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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감기가 찍어준 쉼표

by 멍냥이

보름이 넘도록 심한 감기에 모든 일상이 멈췄다.

한 달 전부터 미미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보름 전부터는 극에 달하는 증상들이 나타났다.

낮잠을 싫어하는 나에게 몹시도 필요한 것이 잠이 되어 버린 시간이었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계속 쏟아지는 잠과 온몸을 휘어 감는 통증들 때문에 무기력해졌다.

잠시 괜찮아진 것 같다가도 또다시 몸살이 시작되기를 반복하면서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독감 예방 접종을 했다는 것이 그나마 안심이 되는 중이었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약을 먹어야 했고,

약을 먹기 위해 음식을 섭취해야 했다.

냄새도 맛도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서 오로지 약을 먹기 위해 음식을 섭취했다.

이렇게 심한 감기는 언제나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한 번씩 쉼표를 찍어주는 역할을 한다.

스스로 쉼표를 찍지 못하는 바쁨에 중독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렇게 한 번씩 강제로 쉼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일까?


졸음이 다시 무뎌지고 달달한 맛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될 것 같다.


문득 주방 쪽으로 다가가 아픈 동안 지겹도록 먹은 라면국물을 그만하고 이제 밥을 먹어보기 위해 고기를 꺼내 구우며 창문 밖을 바라보니

드높고 맑은 하늘과 나무들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 단지 안에 가을을 가득 뿜어내고 있었다.

조금 더 괜찮아지면 밖에 나가 가을 낙엽을 밟아 보리라 생각하며, 다음 주말까지 이 가을이 머물러 주길 바란다.

나의 저질 건강도 이 정도 앓고 쉬었으면 충분히 겨울을 견딜 준비를 한 것이겠지

오랜 시간 멀리 했던 이 끄적임을 시작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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