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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Apr 30. 2022

이슬람과 지하드

지하드 그리고 텔레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세력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자 간다라 미술의 대표 격인 바미얀 불상을 우상이라 하여 

로켓포로 완전히 파괴한 사건이 세상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도대체 탈레반 세력은 어떤 세력이며, 

왜 세계의 여론을 무시하고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약 1300년 전, 아프가니스탄의 힌두쿠시 산맥 양쪽에 이슬람이 도래한 이후 

이 지역을 지배한 대부분의 왕조는 이슬람을 통치 기반으로 삼았다. 

하지만 20세기 초 국왕 아마눌라 칸은 아프가니스탄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그의 개혁은 종교-민족 지도자들의 반발을 샀으며, 

결국 1929년에 반란이 일어나 아마눌라 칸은 해외로 망명하고 말았다.

 

무함마드 자히르 샤는 왕위를 이어받은 후 

40년간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여 

1946년에 유엔에 가입하는 등 국제사회의 일원으로도 활약했다. 

그러나 1973년 쿠데타가 일어나 왕정이 전복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는 전쟁과 내란으로 얼룩지게 되었다. 

 

쿠데타에 성공하고 대통령이 된 무함마드 다우드는 야심 찬 경제개발 계획을 발표하면서 

서양의 유혹을 뿌리치고 소련의 역할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그의 독재정치는 극단적인 좌익 지식인과 군부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정적 지도자들로부터도 반발을 샀다. 

사회주의 성향으로 변모해 가던 아프가니스탄에 정치적 혼란이 거듭되자 

결국 1979년 12월 25일 소련군이 개입되었다. 

이때부터 소련군이 철수할 때까지 

이슬람 원리주의로 무장한 ‘무자히딘(전사들)’ 과 소련군 사이에 9년간 전쟁이 계속되었다. 


소련군이 철수한 후에도 소련의 괴뢰 정부 나질불라 정부와 무자히딘 간의 내전이 계속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더욱 깊은 전쟁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1992년 미국과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무자히딘 그룹이 세력을 장악하는 듯했다. 

그러나 남부 파키스탄 국경 부근에서 파쉬툰족이 주축을 이룬 

탈레반 그룹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내전 양상은 새롭게 변화되었다. 

탈레반은 1994년 가을 스스로 이슬람주의 학생이라고 자처하며, 

아프가니스탄의 내전 전면에 나선 신흥 집단이다. 


탈레반은 자신들의 최종 목표는 국내에서 군벌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엄격한 이슬람법을 적용시킨 이슬람 정부를 탄생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탈레반은 1996년 9월 카불을 점령하였으며 

아프가니스탄 대부분 지역을 장악해 실질적인 집권 권력이 되었지만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합법정부로 인정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내전은 권력을 장악한 탈레반측과 

반탈레반 연합세력인 이슬람 연합전선으로 양상이 바뀌었고 

배후에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엮이게 되었다.

탈레반을 지원하는 국가는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있으며 

미국도 러시아와 이란을 견제해 간접적으로 지원했다. 


반면 러시아는 이슬람 연합전선을 간접 지원했다.

이처럼 아프가니스탄 내전이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하자 

유엔과 이슬람 회의기구가 중재에 나서 파키스탄에서 양측이 회담을 가졌지만 

1999년 8월 휴전 1년 만에 다시 무력 충돌해 평화회담은 고착상태에 빠졌다. 

 

1996년 탈레반 세력은 수도 카불을 비롯해 

아프가니스탄 대부분 지역을 장악해 정권을 장악해서 

모든 비이슬람적인 법의 규정을 무효화시키고

 1964년 자히르 샤 시대에 제정한 이슬람법을 근간으로 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통치 경험이 부족한 탈레반 정부는 지나치게 이슬람 원리에 집착한 나머지 

극단적인 정책을 폄으로써 국내외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 및 세계 사면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형벌에 있어서도 이슬람법을 적용해 

강간죄에 투석형을, 

절도죄에 손목 절단형을, 

음주에 태형 등을 적용해 

비인도적인 형벌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게다가 동남아시아의 미얀마와 함께 세계 마약의 80% 이상을 생산한다는 불명예를 안고 있으며 

탈레반 정부가 마약 재배의 주범이라는 누명까지 쓰고 있는 실정이다.


 

<지하드란?>

지하드란 가장 오해받고 악용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다. 
 일부 무슬림들이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하드란 개념을 오용, 남용하고 있어 

많은 비무슬림들이 이것을 오해하고 있다. 
 또한 일부 비무슬림들은 이슬람과 무슬림들의 불신을 촉진하기 위해 

이 의미를 의도적으로 오역하기도 한다. 

 

언론에서는 지하드를 성전으로만 사용하고 있으나 

이 단어는 성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의 언어적 의미는 분투하다, 노력하다 또는 힘쓰다 이다.


꾸란에서 이 단어는 다양한 형태로 33번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종종 믿음, 참회, 올바른 행동, 이주 등과 같은 다른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지하드는 하느님의 대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가르침과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내부적 투쟁과 이슬람의 적들에 대해 

하느님의 의지에 따라 행하는 전통적인 성전을 의미한다. 

이슬람에서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지하드는 정의와 진리를 위한 내적 투쟁이다. 

 

이슬람은 전쟁 상황에서도 고유의 윤리관을 강조하고 있다. 

전쟁의 목적은 인간들을 강제로 개종시키거나 영토의 부, 

자신의 영광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생명, 재산, 영토, 명예 그리고 자유를 압제자와 불법으로부터 지키는 과정이다. 

 

미국은 테러를 근절시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보복공격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 보복공격은 테러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 전쟁의 시작일 뿐이다. 

그동안 미국은 이 지역에서 미사일이나 핵무기만 억제하면 

큰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 하에 힘의 논리를 앞세운 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9.11 테러는 이러한 믿음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즉 현대사회는 핵무기나 미사일 없이도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따라서 미국은 군사적인 방법보다는 진정으로 난민을 구제할 경제지원에 역점을 둔 

정책과 같이 진정한 패권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어 

이슬람 국가들의 한을 털고 미국을 새롭게 인식할 기회를 제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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