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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Dec 30. 2021

보행자 중심의 걷기 좋은 도시(1)

도시재생사업의 모범 사례(데이트 모던)

살기 좋은 도시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 가고 있다.


사람중심의 도시, 보행자 중심의 도시, 걷기 좋은 도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추세다

환경을 중시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공간이 중요시되고 있다.


21세기 영국 런던에서 진행된 대표적인

세 가지 도시재생사업은 소개하고자 한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 살기 좋은 도시는

사람들에게 꿈과 자부심을 주고 걷기 좋은 곳이어야 한다.


 런던 중심부 템즈강변에 흉물스럽게 자리했던

 화력발전소를 현대적인 미술관으로 개조해서 도시를 살리고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지역 불균등까지 해소한

데이트 재단이 만든 기적 속으로 들어가 보자.
 (출처: 런던에서 만난 도시의 미래-저자 김정후)

 

데이트 재단은 권위와 실력을 겸비한 순수 미술재단이다.


 1897년 개관한 본관 ‘테이트 브리튼’,

1988년 개관한 ‘테이트 리버풀’

1993년 개관한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등

영국에만 네 개의 미술관을 소유한다.

템즈 강변의 화력발전소를 현대 미술관으로 개조한  테이트 모던

 1988년까지 테이트 재단은 템스강 하구에 테이트 브리튼 하나만을 운영 중이었다.
 당시 회화 4,000점,

조각 1,300점,

기타 작품 3500점 등

총 9,000여 점의 작품을 방대하게 소장하고 있었지만

테이트 브리튼에는 불과 1,000여 점 만을 전시할 수 있었다.


당시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예술 지원 정책으로

테이트 리버풀과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를 연이어 개관하면서

다소 숨통이 트이는 듯했지만 여전히 전시 공감은 크게 부족했다.

 

테이트 재단은 본관인 테이트 브리튼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현대미술관을 템스강변에 건립하고자 했으나,

비싼 부지 비용으로 재단의 희망은 가능성이 없었다.
 그러나 기회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방향에서 찾아왔다.


 템스강을 배로 건너 출퇴근하는 직원인 칸워스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그 시작이었다.

“템스강변에 버려진 화력발전소는 어떨까?”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는 건축가 자일스 길버트 스콧 경이

1947년과 1963년 두 차례에 걸쳐서 디자인했다.


1920-30년대 런던의 전력공급이 개인이 소유한 몇몇 공장에 의해 이루어져

독점과 가격 불균형 등의 문제가 있었고

시만들의 안정적으로 전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중앙정부는 전력 수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대규모 발전소를 템스강변에 건설하기로 결정했고

그중 하나가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였다.
 이 발전소가 완공되자 언론에서는 ‘산업의 대성당’이라는 호칭을 부여했고

런던 시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의 영광은 길지 않았다.

유가 파동과 경기 불황이 연이어 닥쳤고

환경오염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어

1981년에 완전히 문을 닫았다.


 런던 한복판 템즈강변에 자리한 이 거대한 산업용 건물은 문을 닫은 후

20여 년 동안 별다른 조치 없이 흉물스럽게 방치되었다.


극심하게 쇠퇴한 부지와 그곳에 문을 닫고 방치된 산업용 건물,

현대미술관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건이

오히려 중앙정부와 런던시를 설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민간 주도의 현대미술관 건립은 낙후된 지역의 방치된 건물을 재활용한다는 의미가 있었고

수백 년 동안 풀지 못한 런던의 난제인 템스강 남북 불균형 해소 방안이기도 했다.

 


전격적으로 부지를 확정한 테이트 재단은 국제 현상설계를 실시했고

뜨거운 관심 속에 전 세계 148개 팀이 작품을 제출했다.


 이 중에서 일곱 개의 영국 팀과 여섯 개의 외국 팀이 결선에 올랐고

스위스 건축가인 헤르조그와 드 뫼롱 팀이 1등을 차지했다.
 이들이 선정된 가장 큰 이유는 가장 적극적으로 화력발전소의 원형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화력발전소의 터빈홀

길이 155미터, 폭 23미터, 높이 35미터에 이르는 화력발전소는

터빈 홀을 중심으로 내부 공간이 이루어진다.


 공사 관계자들은 터빈 홀에 남아 있는 엄청난 양의 고철을 제거하는 작업이

테이트 모던의 시작이자 끝이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신중하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연이어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테이트 재단의 접근은

터빈 홀의 프로그램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테이트 재단은 헤르조그와 드 뫼롱과 다양한 대안을 비교 및 검토한 후에

이 공간을 특별한 변형이나 디자인 없이 그대로 비우기로 결정했다.


 미술관 내부 공간의 절반이 넘는 면적을 비우는 결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가지고 시행에 옮겼다.

 

테이트 모던 터빈 홀의 일상은 어떨까?
 청소년, 어린이, 그리고 전시를 보러 온 학생 모두

도시락을 먹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편안하게 누워서 책을 보는 모습을 언제든지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실내에 만들어진 공원이나 다름없다.


평소와 달리 강연, 콘퍼런스, 공연 등의 행사가 개최되면

터빈 홀은 다시 기막히게 변신한다.

행사에 필요한 무대와 시설을 설치하면 터빈 홀은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멋진 행사장이 된다.

직원들이 입구에서 방문객들에게 검은색이나 붉은색의 방석을 두 개씩 나누어 주면

격식 차리지 않고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행사를 관람한다.


 이보다 편안하고, 멋지고, 자연스러운 행사장이 어디에 있을까?

 



테이트 모던은 내부 공간 못지않게 외부 공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건물과 별개로 화력발전소 부지 자체에도

템스강과 인접한 수변 공간이라는 매력이 있었다.

 따라서 테이트 재단은 이러한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수변형 녹지 공원을 조성했다.


 테이트 모던 가든은 시민들이 편안하게 앉거나 누워서 휴식할 수 있는 녹지와

자작나무를 통해 조성된 느슨한 경계로 이루어져 있다.

촘촘하지 않게 심은 자작나무는 강변에서 테이트 모던을 가리지 않고

반대로 테이트 모던에서 강변 방향으로 시야를 가리지도 않는다.

테이트 모던 야외 공원


 어느 정도의 영역을 구획하면서도 시각적으로 앞뒤가 통하는 방식으로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다.
 자작나무는 낮에는 적절한 그늘을 만들고,

밤에는 조명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테이트 모던 과 더불어 조성된 외부 공간은 서쪽과 동쪽을 연결하여

템스강변 전체가 산책로로 확장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사우스 뱅크에서 출발해 테이트 모던을 거쳐 런던시청까지 걷는 것은

어느덧 템스강변을 가장 멋지게 즐기는 ‘산책 코스’가 되었다.

 


테이트 모던에는 터빈 홀에 버금갈 정도로 사랑받는 숨겨진 공간이 하나 더 있다.

6층의 레스토랑 겸 카페이자 조망공간이다.  

템스강을 건너 테이트 모던과 마주한 세인트 폴 대성당은

런던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이다.

6층 카페 공간


 테이트 모던을 리모델링하면서 유일하게 새롭게 추가된 6층의 조망 공간은

본래 화력발전소의 지붕에 해당한다.


 현재는 강변 방향으로 탁 트인 전면 창 앞에는 긴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이곳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세인트 폴 대성당을 감상하는 것은

런던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테이트 모던은 버려진 거대한 산업유산을 재활용했고 블랙홀처럼 방치된

서더크 지구의 템스강변에 화력을 불어넣었으며,

 템스강 북쪽에 집중되었던 문화 예술의 동력을 남쪽으로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테이트 모던을 정점으로 주변의 상가와 주거가 살아나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영국박물관, 국립미술관과 더불어 지구 상 최고의 미술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도시재생화 사업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이자

삶의 질의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요건이다.


 일본 홋카이도의 오래된 석탄창고를 개조해 만든 식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고,

철강산업의 쇠퇴로 몰락해 가던 도시에

구겐하임 미술관이 생겨 빌바오는 다시 활력을 찾았다.


 우리 부산에도 와이어를 생산했던 공장을 리모델링해서

카페 공간과 서점 그리고 전시 공간으로 만들어 시민들이 즐기는 공간이 되었다.
 
 

이제 도시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자동차 소통을 원활히 했던 자동차 중심 도시가

보행자 중심으로 사람 중시하는 도시로 바뀌고 있다.


 여기에 더해 테이트 모던은 런던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고

시민들에게 자부심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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