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다고 믿었던 나의 허상

by 윤슬하

사랑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든다고
나는 꽤 오래 믿고 살았다.


조금 더 기다리면,
조금 더 노력하면,
조금 더 이해하면—
언젠가는 그 마음이 닿을 거라고.


하지만 끝내 알게 되었다.
사람도, 사랑도
내가 믿었던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다정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다정하다고 믿고 싶은 사람이었을까.


내게 경계가 없었기에
나는 타인의 경계도 쉽게 넘었다.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어서
이성적인 사람을 늘 동경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어떤 사람들은 정말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지 못해
이성과 논리 뒤에 숨어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타인을 더 이상
이상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소중하고
존경할 수 있는 분들이지만,
더 이상 신은 아니었다.


너도 나도 결국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남은 것은 원망도, 상처도 아니었다.


나는 한동안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회색의 시간 속에서 살았다.


타인을 붙잡을 수도 없고,
어떤 역할 뒤에 숨을 수도 없던 시기.
그저 외로웠다.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기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먼저 세워야 하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나머지는
살아가면서 하나씩 찾아가야 할 몫이었다.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는지도 모른 채 버티던 때에는
오히려 더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노력해야 할 이유가 있었고,
삶을 걸 만한 목표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살기 위해 기둥을 세운다는 것은
무언가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정말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는지,
무엇이 나를 지워버리는지
조금씩 알아차리는 일이라는 것을.


세상에는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사랑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일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믿음들을 붙잡고 살아왔을 뿐이었다.


내가 만든 상,
내가 믿고 싶은 세상,
내가 믿고 싶은 나,
내가 믿고 싶은 관계.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거라고 믿었던
예쁘고도 순진한 삶.


그 세계가 무너진 뒤에도
나는 여전히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애쓴다.


그 노력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걸—
이제야,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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