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티 커피 혁명
스페셜티 커피는 여피족이 대세로 떠올랐던
호경기 시절인 1980년대에 딱 어울리는 음료였다.
이른바 도시의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이던 여피족은
화려한 삶을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돈을 쓰던 세대였으니 말이다.
1982년 말에 '머니 매거진(Money Magazine)’같은 잡지는 당시의 세태를 간파하여,
"당신이 찾는 커피: 그 풍부함이 와인을 닮은 파운드당 5~10달러의 귀한 원두”류의 타이틀에
스페셜티 커피 개척자들의 말을 인용한 기사로 독자들을 끌었다.
스위스 초콜릿 아몬드(Swiss Chocolate Alomnd)사는 커피 같은 것을 넣은
플레이버드 커피가 소개되기도 했다.
물론 스페셜티 커피 순수주의자들은 여기에 경악했으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런 고객들이 순수 품종 원두로 점차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무튼 플레이버드 커피는 많이 팔렸다.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들은 자신들만의 단체를 조직하고 싶어 했다.
그러던 중 캘리포니아의 테드 링글과 뉴욕의 도널드 홀트가 누구보다 열심히 애쓴 끝에,
1982년 10월에 동해안과 서해안의 양쪽 커피 이상주의자들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
작은 루이자 호텔의 응접실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고심 고심하며 전국현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42명의 회원이 서명하면서 드디어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A)가 탄생하게 되었다.
1983년 1월에 쇤홀트는 이제 막 출범한 스페셜티커피협회의 가입을 권유하는 초대장을 썼다.
"나의 영웅들,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일어나세요 내 멋진 친구들이여 일어나서 당신의 뜻을 펼치세요"
그는 스페셜티커피협 회의 임무가 스니커즈를 신고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으나 다음과 같이 촉구하기도 했다.
"우리는 단합하여 이 임무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를 산 채로 짓밟아 뭉개려는 코끼리 같은 거대 기업 무리 앞에 내팽개쳐질 것입니다."
그러던 1983년 말에 진부한 성향의 『티&커피 트레이드 저널』마저 스페셜티 커피에 주목하게 되었다.
일례로 발행인, 제임스 퀸(James Quinn)은 이렇게 썼다.
"작년만 해도 스페셜티 커피는 미국 시장의 커피 부문 점유율에서
1퍼센트 이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반적인 견해였다.
그런데 현재는 확실한 근거에 따라 스페셜티 커피의 시장이
총 시장 점유율의 3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다음 해에는 매달 서너 명의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들이 업계에 새로 들어섰다.
한 전문가의 추산에 따르면 1985년 무렵엔 스페셜티 커피가
미국의 전체 커피 소매 판매에서 5퍼센트를 차지했고
새로 가게를 내는 로스터들이 매주 한 명 꼴로 등장했다.
또한 미국과 캐나다의 도매업자 수도 125명에 달했고, 이 숫자가 연간 25퍼센트씩 늘고 있었다.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들은 통신판매를 통해 고급품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뉴요커(New Yorker)」, 「고메이」, 「월스트리트저널」에 광고를 실었다.
게다가 이제는 자신들의 원두를 전국으로 포장 운송할 수 있게 되었다.
1900년의 힐스브라더스의 진공캔 이후 가장 혁신적인 포장 혁명인,
원웨이 밸브(one-way Valve) 덕분이었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적층비닐봉지에 이 밸브를 달아 놓으면 갓 볶은 원두에서
'가스를 제거해 주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주되, 산소가 다시 봉투 안으로 유입되지 못하게 해 준다.
1970년에 이탈리아의 루이지 골리오가 발명한 이 원웨이 밸브는
미국에서는 1982년에야 스페셜티 커피 산업에 의해 그 유용성이 발견되었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이용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