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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Dec 31. 2021

보행자 중심의 걷기 좋은 도시(2)

<런던의 보물로 변한 화물 창고-샤드 템스>


런던은 15세기를 전후로 이미 수변도시로서의 명성과 부를 축적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런던의 전성기는 

템스강의 역동적인 모습을 배경으로 묘사되곤 한다.  
 이 중에서 ‘샤드 템스’는 런던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템스강 전체에서 가장 넓은 창고 지대가 자리 잡은 무역의 중심지였다. 


전체적으로 창고는 7-8층 규모로 건립되었는데, 

시각적으로나 구조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샤드 템스 거리를 사이에 두고 

앞뒤의 건물 중층과 최상부를 철제 다리로 거미줄처럼 연결한 수십 개의 다리는 장관을 이룬다. 

샤드 템스의 타워 브리지


그러나 영국 역시상 최고의 황금기로 여겨졌던 1837-1910년의 빅토리아 시대를 지나면서 

해상무역은 점차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템스강은 

더 이상 대형 선박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드나들던 장소가 아니었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창고들은 생기를 잃고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했고, 

화물 운송을 위해 설치된 대형 크레인들은 검붉게 녹슨 채로 곳곳에 방치되었다. 


 주변에는 더 이상 인적을 찾기 어려웠고 

이곳은 순식간에 각종 범죄가 발생하는 골칫거리로 전략했다. 


샤드 템스의 상황은 더욱 참혹했고 

찰스 디킨스는 그의 장편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샤드 템스를 지저분하고 썩은 내가 진동하는 도시의 뒷골목으로 묘사했다. 

샤드 템스

 

그러나 문을 닫은 창고 주변에 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런던은 물론이고 지방에서 활동하는 일단의 예술가들이었다. 


 이는 20세기 후반에 주요 유럽 도시들에서 등장한 전형적인 현상으로 

예술가들의 눈에 들어온 낡은 창고와 활력을 잃은 거리는 

오히려 자유로운 창작의 원천이었다. 


 창고의 기본적인 정방형의 넓은 공간은 예술가들의 작업과 전시를 위해 안성맞춤이었고

 런던 중심에서 10분 거리에 임대료는 시내의 1/3 수준에 불과했다. 


이렇게 변신을 시작한 샤드 템스의 낡은 창고들은 

순식간에 예술가의 아지트로 탈바꿈했다. 

화가, 조각가, 판화가, 사진가, 무용수, 공연가, 영화제작자, 수공예 장인 등이 

각자의 용도에 맞게 창고를 임대해 창작 공간으로 사용했다.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샤드 템스 주변에 약 150여 명의 예술가들이 입주함으로써 

이곳은 단숨에 런던을 대표하는 예술촌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샤드 템스가 런던을 대표하는 예술가의 아지트로 빠르게 자리 잡아갈 무렵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1979년 8월에 버틀러스 워프 1층의 가구 공방에서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해 

내부가 전소되고 외부도 심하게 파괴되었다. 
 화재가 진압된 후에 낡은 창고가 거주와 작업 공간으로 부적절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결국 1980년에 전체 퇴거 명령이 내려졌다.

 

샤드 템스에 발생한 갑작스러운 화재는 예술가들에게 큰 불행이었지만, 

샤드 템스 일대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기회가 되었다. 


 1981년 영국의 사업가이자 디자이너인 테렌스 콘랜은 버틀러스 워프를 중심으로 

예술가들이 사용했던 창고와 거리를 아우르는 

‘창고 중심 복합개발’ 계획안을 제출했다.


콘랜이 제시한 마스터플랜은 철저하게 기존의 산업용 창고와 이를 연결하는 거리의 보호를 전제로 

전체 여섯 개 동의 창고와 주변 거리 및 공간은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먼저 버틀러스 워프는 레스토랑과 공동주택으로 개조되었다. 

콘랜이 직접 개조하고 운영까지 맡은 ‘버틀러스 워프 촙 하우스’와 

‘르 퐁 드 라 투르’는 템스강과 마주한 최고의 레스토랑이다. 


 강변은 편안한 산책로와 조망을 위한 공간으로 정비되었으므로 

이곳에 자리한 레스토랑은 최고의 낭만과 분위기를 자랑한다.


기존 창고의 3층부터는 공동 주택으로 개조되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건물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고풍스러운 건축적 특성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특히 강변 방향으로 설치된 발코니는 기존의 벽돌과 독특한 조화를 이루며

 시각적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내부는 완벽하게 현대적인 공간 구성과 인테리어를 갖추었고, 

템스강을 향해 한껏 열려 있으므로 내부 공간의 경험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배치상 버틀러스 워프와 앵커 브루 하우스가 강변 방향으로 길게 늘어선 반면,

 샤드 템스 거리를 가운데 두고 뒤쪽에 자리한 일련의 건물은 가운데를 비운 중정형 배치를 따랐다. 


 버틀러스 워프, 앵커 브루 하우스와 달리 나머지 창고들은 강변과 직접 마주하지 않으므로 

주거나 상가로서 매력이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머지 창고와 일련의 건물을 리노베이션 한 주상복합건물은 

중정을 중심으로 현대식 공동주택 단지 못지않은 높은 수준의 공공공간이라는 

나름의 특성을 성공적으로 살렸다.


살기 좋은 도시, 즐길 만한 도시, 걷고 싶은 도시, 매력적인 도시,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도시 등등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도시의 비전은 다양하지만 

샤드 템스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다 갖추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도시개발 전문가들의 주거 형태를 나무 구조와 그물구조로 나누기도 한다. 

나무 구조의 대표적인 형태는 아파트형 주거생활을 들 수 있다. 


 아파트형 주거 환경은 나무와 흡사한 구조를 가진다. 

한 뿌리에서 큰 줄기를 타고 올라가지만 각각의 가지로 흩어지면 

서로 만날 수 없는 개인 위주의 삶을 방식으로 

장점은 개인의 사생활 보호에는 유리하지만 

이웃과의 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대되는 개념의 그물형 구조 주거형태는 

거리와 거리가 이어지고 골목과 골목이 그물처럼 엮여 있는 구조로 

걷기 좋은 환경으로 걸으면서 이웃도 만나 인사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주거 환경을 말한다. 


다시 태어난 샤드 템스가 그물구조를 갖춘 주거 환경이라 볼 수 있으며 

아파트 문화에 답답함을 느끼는 현대인들은 소통하고 나눔의 삶을 살기 위해 

그물구조의 주거 환경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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