에 서 있다. 대놓고 앞에 나서진 않는다. 대신 이렇게 속삭인다.
"이 말, 그냥 넘어가도 돼?", "아까 그 표정 봤어?", "혹시 너 상처받을까 봐..."
목소리는 작고 빠르다. 급히 설명하려는 아이처럼.
과해석이는 혼났던 아이도 아니고, 관심을 못 받은 아이도 아니다. 다만, "상황을 혼자 이해해야 했던 아이"이다. 설명받지 못해서 대신 관찰을 택했고, 그 관찰이 너무 오래 지속돼서 이런 모습이 되었다. 과해석이는 공격적인 아이가 아니다. 망상 캐릭터도 아니다. 목적은 단 하나, "나를 다치게 하지 않기."일뿐이었다.
그래서 생김새도 뾰족하지 않고, 차갑지도 않으며 무섭지도 않다. 그저 늘 깨어 있는 아이다.
그래서 요즘은 직관이와 과해석이 사이를 오가며 더 이상 과해석이가 돋보기를 내려놓고 잠시 쉬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제 내가 해결해 볼게."라고 말하면 과해석이는 완전 사라지지는 않지만 대기 모드에 들어가게 된다
무슨 말이든 가볍게 받아넘기고, 대충 대답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상대방의 미세한 표정, 말투, 한숨 그런 모든 것들을 해석하는 것들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자꾸만 머릿속에서 굴러갔다.
그냥 살아남아야 했으니깐, 그 시절을 견뎌야 했으니깐 그렇게 밖에 사는 법을 몰랐던 어린 나였으니깐 그랬던 거다. 그 방법이 지금까지 나를 지켰다. 다만, 이제는 흘러 보낼 수 있는 말들. 타인의 불안, 타인의 사정, 타인의 아픔 그 모든 걸 내가 들어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과해석이가 다시 돋보기를 들 때면 말한다. "괜찮아, 그건 그 사람 몫의 감정이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