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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Feb 13. 2023

예기치 못한 여행

3박 4일


변기에 호떡 크기의 시커먼 똥덩어리가 있어 계속 물을 내렸지만, 

그대로 남아 있어 짜증 날 즈음 주위로 시커먼 똥물이 밀려들었다.
 꿈이었다.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의 기억은 선명했다.
 똥은 재물과 연관된다는 꿈 해몽을 보고 로또 복권을 사서 지갑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새벽에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바닥이라도 짚고 일어서야 하는데, 일어날 수 없다. 

아내를 불러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소변이 짙은 갈색으로 변했고, 오른쪽 아랫배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식욕은 감퇴되고 먹고 싶은 게 없어졌다. 
 며칠이 지나니 통증은 나아졌지만 몸은 여전히 불편했다. 

 


주말에 서울에 있는 아들이 이번 기회에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보라는 말에 

월요일 아침 병원을 찾았다. 
 내과 진료를 맡은 젊은 의사는 몇 가지 검사를 진행했고 

손으로 오른쪽, 왼쪽 아랫배를 눌려 보았다.
 오른쪽 아랫배를 눌렸을 때는 확실히 통증이 느껴졌다. 


 CT촬영이 진행되었고, 

급성 맹장염이라 판단한 내과 의사는 모든 업무를 외과로 넘겼다. 

차트를 넘겨받은 외과의사는 추가 검사를 지시했고 결과를 놓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맹장이 파열되었고, 그 염증이 온몸에 퍼졌으니 신속히 수술을 해야 합니다. 

요즈음 맹장 수술은 배꼽을 통해 장비를 넣어 제거할 수 있지만 

환자의 경우 염증이 온몸에 퍼져 있어 

아랫배 3곳에 구멍을 뚫고 추가 장비를 설치해 염증제거 작업을 병행해야 합니다. 

당장 결정을 내려 주시면 오후 5시경에는 수술이 가능합니다.”

아내에게 상황을 전했고 지체 없이 수술을 하기로 했다. 



 입원실이 배정되었고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후, 수술대에 올랐다. 

오후 4시 40분 수술실로 들어간 후,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오후 7시가 넘어서야 정신이 돌아왔고 내가 있는 곳이 입원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손등에 꼽힌 주사 바늘을 통해 주사액이 끊임없이 내 몸속으로 들어왔고 

환자복 주머니에는 작은 참외 크기의 피주머니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의사는 물도 마실 수 없는 금식조치를 내렸다. 

 


4인실 병실인 306호는 간호사실 우측에 자리 잡았다.
 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3개의 침상이, 

우측으로 1개의 침상이 길이 방향으로 놓여있었다. 
 좌측 제일 안쪽 침상이 내가 머문 곳으로 밤이면 벽을 통해 냉기가 느껴졌다. 


 이곳 입원실은 보통 1주일이 지나면 퇴원을 했지만 

옆 침상은 환자는 당뇨병 환자로 발이 썩어 들어갈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40대 초반인 이 환자는 병원에서 공급하는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았고 틈이 나는 대로 매점에서 컵라면 같은 패스트푸드를 사서 먹었다. 
 


당직 간호사와 조무사만 자리를 지키는 새벽 2시, 

할아버지가 옆 병실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커피 마시려 왔다. 문을 열어 줘.” 

몇 번 문을 두드렸지만 방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고, 

조무사와 간호사가 나타나 할아버지 밤늦은 시간에 이러시면 안 된다며 

손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돌려보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이 할아버지는 

간혹 밤늦게 다른 병실 문을 두드리며 커피를 찾는 모양이다. 

놀라지 않고 할아버지를 대하는 두 사람의 표정으로 이 일이 일상임을 알 수 있었다. 

 


수요일 아침, 병원에 들어온 지 3일 차가 되자, 담당 간호사는 가스방출(방귀)을 물었고, 

가스가 방출되면 자신에게 알려 달라고 했다. 
 오후에 가스 방출이 있자, 

병원에서는 금식을 해제하고 죽을 준비 해 주었다. 
 3일 만에 목구멍으로 음식이 넘어갔지만 간신히 죽 반그릇만 먹고 숟가락을 놓았다. 

 


목요일 아침, 수술 후 검사를 마치고 

수술부위 소독과 점검을 받는 자리에서 담당의사는 퇴원 가능성을 비쳤고, 

당장 퇴원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히자 퇴원이 허락되었다. 


 한시라도 빨리 병원을 벗어나고 픈마음에 퇴원 수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내가 끓여준 따뜻한 ‘마죽’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깊은 잠에 빠졌다. 

나의 예기치 않은 3박 4일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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