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함
나지브 마흐푸즈
1911년 12월 11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중산층 가정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1959년 이집트 주요 일간지 <알아흐람>에 연재했다.
당시 이 작품은 이슬람교에 대한 신성모독을 범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다가 1967년 레바논에서 초판이 출판되었다.
1988년 아랍어권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4년 이슬람 원리주의가 휘두르는 칼에 목을 찔려 신경손상을 입었지만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아랍 문학의 위상을 높였고 2006년 8월 30일 카이로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드함>
우리 동네는 가도 가도 지평선만 보이는 사막과 맞닿은 황무지에 있었다.
황무지에는 보란 듯이 지은 ‘대저택’만이 우뚝 솟아 있었다.
어느 날 자발라위는 아들들(이드리스, 압바스, 리드완, 질릴 그리고 아드함)을 정원 옆 응접실로 불렀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것이 좋겠다.
이미 선택했다.
나의 감독 아래 아드함이 재산을 관리할 것이다.” 자발라위가 말했다.
모두는 예상 밖인지라 놀란 기색이 역력했고, 머쓱해진 아드함만이 어쩔 줄 몰라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속에서 분노가 치민 이드리스가 막내가 장남을 제친 것에 항의하며 아버지의 권위에 대항했다.
“저와 저의 형제들은 지체 높은 귀부인의 자식이지만 이놈은 흑인 노비의 아들이에요.”
거무스름한 아드람의 얼굴이 이내 창백해졌지만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어리석은 놈, 너를 위해 입 다물지 못하겠니!”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제발 바라는데 고분고분 말 잘 듣고 복종하도록 해라.”
그러고는 자발라위는 신경질적으로 이드리스의 친형제들에게 몸을 돌렸다.
“너희들도 할 말이 있느냐?”
그러자 압바스와 잘릴 그리고 리드완은 아버지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풀이 죽어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추하게 얼굴이 일그러진 이드리스가 분노로 악을 바락바락 썼다.
“겁쟁이 자식들! 너희들은 비겁해서 앞으로 흑인 노비의 자식에게 지배를 받게 될 거다.”
자발라위가 “이드리스!”라고 고함을 질렀다.
“아버지는 도대체 어떤 분이세요.
아버지는 수많은 희생 양을 다루듯 자식인 저희들도 같은 방식으로 다루고 있어요.
아버지는 저를 미워하세요.
아버지는 광활한 사막의 주인이시고, 모든 부동산의 소유자이시고, 무서운 독재자이세요.
그런데 그 따위 노비가 아버지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군요.”
“사악한 놈, 입 닥치라고 했다.
이제부터 너는 내 아들이 아니고, 나도 네 아버지가 아니다.
이 집은 네 집이 아니다. 이 집에 더는 네 형제도 네 하인도 없다.
내 분노와 저주를 갖고 떠나라.
나의 보살핌과 사랑을 잃고 떠다니다 세월이 가면 자연스럽게 그게 어떤 건지 알게 될 거다.”
자발라위는 이드리스가 미처 방어할 틈도 없이 그를 넘어뜨려 질질 끌고 그를 문밖으로 밀쳐내고 문을 잠갔다.
암울했던 그날 이후 아드함은 매일 대저택의 정문 오른쪽에 위치한 부동산 관리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는 임대료를 걷고 새로운 임차인에게 땅을 나누어 주고 장부를 자발라위에게 제출하는 일에 자신의 소임과 열성을 다했다.
어느 날 아드람은 걸음을 멈추고 숲 사이 오솔길 위에 드리운 누군가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 그림자는 그를 보자 발길을 돌렸다.
그가 손짓으로 멈춰 세우자 소녀는 걸음을 멈췄다.
그는 그녀를 천천히 살펴보고 “너는 누구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더듬거리며 “우마이마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 이름을 기억했다.
아드함은 향기처럼 아름다운 그 소녀로 인해 벅찬 가슴을 안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는 그날그날 마쳐야 하는 계산에 온 정신을 집중하려 애썼지만 그의 머릿속은 온통 그 흑인 소녀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오늘 우마이마를 본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집에서 쫓겨난 이드리스가 매일 못된 짓에 빠져 점점 타락해 가도 여전히 사막에는 해가 뜨고 졌다.
그는 상스러운 욕설을 퍼부으러 저택 주위를 맴돌거나 벌거벗고 일광욕을 하는 척하며 대문 앞에 앉아 음란한 노래를 불러 댔다.
때로는 불량배처럼 거들먹대면서 인근 마을을 배회하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저지하는 사람이 있으면 싸움을 걸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피했고, 서로들 ‘자발라위의 아들’이라고 수군거렸다.
이드리스의 어머니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전신마비가 와 시름시름 죽어 갔다.
자발라위가 그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찾아오자, 그녀는 비난하듯 마비되지 않은 한 손으로 그를 가리키며 죽었다.
그녀는 슬픔과 화병으로 죽은 것이다.
어느 날 자발라위가 불같이 역정을 냈다.
이번 희생자는 여자였다.
그는 목청을 높여 나르지스라는 이름의 하녀에게 악담을 퍼붓고 집에서 내쫓았다.
바로 그녀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자발라위는 이드리스가 쫓겨나기 전 그녀를 범하고 임신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녀를 집에서 쫓아낸 것이다.
그녀는 온종일 정처 없이 헤매다 우연히 이드리스를 만났고, 그는 그녀를 구박하지도, 반기지도 않고 받아들였다.
아무리 견디기 힘든 불행이라도 언젠가는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대저택’에 사는 사람들도 종전과 다름없는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아드함의 우마이마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를 만나 속내를 털어놓았다.
“얘야, 모든 것을 잃지 않으려면 그 아이한테 아직 관심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내가 네 아버지께 말씀드려 주마.
다행히 죽기 전 손자를 볼 수 있겠구나.”
자발라위가 아드함을 불렀다.
“아드함, 네가 신붓감을 찾고 있다고?
세월 참 빠르구나.
이 집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지.
그렇지만 네가 우마이마를 선택해서 네 어머니의 체면이 서겠구나.
너는 의로운 아이를 낳을 것이다.
이드리스는 집을 나갔고 압바스와 잘릴은 자식이 없고 리드완의 자식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들 모두 나에게서 자만심만 물려받았다.
이 집을 네 아이들로 가득 채워라.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도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아드함의 결혼 행렬은 유례없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자발라위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모두 하나가 되어 행렬에 참여했다.
사람들은 춤을 추고 공짜 술이 제공되어 청소년들조차 술에 취했다.
결혼을 축하하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담뱃대가 제공되어 대마초와 해시시 냄새가 거리를 진동했다.
이드리스가 길 끝 어둠 속에서 홀연히 모습을 나타내었다.
“누구의 결혼 행렬이냐? 이 겁쟁이 놈들아.”
그는 행동으로 대답했다.
그는 성난 황소처럼 행렬에 뛰어들어 몽둥이를 마구 휘둘러 등불을 깨고 장미꽃을 흩날려 버렸다.
사람들은 겁을 먹고 달아났고 리드완과 압바스와 잘릴은 아드함 앞에 어깨를 맞대고 서서 그를 보호해 주었다.
이드리스가 동생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뒤로 물러서며 몽둥이를 막기만 할 뿐 대들지는 않았다.
이드리스가 몽둥이를 높이 쳐들자, 누군가 “자발라위다.”라고 소리쳤다.
그러지 이드리스는 길옆으로 훌쩍 뛰어가서 뒤를 돌아보았다.
횃불을 든 하인들을 양옆에 거느리고 자발라위가 오는 것을 보자 그는 이빨을 드러내며 큰 소리로 “곧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천출내기 손자를 보게 되실 겁니다.”라고 비아냥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자발라위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아들 형제들이 서 있는 곳을 향해 명령조로 말했다.
“자, 다시 행진을 시작하여라.”
아드함은 사무실에 앉아 새로운 소작인과 임차인을 한 명씩 맞이하고 있었다.
마지막 사람이 다가오자 고개도 들지 않고 무뚝뚝하게 물었다.
“이름은?”
“이드리스 자발라위.”
아드함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형이 바로 그의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드리스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그는 비록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지만 조용하고 겸손해 보였으며 기가 죽어 있었고 유순했다.
“아 불행했던 지난날! 이제 나는 불쌍할 따름이다.
임신한 여자를 끌고 벌판을 헤매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못된 짓만 골라서 했어.
먹을 것을 구하느라 못된 짓을 한 탓에 사방이 적이고 주위에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 밖에 없어.”
“형! 형의 말을 들으니 제 마음이 아프네요.”
“내가 너에게 저지른 나쁜 짓이 그야말로 크지!
내가 벌을 받지 않고 이런 악행을 저지를 수 없어.
마땅히 받을 만한 벌이자.”
아드함의 눈이 반짝였다.
“형 정신 차리셨군요.
아버지께 말씀드릴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제가 형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드리스가 다시 웃었다.
“돈으로 나를 도울 생각은 행여 하지 마라.
나는 너를 정직한 재산 관리인으로 믿고 있다.
나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다.
나는 너에게 상처 준 것을 후회하고 너에게 이야기하고 우리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온 거야.
그리고 너에게 부탁할 것도 있고.”
“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보세요.” 아드함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내가 현재를 망치고 말았지만 미래는 확실히 해 두고 싶어.
아버지가 유언장에 나를 배제했는지 알고 싶어.
아버지가 가진 두툼한 책에는 모든 것이 다 기록되어 있어.
그것은 아버지 침실과 연결된 내실에 있어.
열쇠는 침대 옆 작은 탁자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어.”
아드함은 놀랐다.
“저는 아버지에게 솔직히 묻는 것이 더 쉬워요.”
“아버지는 틀림없이 지금은 그것을 알리고 싶지 않으실 거다.
그 서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너에게 설명해 준 방법밖에는 없어.
아버지가 정원을 산책하는 새벽에 그 방법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야.”
아드함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건 정말 지독한 고통이에요.”
이드리스는 그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손을 얹고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추고는 자리를 떴다.
새벽이 되자 자발라위는 방에서 나와 정원으로 향했다.
아드함이 복도 끝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우마이마는 어둠 속에서 그의 어깨를 잡고 뒤에 서 있었다.
아드함은 방 안에 잠입하면서 이미 죄는 저질렀고 어치피 자신이 이 일을 끝마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금박을 입힌 글자로 아름답게 꾸며진 가죽 장정의 책표지를 응시하며 탁자로 다가가 책을 폈다.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그는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홱돌렸다.
촛불 너머 싸늘하고 매정하게 그를 쳐다보고 있는 자발라위가 보였다.
“나가거라.”
자발라위가 아드함에게 명령했다.
대저택의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아드함과 우마이마가 쫓겨났다.
아드함은 옥 꾸러미를 들고 집을 나섰고, 우마이마는 몇 가지 가재도구와 음식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자 그들을 조롱하는 듯한 술에 취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자 이드리스가 양철과 나무로 지은 자신의 오두막 앞에서 웃고 있었고 그의 아내 나르지스는 조용히 물레를 돌리고 있었다.
아드함은 분노로 울어서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아드함은 순간적으로 이드리스가 교활하게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드리스는 아드함을 바라보고 미친 듯이 계속 소리쳤다.
“이 나약한 놈아. 어떻게 혼자 살려고 그러냐?
너 자신을 지탱할 힘도 없고 의지할 사람 한 명도 없는 주제에, 글을 알고 계산을 할 줄 아는 게 이 사막에서 무슨 소용이 있다고. 하하하.”
우마이마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임신 중인데 여기서 어떻게 살아요?
아드함은 주위를 살펴보다가 이드리스의 오두막에 눈길이 멈추었다.
아드함과 우마이마는 대저택의 서쪽 끝, 이드리스의 집 근처에 자신들의 오두막을 짓기 시작했고 아드함은 행상을 나갔다.
행상에서 돌아온 밤에도 그는 오두막을 짓느라 쉴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드함은 나지막한 신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비몽사몽 중에 그는 우마이마가 괴로워서 내는 고통의 신음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산파를 데려올 테니 견디고 있어.”
산파가 우마이마 곁을 지키자, 아드함이 밖으로 나왔다.
그는 유령처럼 서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이드리스는 예의 바른 척 말했다.
“제수씨 아기 낳는 중이니?
불쌍한 여자야.
너도 알다시피 형수도 얼마 전 상황을 겪었지.
고통이 지나면 거짓말처럼 곧 괜찮아질 거야.
그러고 나면 내가 힌드를 만났듯이 너도 미지의 세계에서 온 너의 행운을 만나게 될 거야.
힌드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기야.
우마이마의 비명 소리가 다시 들렸다.
비명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아드함은 애원하듯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제 어둠이 제법 걷히고 날이 새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들 쌍둥이예요. 축하해요.”
아드함의 뒤에서 귀청이 떨어질 듯한 이드리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드리스가 한 계집아이의 아버지이자 두 사내아이의 큰 아버지가 됐네.”
그는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오두막을 향했다.
“아기 엄마가 아기 이름을 까드리와 후암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네.” 산파가 말했다.
“까드리와 후암.”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아드함이 중얼거렸다.
까드리와 후암은 얼굴 모습이나 신체적인 특성으로는 구별할 수 없었다.
다만 까드리의 또렷한 사냥꾼 눈매가 그들을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특장이었고 그 눈매로 까드리는 매서운 인상을 주었다.
“형이 용감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어.
그러나 우리가 할아버지의 이름과 큰아버지의 무시무시한 악명 덕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
비록 큰아버지와 우리 사이가 좋지 않지만 말이야.”
후암이 양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까드리는 그의 말이 거슬리는지 눈살을 찌푸렸지만 드러내고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의 시선은 거대한 사원처럼 보이는 대저택을 향했다.
“저 집 말이야!
나는 저런 집을 본 적이 없어.
사막에 빙 둘러싸인 집. 싸움질과 완력으로 유명한 지역에 가까이 있는 집, 그 집주인은 논쟁할 여지도 없는 폭군이야.
이 할아버지는 코 밑에 사는 손자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항상 존경과 감탄의 대상으로 여기시고 큰아버지는 항상 저주의 대상으로 여기시지만 어쨌든 그분은 우리 할아버지인 걸;” 후암도 대저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 그러면 뭐 해.
아버지는 수레를 끌고 행상을 다니고 엄마는 하루 종일 그것도 모자라 밤에도 일하시는데. 또 우리들은 맨발로 양을 돌보고 그런데도 인정 없는 할아버지는 담장 너머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계시잖아.”
까드리가 일어나 소변을 보기 위해 옆으로 비키면서 말했다.
“얼마나 그분을 보고 싶은지 몰라!” 후암이 꿈을 꾸듯 말했다.
저 멀리서 그들을 향해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형체만으로는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천천히 다가오자, 그들의 사촌이자 이드리즈의 딸이 힌드였다.
그녀를 사랑하는 까드리가 앞으로 나아가 팔을 흔들어 소녀를 반겼다.
그녀는 대담함이 엿보이는 초록빛의 매력적인 눈을 반짝이며 그들을 보았다.
“여느 때처럼 오늘도 부모님은 온종일 싸웠어.
아버지가 엄마의 따귀를 한두 대 때리니까 엄마가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부었어.
엄마는 물동이를 부수며 화풀이를 하는데.
오늘도 그렇게 해서 화가 멈췄지.
엄마는 종종 아버지의 목을 조르며 싸움을 걸어서 매를 맞아.
두들겨 맞으면서도 욕을 퍼붓고 아버지가 술 드시면 눈에 띄지 않게 멀리 도망가는 게 상책이야.
나는 도망가고 싶어.
이렇게 사는 게 너무 싫어.
눈이 짓무를 정도로 울고 나면 기분이 좀 나아지기도 해 상관없어.
난 아버지가 옷을 입고 외출하기를 기다렸어.
그리고 붙잡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집을 나왔어.”
그녀는 한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미워하셔.
할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저주라고 욕설을 퍼부어.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그분의 아들이라는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계셔.”
“그분이 우리 할아버지가 아니라면 우리는 더 행복했을 거야.” 까드리는 주먹을 쥐고 허벅지를 치면서 말했다.
“아마도?” 그녀는 씁쓸하게 말했다.
그는 말할 때처럼 열정적으로 그녀를 끌어당겨 꼭 껴안았다.
넌더리 나는 고민거리에서 벗어나 그들의 마음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하나가 되는 사이 그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때 바위 옆에 앉아 있던 후암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줍은 표정으로 씩 웃으며 양 떼를 향해 살금살금 걸어갔다.
아드함 가족이 오두막 앞에 앉아 희미한 별빛 아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아드함이 대저택에서 쫓겨난 이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일이 일어났다.
대저택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등불을 들고 나왔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등불을 바라보았다.
등불이 오두막과 대저택 중간쯤에 이르자 아드함이 속삭였다.
“문지기 카림 아저씨야.” 그 사람은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안녕하세요 아드람 나리.”
“안녕하세요 카림 아저씨.” 그는 눈물을 삼키며 대답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지만 주인님께서 후암 도련님을 당장 만나 보겠다고 데려오라고 하셔서 이렇게 왔어요.” 남자는 부드럽게 말했다.
후암은 말없이 대저택을 바라보았고 그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드함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할아버지에게 가거라, 후암. 안심하고 가.”
“그럼 저는요?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가요? 화가 난 까드리는 아드함을 향해 따지듯 물었다.
“까드리, 큰아버지처럼 말하지 마.
너도 분명히 내 아들이다.
나를 비난하지 마라. 부른 사람은 내가 아니야.”
“대체 이런 불공평한 경우는 뭐죠?
왜 그분은 나보다 후암을 더 좋아하세요?
그분은 나나 후암이나 다 몰라요.
그런데 왜 후암만 부르는 거예요?” 까드리가 격분해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어서 가!” 아드함은 후암을 재촉했다.
우마이마는 까드리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러나 그는 곧 그녀의 팔을 빠져나와 동생의 뒤를 따라갔다.
까드리는 동생을 따라잡으려고 허겁지겁 달렸다.
어둠 속에서 이드리스가 힌드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대문에 도착하자 이드리스는 까드리를 후암의 왼쪽에 힌드를 후암의 오른쪽에 밀어 놓고서 몇 걸음 물러나 크게 외쳤다.
“문 열어요. 카림 아저씨. 손자들이 할아버지를 만나러 왔어요.”
문이 열리자 카림이 등불을 들고 문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드리스 나리. 나리는 주인님 허락없이 이 집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카림이 정중히 말했다.
그는 후암에게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까드리는 힌드의 손을 잡고 후암을 쫓아갔다.
그때 정원에서 이드리스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쁜 놈들, 창피한 줄 알면 썩 나가지 못해.”
그들의 발은 땅에 박힌 듯 꼼짝도 하지 못했다.
문이 닫혔다.
힌드는 고통스러워 소리를 질렀고 까드리는 갑자기 몸을 돌려 아드리스의 손을 자신과 힌드에게서 떼어냈다. 힌드가 도망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드리스는 휙 뒤로 돌아 까드리에게 주먹을 날렸다.
까드리는 주먹의 위력에 얼얼했지만 잘 버터 내고 더 센 주먹을 이드리스에게 날렸다.
두 사람은 대저택 담 밑에서 서로 주먹을 주고받으며 거칠고 야만스럽게 싸웠다.
후암은 카림을 따라갔다.
그들은 넝쿨이 무성하게 덮여 지붕을 이룬 제스민 꽃 아래 난 오솔길을 따라 거실로 향했다.
밤의 정원은 특별했다.
꽃향기와 상큼한 풀 냄새가 진동해 상쾌하고 신선했다.
밤의 아름다움이 그의 마음속 깊숙이 들어왔다.
청년은 매혹적이고 장엄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이 장소를 몹시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죽은 듯이 조용한 계단을 올라 자수로 장식된 천장에 매달린 등불이 환하게 비추는 대저택에서 가장 넓고 긴 방에 이르렀다.
키림은 들어가도 좋은지 허락을 구하려고 큰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문을 부드럽게 열고 후암에게 들어가라고 손짓하고 그가 들어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청년은 겁은 먹었으나 조심성 있고 예의 바르게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후암은 남자가 앉은 곳으로 다가갔다.
다가가는 동안 그의 마음은 안정을 찾아 편안해졌다.
후암은 너무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는 바람에 이마를 의자에 부딪칠 뻔했다.
후암이 손을 내밀자 남자도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후암은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손에 입을 맞추고 의외로 배짱 좋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그러자 크지만 인정 넘치는 목소리가 응답했다.
“얘야, 잘 왔다. 앉아라.”
후암은 의자 깊숙이 편히 앉았다.
그의 가슴은 기쁨으로 넘쳐흘렀다.
그는 입술을 움직여 아주 작은 목소리로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그의 관심이 오른쪽에 위치한 내실에 쏠렸다.
그는 그 방의 문을 두려우면서도 침울하게 바라보았다.
자발라위가 그 모습을 보고 즉시 물었다.
“이 문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
후암은 사지가 떨려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발라위의 관찰력에 감탄했다.
“저 문이 저희들의 비극의 시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넌 이 할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느냐?”
후암이 말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 자발라위가 말을 막았다.
“솔직히 말해 다오.”
“저는 저희 부모님이 크게 잘못은 하셨지만 그분들에 대한 처벌이 가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청년인 것 같아 보이더구나.
그래서 내가 너를 찾았다.”
“감사합니다.” 후암은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내가 너에게 어느 누구에게도 준 적이 없는 기회를 주고 싶은데, 이 집에서 살면서 결혼도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어떠냐?” 자발라위가 조용히 말했다.
후암은 너무나 기뻐서 심장이 방망이질하듯 고동쳤다. 후암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대화를 마쳤다는 신호로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오너라.”라고 말했다.
후암이 오두막으로 돌아오자, 한자리에 모여 앉아 그가 돌아오기 만을 기다리던 가족들은 그의 주위에 모여들어 질문을 퍼부어 댔다.
“할아버지께서 대저택에서 함께 살자고 하셨어요.” 후암은 기쁜 기색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드함은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들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그는 절망적으로 말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던?”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후암은 침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속삭였다.
“가거라 후암.” 아드함이 말했다.
“저는 아버지 곁에 남아 있을 거예요.” 후암이 단호하게 말했다.
해가 지고 황혼이 깃들자 사람들은 모두 일손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갔다.
벌판에는 오직 까드리와 후암, 그리고 양들만 남아 있었다.
함께 일할 때 필요한 몇 마디 말을 제외하고는 그들은 하루 종일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까드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멀리 떨어져 보냈다.
후암은 그가 힌드를 생각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그는 약을 올리듯 후암에게 물었다.
“네 의도가 뭐였는지 나한 테 말해 봐. 가려고 했어. 아니면 그 반대야?”
“그건 내 일이야. 형이 참견할 일이 아니야.” 후암이 부아가 치밀어 말했다.
“정나미 떨어지게 현명한 척하네.” 까드리는 분노로 치를 떨며 그에게 바싹 다가가서 볼멘소리로 말했다.
후암은 말문을 닫고 하고 싶은 말을 눈에 담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인류는 너 같은 인간을 구성원으로 갖고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해.” 까드리가 말했다.
후암은 이글거리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았다.
“내가 형을 겁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해.”
갑자기 까드리가 후암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지만 후암이 재빨리 피하는 바람에 맞지 않았다.
후암은 “미친 짓 그만 좀 해라!” 소리치며 그보다 더 센 주먹을 날렸다.
까드리는 날쌔게 몸을 굽혀 돌을 집어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동생에게 던졌다.
후암은 날아오는 돌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돌에 이마를 맞고 말았다.
그는 “악”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지만 그는 제자리에 굳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후암은 눈동자가 뒤집혀 흰자위만 보이면서 비틀거리다 앞으로 고꾸라졌다.
까드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는 후암이 벌떡 일어나 움직이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후암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까드리는 본능적으로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절망하여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는 겁에 질려 주변을 살폈다. 그는 땅을 파서 손으로 흙을 퍼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사지를 부들부들 떨면서도 끈질기게 땅을 팠다.
그는 동생에게 허둥지둥 달려가 다시 흔들어 보았다.
대답은 기대하지 않은 채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는 동생의 발목을 잡고 질질 끌어서 구덩이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 주검을 흙으로 덮었다.
까드리는 양 떼를 몰고 집으로 왔다.
아드함의 손수레는 보이지 않았다.
“너희들 왜 그렇게 늦었니?” 그의 어머니 목소리가 안에서 들렸다.
그는 양 떼를 우리에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깜빡 잠들었어요. 후암 아직 안 왔어요?
“아니 너와 함께 있지 않았니?”
“어디로 간다고 말 안 하고 정오에 나갔어요.
전 걔가 집에 먼저 왔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때 아드함이 돌아와 손수레를 밀어 넣으며 물었다.
“너희들 싸웠니?
“아니요.”
그러고는 나서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이드리스의 오두막을 바라보았다.
“아주버니기 데려갔을까요?”
“일을 복잡하게 만들자 마.
우리가 후암을 찾자 못하면 내가 형에게도 가고 대저택도 간다고 약속할게.”
마침 그때 대저택의 문이 열렸다.
잠시 후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카림의 모습이 보였다.
“큰 주인님께서 무슨 일로 후암이 약속을 늦추는지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예? 우린 후암이 어디에 잇는지 몰라요.
혹시나 그 애가 그곳에 있지나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우마이마가 가련하게 말했다.
카림이 가고 나서 우마이마는 발작이라도 일으킬 듯이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아드함은 그녀를 방 안으로 데려갔다.
“이 방에서 나오지 마.
내가 그 애를 데려올 테니.
당신 절대 이 방에서 나오면 안 돼.” 그가 사납게 소리쳤다.
그는 마당으로 되돌아가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까드리와 부딪혔다.
불빛으로 까드리의 얼굴을 비추어 본 그는 놀라서 천천히 살펴보고 말했다.
“얼굴에 고통이 가득하구나.”
그는 다시 아들의 자세히 살펴보았다.
갑자기 사지가 떨렸다.
그는 까드리의 소맷부리를 잡고 질겁해서 물었다.
“피잖아! 이게 뭐냐? 네 동생의 피니?”
까드리는 자신의 소맷부리를 뚫어지게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움츠리고 절망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까드리는 그 절망적인 태도로 고백하고 있었다.
아드함은 까드리를 사막으로 끌고 갔다.
까드리는 동생을 묻기 위해 팟던 곳으로 걸어가 옆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에 묻었어요.” 까드리가 모깃소리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드함은 고통스럽게 탄식하며 떨리는 손으로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 후암의 머리가 만져질 때까지 무섭게 쉬지 않고 팠다.
그는 시체 양옆으로 손을 밀어 넣어 죽은 후암을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
아드함이 갑자기 일어나 시체 반대편에 서 있는 까드리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까드리가 밑도 끝도 없이 맹목적으로 미웠다.
“네 등에 후암을 업고 가라.”
“할 수 없어요.” 까드리는 신음하듯 대답했다.
“동생을 죽이기까지 하곤 왜 못 해.”
“아버지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동생을 죽인 놈에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제도 없다.”
신경이 곤두선 아드함은 아들의 얼굴에 사정없이 주먹을 퍼부었다.
까드리는 주먹을 피하지도 아프다고 소리치지도 않았다.
“시간 허비하지 마라. 어머니가 기다리신다.” 아드함은 손찌검을 멈추고 말했다.
“제발 제가 도망치게 해 주세요.” 까드리는 어머니란 말에 움찔하며 애원했다.
“자 함께 데려가자.”
아드함이 시체 쪽으로 몸을 돌려 후암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자 까드리는 몸을 숙여 다리를 잡았다.
까드리는 사지가 후들거려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시체를 만질 때 섬뜩한 느낌이 그의 손에서부터 온몸 구석구석으로 전해졌다.
세상은 암흑 천지였다.
까드리가 오두막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고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어머니를 마주 볼 수 없어요.”라고 말하며 한사코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우마이마는 미친 듯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슬픔을 덜어 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다.
우마이마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까드리에게 잔인하고 모질게 소리쳤다.
“어제 그 아이는 찬란한 희망이었는데…
우리가 그 애에게 할아버지 댁으로 들어가라고 해도 가지 않았다. 갔더라면!
애가 친절하고 기품 있고 인정이 많지 않았더라면 가 버렸을 텐데.
그런 아이에게 살인이라니?
너는 이제 내 아들도 아니고 나도 네 어미가 아니야.” 우마이마가 소리쳤다.
까드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나는 그 애를 한 번 죽였는데 그 애는 나를 매 순간 죽여요.
나는 살아 있는 게 아니에요.
누가 내가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때 이드리스의 목소리가 오두막 입구에서 들려왔다.
“아드함 이리 나와라, 불쌍한 녀석!”
순간 모두 전율했다.
“돌아 가요. 경고하는데, 나 건드리지 말아요.” 아드함이 그에게 소리쳤다.
“이런 끔찍한 일이!
너희들이 불쌍해서 도저히 내가 화를 낼 수가 없네.
너는 사랑스러운 아들을 잃었고 나는 외동딸을 잃었어.
자식은 우리가 이런 유형지에서 사는 동안 우리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는데.”
“형이 고소해하는 것은 관심이 없어.
내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아드함이 말했다.
“나는 죽은 자뿐 아니라 살인자를 위해서도 울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 말했지.
아드함, 얼마나 슬픈 일이냐! 너는 하루 밤 사이에 두 명의 아들을 잃었구나.”
이드리스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드함이 끼드리를 향해 몸을 돌리자, 우마이마가 그가 어디 있는지 물으며 서 있었다.
아드함은 어둠 속에서 목청껏 ‘까드리’를 불렀다.
근심 걱정이 태산 같던 슬픈 날들이 지나갔다.
슬픔에 짓눌린 우마이마는 건강이 악화되어 점점 여위어 갔고, 몇 년 새 아드함도 나이에 비해 폭삭 늙어 버렸다.
그들 부부는 계속해서 질병에 시달리고 야위어 갔다.
해가 지고 밤이 되었지만 그들은 등불을 밝히지 않았다.
아드함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악마는 지칠 줄 모르고 유희를 즐기고 싸우고 죽이는 데도 존경을 받는다.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을 즐기고 장례식장에서 밤을 지새우며 즐기고 묘비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
죽을 때가 다 된 나를 여전히 경멸하고 비웃는다.
살해당한 놈은 땅속에 있고 살인을 저지른 놈은 사라지고 없어.
나의 오두막에는 그 둘을 위한 눈물이 넘쳐난다.
어린 시절에 환희 웃던 얼굴이 세월과 함께 눈물이 마르지 않는 우거지상으로 바뀌었다.
내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병들어 아픈 육신뿐이다.
왜 이런 고생을 하는 걸까?
아드함의 귀에 낯설지 않은 발소리가 들렸다.
둔탁하고 무거운 발소리는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는 향기처럼 희미한 기억을 되살아나게 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오두막 입구를 바라보았다.
문이 열렸다.
그러자 엄청난 거구가 문간을 가로막은 채 비좁은 듯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버지.”
“잘 있었느냐, 아드함.”
“울고 있구나. 그래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바로 너다.”그가 말했다.
아드함은 목이 메었다.
“잘못도 컸지만 벌도 컸어요.”
“지금 나에게 설교하는 거냐?”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저는 슬픔에 짓눌리고 병들었어요.
양들을 잘 돌보지 못해 양들이 죽어 가고 있어요.”
“양 떼 걱정을 하다니 착하구나.”
“저를 용서하셨나요?” 아드함이 희망에 차서 물었다.
“오냐.”
“하느님, 감사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절망의 나락에 빠져 있었어요.
저는 살인자의 그 희생자의 아비입니다.”
“죽은 자는 돌아오지 못한다. 무엇을 원하느냐?”
“정원에서 다시 노래하는 것을 꿈꾸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내 재산은 네 자식들의 것이 될 것이다.” 그가 말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제 그만 애쓰고 잠들도록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