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과 인스턴트 커피의 등장
전쟁은 새로 나온 '인스턴트커피'를크게 띄워 주는 계기로 작용했다.
1906년에 과테말라에 살고 있던 조지 워싱턴이라는 이름의 벨기에인이
블루잉한 커피에서 추출한 커피 결정체를 정제하려는 착상을 생각해 냈다.
1910년 무렵, 워싱턴은 이제 미국의 시민으로 뉴욕에 살면서
자신의 G. 워싱턴 (G. Washington) 사의 이름으로 리파인드 커피를 시장에 내놓았다.
이 인스턴트커피는 갓 로스팅한 원두로 블루잉한 커피의 향이나 맛, 바디가 담기지는 않았으나,
신기하게 즉석에서 타 먹을 수 있는 데다 진짜 커피 같은 맛이 나고
커피와 똑같이 따뜻한 온기와 카페인 섭취의 효과를 주었다.
지속적인 광고와 기발한 판촉을 통해 이 인스턴트커피는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이전부터 유명해졌다.
1918년 여름,
미 육군은 G워싱턴의 생산분 전량을 병사용 식량으로 징발했고
회사에서는 재빨리 이 사실을 광고로 냈다.
"G워싱턴의 리파인드 커피가 전쟁에 함께 참가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이 인스턴트커피에 감사해하는 고객들도 있었다.
다음은 1918년에 참호 근무를 하던 한 보병이 쓴 글이다.
"쥐들, 쏟아지는 비, 질척대는 진흙, 가뭄, 대포의 굉음, 탄피의 쇳소리 속에서도 나는 정말 행복하다.
단 1분이면 내 작은 석유 히터에 불을 켜서 조지 워싱턴 커피를 타 마실 수 있다.
매일 밤마다 [워싱턴 씨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게 된다.
또 다른 병사는 이렇게 썼다.
"독일을 격파시켜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가장 먼저 찾아가고 싶은 한 신사가 있다.
바로 브루클린의 조지 워싱턴 씨다.
그분은 우리 병사들의 친구다"
보병들은 커피 한잔이 아니라 "조지" 한잔이라고 말하는 것이 다반사일 정도였다.

이에 다른 커피 로스팅업자들도 서로 앞 다퉈 인스턴트커피를 개발했는가 하면
미국의 솔루블 커피 컴퍼니 오브 아메리카 같은
신설 회사들이 속속 생겨났다.
1918년 10월 무렵, 육군에서 요청하는 인스턴트커피의 분량은 일일 316,783킬로그램에 달했으나
미국 내 전체 생산량은 2,721킬로그램에 불과했다.
그러다 1918년 11월에 전쟁이 끝나며 갑자기 인스턴트커피의 시장이 없어지자
생산업자들 상당수가 폐업하고 말았다.
이 와중에도 G워싱턴 사는 살아남았지만 수많은 신봉자들을 끌어내지는 못했고
또 한 번의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인스턴트커피의 부흥을 되살리지 못했다.

평화는 커피 생산업자들에게 잠시나마 번영을 누리게 해 주었으나
이것도 미국의 로스팅업자들에게는 남의 얘기였다.
전쟁이 곧 끝날 것이 확실해지자 브라질의
무역업자들은 유럽의 수요가 되살아날 것을 기대하며
산투스의 선물거래 가격을 전례가 없을 만큼 최고치로 치솟게 했다.
한편 미국식량관리국에서는 물가가 천정부지로 솟을까 봐 우려하여 선물거래의 전면 청산을 명령했다.
적극적인 커피업자들은 후버에게 전보를 보내,
생산 지역에서의 가격이 치솟고 있어서 저희 업자들이 수입을 꺼리는 실정인데,
이는 연계매매로 손해를 막을 수 있는 자유 시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소연하며
"규제에 전적으로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계약"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후버는 이번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미국의 파견군은 전시 동안 34,019430킬로그램의 커피를 이용했으며,
독일의 미 점령군도 일일 1,134킬로그램의 커피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전쟁이 참전자들을 커피에 중독시킨 셈이었다.
한 커피 로스팅업자는 흐뭇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커피를 사랑하는 국민의 행복한 무적의 전사인, 우리의 병사들에게 맛 좋은 커피 한잔은 하나의 일상이다.
그것도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