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쉬는 깨달았다

by 장원석

키쉬는 바다의 한 가운데, 깊은 심해저의 바닥에서 태어났다. 키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건 그야말로 저주였다. 키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다. 알아도 되지 않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심해저의 바닥의 모래들이 휘날렸고 모래 사이로 반짝이는 결정들이 해수 안의 숨결들과 합쳐졌을 때 그야말로 키쉬는 모든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키쉬는 눈이라는 것이 따로 있지 않았으니 그저 온 몸으로 주변을 느껴야 했다. 해저 안, 흐르는 공기들과 함께 태어난 친구들은 키쉬를 알아보지 못했으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해수의 흐름에 그저 떠다녔다. 그러다 누군가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면 작은 신음과 함께 소멸 되어 버렸다. 키쉬는 슬픔을 알았다. 친구들이 너무나 많이 사라졌던 것이다. 공허에 입을 벌리고 있는 어떠한 물체를 바라보노라면 무섭고 두려웠다. 자신 또한 저 공허함에 소멸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키쉬는 두려움을 깨달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은 슬픔과 공허, 그리고 두려움을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래 속으로 더 깊게 모래알의 결정 속으로 깊게 파고들려 할 때 키쉬의 몸에서 팔이 생겨났다. 처음 생긴 팔을 세상을 향해 뻗었을 때 차가움을 알게 되버렸다. 차가움은 두려움과 비슷했다. 차갑다는 것은 어떠한 감촉과도 비슷했고 만지고자 하는 모든 것을 작은 팔을 통해 감지했다. 감지한다는 것은 궁금한 것이였다. 키쉬는 궁금증이 커지게 되었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모래알들을 팔로 휘저었다. 차가움이 너무 느껴질 때면 자신의 팔을 모래알들로 덮어버렸다. 모래알이 켜켜히 쌓이면 차가움이 사라져버렸다. 키쉬는 따뜻함을 알게 되어버린 것이다. 따뜻함을 알게 되어 버린 것. 따듯하다는 것. 그래서 그리워 해버리기로 한 것. 그것이야 말로 잔혹한 저주였다.

따뜻함을 알게 되자 키쉬의 팔은 점점 더 모래속으로 자신의 주변을 덮었다. 까끌까끌한 모래알의 결정들이 하나 둘 씩 쌓여버렸고 키쉬의 주변 위로 동그란 막처럼 얇고 황색의 막이 둘러졌다. 둘러 쌓인 막 위로 점점 느껴지는 것이 많았다. 막의 부근에서 차가움이 느껴질 때면 반대로 팔의 부근에서 따뜻함이 느껴진 것이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해버리고 나서야 두려움과 그리움 또한 함께 간직해버린 키쉬였다. 키쉬는 차가움을 감추고 싶었다. 두려움을 누군가에게 들켜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친구들처럼 공허한 입에 삼켜져 버릴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안함을 알게 되어 버린 키쉬가 처음으로 한 일은 황색의 얇은 막에 단단한 모래알을 덮는 것이었다. 덮힌 모래알들과 황색의 막, 그 가운데에서 해수의 숨결이 합쳐졌다. 키쉬의 막에서는 변화가 일어났고, 두려움과 불안함을 감추려 딱딱한 껍질이 생겨났다. 딱딱한 막에 반원 모양의 껍질을 메고 따뜻한 모래를 느끼자 불안함이 살짝이나마 사라졌다. 그때 키쉬를 따라 함께 주변을 거닐던 친구들 몇 명의 등에 황색 막이 생겼다. 그 친구들에게 키쉬는 자신의 팔로 모래들을 덮어 주었다. 그러자 친구들도 팔이 생겨났다. 키쉬를 보며 팔로 모래들을 움켜쥔 것이다. 움켜진 모래들이 틈 사이로 날아갈 때였다. 아주 커다란 어둠이 키쉬와 함께 팔을 담구고 있던 지면을 삼켜버렸다. 키쉬는 그때 깨달았다. 파란색 막이 벗겨지고 공기를 처음 자신의 몸으로 느껴버렸을 때,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세상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사실. 어둠에 삼켜져 버린 채 어딘가로 상승하다 상승된 틈으로 새하얀 빛이 자신의 몸으로 내리 쬘 때. 느끼지 않아야 할 것을 느껴버린 채 키쉬의 몸은 터질 것 같았다. 키쉬는 팔을 뻗어 그 아래로 더 아래로 숨으려 했다. 상승된 키쉬의 몸 밖으로 새파란 해수가 공중에서 아래로 더 아래로 추락했다. 그것은 키쉬의 슬픔과도 맞닿아 있었는데, 키쉬는 해수 아래로 떨어지는 모래알의 결정들, 해수 안에 담긴 숨결, 자신의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키쉬는 그때 생각했다. 이렇게 금방 사라질 것이면 왜 태어났는가. 나는 대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

키쉬는 자신이 왜 깨달아야 했고, 왜 팔이 생겨나야 했으며, 두꺼운 껍질이 왜 만들어져야 했는지 궁금했다. 그것보다도 의문을 계속해서 가질 수 있는 현재 자신의 삶을 유지해야 했다. 키쉬는 소멸하고 싶지 않았다. 살아야겠다는 마음. 생존이라는 본능. 지금 자신의 몸은 상승된 채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 어둠에 이끌린 채 자신의 몸을 쉽사리 움직이면 안된다고 생각한 키쉬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모래의 따뜻함 속으로 자신의 몸을 깊숙이 넣었다. 사라지고 있는 친구 중 몇 명에게 팔로 손짓했다. 키쉬는 더이상 따뜻함을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들은 키쉬처럼 재빠르지 않았으며 살고 싶어 발버둥 치지 못한다. 키쉬는 모래 속에 파묻혀 그들을 응시한다. 그리고 자신의 두려움과 슬픔, 공허함과 불안함, 살고 싶다는 필사적인 생존의 욕구가 친구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더욱 감추려 했다. 감추지 않으면 저 치솟은 어둠이 이번엔 자신을 소멸시킬 것 같았다. 가열된 깨달음 속에서 키쉬를 둘러쌓고 있던 껍질이 자라났고 온몸을 휘덮었다. 휘덮힌 채 둘러 쌓아버린 껍질 안에서 키쉬의 팔은 허공에서 해수의 숨결을 찾으려 발버둥 칠 뿐이었다. 무저갱의 어둠에 삼켜져 버린 채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쏟는 키쉬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움, 따뜻함을 깨달아 버린 것이 저주가 되는 그 순간. 키쉬는 태어나 느낀 모든 것들을 껍질 안으로 품었다. 살기 위해, 그리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언젠간 태어난 곳으로 돌아 갈 것이라는 자신도 알 수 없는 회귀의 본능. 얼마 남지 않은 고향의 모래 속으로 자신의 몸을 들이밀었다. 키쉬의 깊숙한 곳 안에서 아주 작은 모래알의 결정과 해수의 숨결, 뜨거움과 차가움, 사라져버린 친구들을 향한 슬픔과 알 수 없는 그리움이 한 곳으로 모였다. 아주 작게 뭉쳐졌다. 그 둥글고 작은 옥색의 진주 같은 삶의 결정을 품고 휘젓는 팔을 멈추고 껍질 안으로 영원히 웅크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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