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10)

인스턴트

by 산내


인스턴트커피 산업은 전후 시대에 들어서면서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

특히 초반에는 네스카페가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미국의 시장을 지배했다.

그리고 국제적 위세를 떨치던 이 스위스 회사는 유럽,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남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 자사의 인스턴트 브랜드를 출시했다.


그러나 전세계에서 미국이야말로 가장 잠재성이 큰 시장이었다.

새로운 인스턴트 브랜드들이 급증하면서

현대적인 미국 소비자들은 편리함을 위해 기꺼이 품질을 양보했다.

특히 1950년에 보통의 로스팅 커피가 파운드당 80센트까지 치솟자

인스턴트를 찾는 수요가 그야말로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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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커피는 높은 타워형 분사 시설과 후처리 공정 시설을 위해 막대한 자본의 지출이 필요했으나

제조비용이 한 잔당 1.25센트꼴로 보통의 로스팅 커피보다 1센트 낮았다.

인스턴트커피의 맛은 너무 형편없어서 어떤 원두를 쓰는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자국의 경제에 달러를 주입하기에 급급하던

아프리카 식민지들의 값싼 로부스타 원두도 이런 인스턴트커피의 원료로 쓰였다.

게다가 제조업자들은 커피 가루를 과잉 추출함으로써 원두 한 톨 한 톨을 더 알뜰하게 짜 낼 수 있었다.


1952년 말엽, 인스턴트커피는 미국의 전체 커피 소비에서 17퍼센트를 차지했다.

인스턴트 맥스웰하우스와 네스카페의 두 브랜드 모두 연간 광고료로 1백만 달러 이상을 썼다.
다음은 인스턴트 맥스웰하우스가 내세웠던 광고 문구이다.

"커피의 놀라운 신세계!

이것은 단순한 분말이 아닙니다!

단순한 가루가 아닙니다!

진짜 커피의 맛이 깃든 수백만 개의 작은 풍미 봉오리여서,

마지막 한방울까지 맛있는 그 유명한 풍미를 즉각적으로 터뜨려 줍니다!"


한편 네스카페는 이렇게 광고했다.

"가족 각자의 입맛에 맞추어 강도를 조절하기 쉽고,

포트나 퍼컬레이터를 준비하느라 수선을 피우지 않아도 됩니다.

귀찮은 청소도, 커피 분쇄도 필요 없습니다."


이 스위스 회사의 단조로운 광고들은 소비자들의 상상력을 매료시키지 못했고,

결국 1953년에 인스턴트 맥스웰하우스가 네스카페를 앞지를 만큼 도약하며

미국 인스턴트커피 판매에서 경쟁 상대 없는 선두로 올라섰다.

그러나 인스턴트 맥스웰하우스는 낮은 가격과 막대한 광고 투자를 통해

그 선두 자리를 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스턴트커피에 대한 브랜드 충성도는 희박한 편이었다.

공장 하나당 1백만 달러인 인스턴트커피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자본을 모으기 위해

열 개의 영세 로스팅업체들이 서로 힘을 합치면서,

인스턴트커피 생산을 위해 하루 24시간 가동되는 뉴저지주 소재의 협동조합, 텐코가 설립되었다.


특히 에드워드 본 주니어는 그의 아버지가 예전에 뛰어난 브루잉 방식을 개발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유서 깊은 가문의 회사를 매각하고 텐코에 합류하며 업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 주었다.


또한 미국 커피 회사 A&P의 수장으로서 커피업계를 호령하던 베렌트 프리엘레는

텐코에 투자하도록 넬슨 록펠러를 설득했다.

인스턴트커피가 인기를 끌면서 뒤이어 자판기도 등장했다.

1947년에 군의 기계기사 출신이던 로이드 러드와 K. C. 멜리키안이

5초 만에 종이컵에 뜨거운 인스턴트커피를 담아주는 퀵 카페라는 자판기를 선보였다.


러드멜리키안 인코퍼레이션은 첫해에 3백 대의 자판기를 팔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회사들도 이들과의 경쟁에 뛰어들었다.

1951년에 이르러 미국에 보급된 자판기는 9천 대도 더 되었고

1950년대 중반에는 6만 대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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