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그랬다.
엄마가 힘드니까, 나라도 덜 힘들게 해야지.
힘든 일은 현관 앞에 두고,
문을 열 땐 꼭 웃었다.
갖고 싶은 건 말하지 않았다.
그걸 사줄 수 없는 엄마 마음이 더 아플 거라는 걸
아이였던 나는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아파도 참았다.
엄마도 가족을 지키느라
스스로를 깎아내렸으니까.
나마저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웃었고, 견뎠고,
아프지 않으려 했다.
그게 나의 책임감이었다.
책임감은 나를 지켜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를 조이기 시작했다.
내가 웃던 건
버티고 있었다는 뜻이었고,
조용하던 건
정말 아무 말도 못 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럼 책임감이 뭔지 알겠네요?”
무심한 한마디에
나는 툭, 무너졌다.
아픈 손을 안고,
열이 나는 몸으로 출근하던 날들.
아프면 안 되는 게 당연했던 회사.
바뀌는 팀.
상의조차 없는 결정.
바스러진 손,
하지만 반은 멀쩡히 붙어 있는 손.
그게 사람들 눈엔
그냥 ‘핑계’처럼 보였나 보다.
그래도 견뎠다.
그게 책임감이라 믿었으니까.
나는 책임감 없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나를 아껴주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너무 일찍 많은 걸 알아버린 아이였고,
누군가 다치지 않게 하려고
먼저 나를 깎아내리던 사람이었다.
이제야 알겠다.
그건 사랑이기도 했지만,
천천히 나를 갉아먹던 아픔이었다는 걸.
손바닥 위,
얇은 유리그릇 하나.
금이 가 있다.
그 틈마다 금빛이 번져 있다.
부서진 자리를 숨기지 않고,
그 위에 빛을 입혀
다시 쓰임을 얻는 그릇처럼.
틈 사이로 들어온 빛이
오히려 더 반짝인다.
나는 이제
그 모양 그대로 두기로 했다.
금이 난 자리마다
내가 살아낸 날들이
새겨져 있으니까.
그렇게,
한때 나를 갉아먹던 책임감이
이제는 나를 비추는 그릇이 되기를—
조용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