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하우스, 부활하다
1920년대에는 금주법, 적극적 홍보, 대중의 열풍에 힘입어
미국의 대도시마다 커피하우스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1923년에 뉴욕 타임스에서 "커피에 취한 뉴욕"이라는 부제의 기사를 실었을 지경이었다.
이 부제에는 "뉴욕이 그렇게 흥분에 들떠 있는 것, 다시 말해,
그렇게 활기에 넘치는 이유는 바로 커피 때문"이라는 부연설명까지 달렸다.
커피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재즈 시대로 들어섰다.
실제로 위 기사의 첫대목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남녀를 막론하고 아침으로 커피만 마시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또한 업무 스트레스를 받고 나서 활력제로 하루 중 아무 때고 커피를 찾고 있다."

같은 해, 미국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약 6킬로그램으로 올랐는데,
이 정도의 양은 지난 수년 동안 4.5킬로그램이나 5킬로그램 언저리에 머물고 있던 것과
비교되는 수치일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이 전 세계 공급량의 절반을 소비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수치였다.
"그대는 내 커피 속의 크림. 나에게는 그대가 꼭 필요해요. 그대 없이는 못 살아요."
1928년에 히트 친 러브송의 한 가사인데,
실제로 이 무렵 커피는 미국인의 삶 속에서 하나의 주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남자들의 세계이던 커피 로스팅업계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앨리스 푸트 맥두걸은
이 시기 커피하우스로 거액을 벌어들였다.
그녀는 1919년에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두고 그랜드 센트럴 역 리틀 커피이라는 가게를 열었다.
처음엔 약 3.6 ×4.8미터 넓이의 좁은 매장을 내서 커피 통원두만 조금씩 가져다 놓고 팔았다.
그러다 향을 풍겨 고객을 끌어 볼 심산으로 큼지막한 전자식 퍼컬레이터를 들여놓게 되었다.
그녀는 "지친 통근자들이 앉아서 잠깐 쉬어 가고 싶게끔 편하고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애쓰다가,
커피를 잔에 담아 작은 탁자로 서빙해 주는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1921년 2월의 바람이 거세던 어느 날, 맥두걸은 문득 어떤 착상을 떠올리게 된다.
그날 그녀가 그랜드 센트럴 역으로 들어갔더니
넓은 통로에 사람들이 축축이 젖은 형편없는 몰골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집으로 전화를 걸어 와플 굽는 틀과 재료를 가져오라고 시킨 뒤,
창문에 '와플'이라고 쓴 작은 표식을 내붙였다.
그리곤 커피 값만 받고 와플은 무료로 주었다.
그다음 토요일에 그녀는 또다시 와플을 구웠는데 이번엔 와플 값을 받았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언젠가부터 날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커피와 와플을 서빙해 줄 정도가 되었고
자리가 없어서 되돌려 보내야 하는 손님도 한둘이 아니었다. "

1922년에 맥두걸은 43번가에 커피하우스 2호점을 열었는데 개점 첫날 250명의 손님을 받았다.
그녀는 흑인 여성들을 고용해 와플을 굽게 하여
"남부풍 와플, 유색인종 하녀, 통나무집 스타일의 콘셉트를 제시했다.
얼마 후 그녀는 메뉴에 샌드위치를 추가했고,
그 뒤에도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맛있는 음식을 추가했다.
1923년 3월 무렵 맥두걸의 커피하우스는 몰려드는 손님들에게 세끼 식사를 모두 제공해 주고 있었지만,
그녀 자신은 하루 열여덟 시간씩 일하느라 지쳐서 유럽으로 휴가를 떠났다.
그리고 곧 아름다운 이탈리아와 친절하게 웃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감동받아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맥두걸은 옆의 가게를 임대해 개점 1년도 안 되어 매장을 두 배로 키웠다.
새 매장은 폭이 좁고 긴 형태에 높이가 약 5.5미터였다.
맥두걸은 이탈리아의 벽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 높은 벽에 2층을 중축해 올리고 아래층 공간은 이탈리아풍 정원,
즉 코르틸레(cortile)로 변신시키면서 가게 이름도 코르틸레로 바꾸었다.
그해 말에, 사업이 번창하자 맥두걸은 웨스트 43번가에 제3호점 커피하우스,
피아체타"(Piazzeta)를 열었다.
이번엔 나폴리의 작은 광장을 모델로 삼은 가게였다.
1925년에는 46번가에 플로렌스를 본뜬 4호점, 피렌체(Firenze)도 개점했다.
또 1927년에는 웨스트 57번가에 5호점이자 최대 규모의 커피하우스 세빌리아(Sevillia)를 열어서
1백만 달러(20년간 연 5만 달러)에 임대해 준다는 푯말을 내걸었다.
1928년에 자서전을 펴낼 무렵 맥두걸의 커피하우스는 모두 통틀어 채용 직원이 7백 명에,
일일 방문고객이 6천 명에 달했으며, 2백만 달러의 연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맥두걸처럼 이렇게 대박을 터뜨린 경우가 드물 긴 했으나,
20년대 동안 미국의 대도시에는 커피하우스 개점이 붐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