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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 장군

by 산내


커피를 내렸다.

뜨거운 커피 한잔을 들고 볕 좋은 창가에 앉았다.

나른한 졸음과 함께 작은 행복을 느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카이저’는 화명동에서 태어났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강이 흐르는 명당 지역이었다.

사통팔방 교통도 좋고, 살기 좋은 곳이었지만, 사대부들은 북구라는 이름으로 평가절하하는 그런 곳이었다.

카이저는 다양한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먼저 골격이 단단하고 커서 북구에서는 대장이었고, 나라 전체로 보아도 그만한 체격은 흔치 않았다.

서당 생활도 단연히 돋보였고, 성적뿐만 아니라, 활쏘기, 말 타기 그리고 칼을 쓰는 솜씨는

주위 사람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심성도 좋아 약한 자를 돕고 불의에 맞서며 부모님에 대한 효성도 지극했다.

한 가지 흠이라면, 한양 생활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카이저는 과거시험에 응시해서 장원급제했다.

날카로운 송곳은 호주머니 속을 뚫고 나온다는 옛말처럼 그의 뛰어난 재능은 여러 사람들 속에서도 돋보였다.

전장에서 언제나 선두에 서서 공을 세우니 따르는 부하도 많았고 조정에서도 신임이 두터웠다.

황제도 그를 장군으로 임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카이저는 최연소 장군이 되는 영예를 누렸다.

그 당시 조정의 세력 중심에는 외척들이 있었고 왕비가 해운대 출신이라

그쪽 출신의 권력은 나는 새를 떨어뜨렸다.

왕비의 아버지 떡방은 이 위세를 이용해 황제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벼슬은 돈을 받고 팔았고, 물가를 자신의 마음대로 조정했다.

자신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자나 지시한 말을 따르지 않는 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자리를 떠나야 했다.

심한 경우에는 목숨을 잃었다.

떡방의 집 근처 주막은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관직을 얻으려는 사람과 뇌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사람들로 방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신하들도 귀한 물건은 먼저 떡방에게 바쳤고 그다음이 황제였다.

떡방이는 카이저를 자신의 아래로 확실하게 묶어 두고 싶어 여러 번 불러 맛있는 음식과

그가 좋아하는 술로 접대를 했지만, 카이저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카이저를 아래에 두고 심복으로 쓸 수 없다면, 죽이든지, 팔다리를 절단해서 미리 대비해야 한다.”

떡방이는 심복인 황별에게 은밀히 일렀다.


황별이는 떡방이 조직한 해정회 핵심인원이었다.

거칠고 사나우며 빠른 머리 회전력을 보유한 황별이는 고아 출신으로 출세를 위해 떡방에게 충성을 다했다.

황별이는 떡방을 아버지라 불렀다.

이런 황별에게 카이저는 늘 눈에 가시였다.

카이저를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떤 희생을 치를 수 있었다.

죽이든지 평생 불구로 살게 하고픈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다.

카이저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이름은 낙코이였다.

낙코이는 같은 마을 유지 집안의 둘째 딸로 현명하고 지적인 여자였다.

같은 서당 출신으로 두 사람은 산 위에 올라 강으로 지는 석양을 보며 사랑을 키웠다.

두 사람 모두 석양을 유난히 좋아했다.

황제를 만나고 나오는 카이저에게 황별이 다가왔다.

“카 장군 나에게 중국에서 들어온 귀한 술이 있으니 한잔 하면서 회포나 풉시다.”

카이저는 황 별이 와 거리를 두고 싶었지만, 좋아하는 술에

그들의 꿍꿍이 속도 알아볼 겸 자리를 같이 했다.

술이 어느 정도 취하자, 황별이는 카이저의 술잔에 준비한 약을 풀었다.

정신을 잃은 카이저를 묶어 두고 황별이는 떡방을 찾아갔다.

“아버님 카이저를 손안에 넣었습니다. 당장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겠습니다.”

“아니다, 조금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자,”

“그러면 일단 팔, 다리 하나 식 절단하여 다시는 사람 구실 못하도록 해 놓겠습니다.”

“그것도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황제가 되면 그때 쓸 일이 있을 것 같다. 말을 듣지 않으면

그때 처리해도 늦지 않다. 가두리 성 지하 감방에 감금해서 철저히 감시해라.”

그날로 카이저 장군은 가두리 성 지하 감방에 갇혀 세상 구경을 할 수 없었다.

낙코이는 시간이 갈수록 초조했다.

벌써 일주일이나 카이저에게 연락이 없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소식을 전하고, 거처를 확실히 하는 사람이란 걸 낙코이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내일이면 개비 참모장을 만나보자.’

개비 참모장은 카이저 장군의 직속으로, 상, 하를 떠나 깊이 신뢰하는 관계였다.

“그렇지 않아도 찾아뵙고 상의드리고 싶었습니다. 정확한 정보통에 의하면
장군은 황별의 손아귀에 있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오늘 밤 행동을 취할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가두리 성은 위험한 곳이라 특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소수 정예부대를 구축해 놓고

어두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기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을까요?” 낙코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구출도 어려운 문제지만 그 후 대책을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여기에 계시면 이쪽으로 모시고 오겠습니다.”

개비 참모장은 이번 작전을 직접 지휘했다.

그들은 어둠이 내리자 행동을 개시했다.

가두리성은 명성대로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특수 장비와 잘 훈련된 정예병들이 이런 어려움들을 하나하나 풀었다.

해정회 인원들은 가두리 성의 지리적 위치만 믿고 경계를 소홀히 했다.

카이저를 구한 개비 일행들은 동이 트기 전, 무사히 빠져나왔다.

날이 새면 떡방의 친위대가 이 사실을 알고 출동할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들 조직의 파괴력과 잔인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시간을 벌고 대책을 마련해 승부를 걸어야 한다.

개비 참모장은 낙코이에게 간호를 부탁하고 서둘러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카이저 군사는 5239명, 해정회는 3만이 넘는 대군이었다.
전략과 전술 외에도 지원군이 필요했다.

더구나, 카이저 군은 신병과 노병들이 많았다.

전방을 맡을 1, 3, 5군은 나름 전투 경력도 있고 열의도 있었지만, 후방을 맡을 2, 4, 6군은 노병들이 주였다.

게다가 7군은 강 건너 주둔해서 소통에도 문제가 있었다.

개비 참모장은 각군의 대표들을 불러 대책을 강구했다.

하지만, 의견만 분분할 뿐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

밤이 늦은 시간, 1군과 3군을 지휘하는 동해와 짱이 참모장을 찾아왔다.

“일주일 정도 시간을 벌어, 후방에 있는 2, 4, 6군을 재배치시키고,

북구에서 지원군이 도착한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2. 4. 6군 재배치는 각 군의 대표가 맡으면 되고, 지원군 요청은 전령이 장군의 친서를 돌리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어떻게 해야 시간을 벌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황별은 아직도 장군을 필요로 하니, 일주일 동안 몸을 회복하여,

수하로 들어가겠다고 약속하면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후면 거짓이 탄로 나 목숨을 잃어야 하는데... 누가 이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그 역할은 제가 맡겠습니다.” 동해 대장이 말했다.

“북구에 지원군을 요청하는 일은 저에게 맡겨 주세요.” 낙코이가 나섰다

동해를 만난, 떡방은 카이저가 일주일 후, 자신에게 온다는 소식에 기쁨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세력에 카이저가 가담한다면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동해를 볼모로 잡고 일주일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동해를 떡방의 군영으로 보내고 개비 참모장은 내부 정비를 시작했다.

먼저 각 군의 부대장이 철저히 자신의 군을 책임지게 했고, 군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전령 제도를 활성화했다.

후방에 있는 노병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가진 경험을 군 조직에 반영시켰다.

마지막으로 강 건너에 위치한 7군은 전투가 시작되면, 적군의 후방을 기습하기로 했다.

일주일 후. 카이저가 나타나지 않자 떡방은 불같이 화를 냈다.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나를 속이다니.” 전군에 출동 명령을 내렸고 동해를 데려와 무릎을 꿇였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면 카이저를 설득하겠습니다.”

“좋다. 이 놈을 선두에 세우고 카이저에게 유세할 기회를 주어라.”

대군은 출동 준비를 마쳤고 동해를 포박한 채 끌고 갔다.

대군이 성 앞에 도착했다.

“먼저 나가 카이저를 설득해라.” 떡방은 동해에게 조용히 말했다.

동해는 성 밑에 도착해 큰 소리로 외쳤다.

“가두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 그 순간 동해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이 광경을 본 카이저 군은 믿을 수가 없었다.

동해는 카이저에서 보물 같은 존재였다. 늘 부하들과 같이 생활했다.

같이 먹고 같이 자며 생사 고락을 같이했다.

심한 종기로 고생하는 부하를 위해 입으로 종기를 빨아 고름을 빼내어 치료해 준 것도 여러 번이었다.

자신을 희생하고 카이저의 발전을 위해 앞장섰던 동해의 죽음은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래 매운맛을 보여주자.”

두 군사들이 맞붙었지만 카이저 군은 밀리지 않았다.

해가 질 때까지 6번을 싸워 카이저 군이 4번 승리했다.

“오래 끌 수록 불리하다. 내일이면 승부를 걸자.” 카이저는 군사들 앞에서 총력전을 예고했다.

새벽안갯 속, 기습을 위해 말에 재갈을 물린 기병들이 어둠이 걷히는 성문을 나섰다.

갑자기 들이닥친 기습에 놀란 적군은 혼란에 빠졌고 뒤 따라 들이닥친 보병까지 합세하자

카이저 군이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해정회에는 수많은 전투 경험과 산전수전 다 격은 친위병이 있었다.

지휘관은 악명 높은 황별이었다.

친위병이 양쪽에서 카이저 군을 공격하니 전세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혼란에 빠졌다.

수많은 병사들이 황별의 칼끝에 죽어 나갔다.

맞서 싸우는 카이저 장군의 옷은 피로 물들었고, 얼마나 많은 목을 베었는지 칼날도 무디어졌다.

그 순간 적군의 후미가 어수선해졌다.

7군의 후방 기습이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냉대만 받아오던 7군의 설움이 칼끝에 묻어났다.

7군의 위세는 대단하여 친위대의 기를 완전히 꺾어 버렸다.

카이저는 말머리를 돌리는 황별을 보고 따라잡았다.

날카로운 칼날이 황별의 심장을 노렸다.

황별은 카이저의 칼을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마침, 낙코이가 이끈 북구의 지원군도 도착해 적의 옆구리를 공격하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떡방은 북을 울려 군사를 후퇴시켰다.

이곳저곳에서 “만세”소리가 들렸다.

카이저 장군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개비 참모장은 7군 대장을 얼싸안고 울었다.

“카이저 만세, 만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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