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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Jul 11. 2021

롯지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랙킹

그래 내가 미친놈이지. 죽을 라면 나 혼자 곱게 죽지, 이 먼 곳에 죄 없는 아내까지 데리고 와서...,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날이 밝으면 내려가자.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충분하니 미련 없이 돌아가자.’

 

2007년 겨울, 나는 아내와 함께 17박 18일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랙킹을 떠났다.
     고등학생인 아들과 중학생인 딸을 두고 갈 수 없다는 아내를 설득하여

아이들은 장모님께 맡기고 떠난 여행이었다.


7일 동안, 푼힐 전망대를 거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오르는 길로 접어들어,

이틀 후면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전날부터 심한 고산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먹지도 못하고,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니,

세상만사가 귀찮고 호흡이 가파 한 발짝 움직이는 것도 힘이 들었다.

 

저녁도 거른 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롯지에 누우니, 무섭고 불길한 생각이 나 자신을 덮쳤다.

천 길 낭떠러지가 보이고, 눈사태와 산사태가 덮치며, 발을 헛디뎌 떨어지기를 수십 번 하였다.

밤에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그렇게 무서운지 처음 알았다.

밤새워 내린 결론은 아침 해가 뜨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산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다시는 떠 오르지 않을 것 같은 태양이 날을 밝히고,

무섭게 흐르든 계곡물소리도 일상의 소리들과 어울려 조화를 이루니,

 간밤의 무섭든 생각들은 어느덧 사라지고, 내려가는 길이 아니라,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한 발 한 발 산을 오르니, 죽을 것 같은 고산병도 서서히 나를 놓아주었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눈 덥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산속에서의 기억과 그 날밤 그 롯지에서의 두려움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나의 삶을 한없이 겸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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