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석유
OPEC(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은 석유 수출국기구의 영문 약자다.
현재 11개국(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 에미레이트, 알제리,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이 회원국이다.
중동에 석유가 알려진 것은 20세기가 시작되면서였다.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경쟁적으로 중동 석유의 중요성을 알고
채굴권과 생산, 판매를 독점하면서 실제로 산유국에 돌아가는 비중은 극히 미미했다.
1970년까지 배럴당 원유가는 2달러 미만이었다.
석유 1배럴이 159리터이니 1리터에 0.6센트가 채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그런데도 소비자는 1리터에 거의 1달러에 휘발유를 사야 했다.

생산원가에서 200배에 달하는 가격에서 일부는 산유국이 가지고 대부분의 이익은 석유재벌들이 차지하였다.
이런 왜곡된 구조는 거의 70년간 지속되었다.
알라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은총을 고스란히 이교도 손에 빼앗기고
자신들은 고가의 석유제품을 몇십 배를 주고 사야 하는 기막힌 악순환의 시간이었다.
제 값을 받으려는 요구와 석유를 국유화하려는 시도는 석유재벌과 강대국의 폭거에 번번이 무산되었다.
참다못한 산유국들은 1960년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자는 비장한 각오로
OPEC을 창설해서 공동전선을 펴기로 했다.
OPEC의 설립 이후에도 산유국을 약화시키기 위한 강대국의 시도는 계속되었고
무모하게 석유 국유화를 시도했던
이란의 모사데크 수상은 석유재벌들의 보이콧으로 몇 개월을 못 버티고 정권을 잃어야 했다.
OPEC이 나름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까지는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1969년 리비아에 카다피 정권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등장하면서 새로운 기운을 얻었다.
영국 사관학교 재학 시, 영국을 방문한 리비아 왕이 영국을 상대로
비굴하고 치욕적인 석유 이권을 넘기는 장면을 목격한
카다피와 청년장교단은 귀국 후 9월 혁명을 통해 아랍 민주주의를 강력하게 표방하였다.
동시에 그는 석유 재벌들 과의 힘겨운 투쟁을 통해 석유가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리비아 석유에만 의존하던 최대 인디펜던스 회사인 옥시덴탈을 상대로
정부 지분율 인상 협상에 성공함으로써 좋은 선례를 남겼고, 결국 메이저들의 인상을 유도할 수 있었다.
이런 힘이 결집되어 1973년 4차 중동전쟁을 기점으로 석유 무기화에 성공하여
국제원유시장의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른 원유 제값 받기 시도가 태동되었다.
결국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자원 보유국가인 중동 산유국가의 혜택을 탈취하고,
배럴 당 2달러 미만이라는 거의 공짜에 가까운 원유를 통해
지난 60년간의 이익을 얻어 선진 공업국으로 발돋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