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크게 주목받던 시절)
스타벅스는 1992년 6월 26일에 주당 17달러의 공모가에 기업공개를 실시하면서
시가총액이 2억 7천3백만 달러에 이르렀다.
불과 5년 전에 하워드 슐츠가 스타벅스 인수에 4백만 달러가 좀 못 되는 비용을 치렀던 것에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그 뒤로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주가는 33달러로 오르며 스타벅스의 가치는 4억 2천만 달러에 달했다.
슐츠와 데이브 올슨을 비롯해 다른 임원들은 하룻밤 사이에 백만장자 대열에 올라섰다.
당시 술츠의 개인 소유 주식은 110만 주, 즉 8.5퍼센트였다.
스타벅스는 직원들에게 25시간 코스의 교육을 통해 회사 규정을 가르쳤다.
'더블 에스프레소 샷은 18~23초 사이에 추출하고 추출 후 10초 이내에 서빙하되,
그러지 못할 경우엔 버린다.
이 교육에서는 히피 스타일의 젊은 X세대 직원들은 코나 입술, 혀에 피어싱 한 징이나 링을 빼야 했다.
직원들은 로스팅 아로마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는 이유로, 향수도 뿌릴 수 없었다.
슐츠는 스타벅스의 프랜차이즈를 통해 사업의 확장 속도를 네 배로 올릴 수도 있었으나,
공항, 서점 등의 개업인가가 필요한 몇몇 장소만 제외하고 모두 회사 직영 매장으로 열었다.
그는 이런 운영방식을 통해 품질과 직원 교육을 엄격히 통제할 수 있었다.
체인 매장에서는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급여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주당 20시간 이상 일하는 파트타임 직원들까지 대상으로 포함시켜 혁신적인 복지혜택을 제공했다. 그 결과 스타벅스의 이직률은 연 60퍼센트로서, 업계 평균인 200퍼센트 이상의 수준과 비교하여 크게 낮았다.
슐츠는 1991년에는 빈스톡(Bean Stock, 원두주식)' 프로그램을 도입시켰는데,
이 프로그램에 따라 직원들은 이제 '파트너'로 칭해지면서
연 기본급의 12퍼센트에 상당하는 스톡옵션을 제공받고 5년이 지나면 여기에 5분의 1을 더 받게 되었다.
스타벅스는 미국 기업 중 국제원조구호기구에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는 업체로 부상하며
인도네시아, 과테말라, 케냐, 에티오피아 같은 커피 생산국에 그 기부금을 지원한다는 조건하에
90년대 중반까지 연 5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스타벅스는 이러한 자선 활동에 대해 그 감사의 표시로 국제인도주의상을 수상했다.
슐츠는 정말로 이미지 구축의 달인이었던 것 같다.
그 자신도 말했듯 끈기가 대단하기도 했다.
"내 인생사는 재능과 행운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끈기와 추진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될 때까지 의지를 꺾지 않았다.
죽을 각오로 노력하고 누구에게 든 배우려는 자세로 임하고
기회를 최대한 잡으면서, 한걸음 한걸음 성공을 일구어 나갔다."
기업공개 이후, 스타벅스는 매장수가 점점 늘어나
1992년에는 165개, 1993년에는 272개, 1994년에는 425개가 되었다.
90년대 중반 무렵엔 통신판매 고객층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적당한 입점 지를 정하여,
영업일 하루마다 하나 꼴로 매장을 새로 열었다.
슐츠는 매장별 일일 판매량과 수익을 점검하면서 매니저들에게 전화로 치하나 질책의 말을 하기도 했다.
스타벅스는 1993년에 워싱턴 DC의 동해안에 사업의 교두보를 세웠다.
당시에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에서 수잔 스탬버그는
스타벅스식 콘셉트가 그곳에서도 통할지 모르겠다며 의구심을 표했다.
이 도시에서 30년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지만, 이곳은 워커 홀릭들의 도시예요.
그러니까, 죽치고 앉아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할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느냐 이 말이죠.
그러나 스탬버그가 틀렸다. 워싱턴시의 시민들은 스타벅스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슐츠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회사 1백 곳 중 한 곳의 CEO로서
『포춘』의 커버를 장식하기까지 했다.
"하워드 슐츠의 스타벅스는 커피를 갈아 황금으로 만들고 있다." 『포춘』에 실린 글이었다.
스타벅스는 1994년에 미니애폴리스, 보스턴, 뉴욕, 애틀랜타, 댈러스, 휴스턴에 대한 진출 계획을 발표했다. 보스턴에서는 커피 커넥션의 창립자 조지 하웰이 이런 움직임에 초조해하고 있었다.
앞선 1990년에 슐츠는 그에게 매입 제안을 해 온 적이 있었고, 그때 그는 거절했었다.
슐츠는 그 뒤로도 몇 년에 걸쳐 매입 제안을 재차 밝혀 왔다.
하웰은 스타벅스의 다크 로스팅을 경멸하며,
원두별로 섬세한 풍미를 내주는 자신의 미묘한 로스팅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또한 20년에 걸친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1992년부터 커피 케넥션의 새 매장들을 내기 시작했다.
1994년 무렵 하웰은 매장을 21개로 확장시켜 놓았고 그해에 여섯 개의 매장을 더 열 계획 중이었다.
급기야 「보스턴 글로브(Boston Globe)」에 전쟁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실렸다.
"우리는 커피 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습니다."
스타벅스의 마케팅 담당 조지 레이놀즈(George Reynolds)는
보스턴 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으나, 여기에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단지 지배자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라고
하웰은 이에 질세라 이 경쟁 상대의 로스팅 스타일을 빗대 '차벅스'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던 1994년 3월 하웰은 스페셜티 커피업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2천3백만 달러에 매각하기로 스타벅스와 합의했던 것이다.
그는 매장을 급속히 확장하다 보면 어느 정도 품질 통제력을 잃게 마련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다 재정 관리에 골치가 아프자, 사업에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워드 슐츠는 커피커넥션의 사업을 계속 끌고 가겠다고 약속했다.
『비즈니스위크』에서의 표현 그대로, 스타벅스는
"워프(초광속) 스피드로 뻗어 나가며 눈 깜짝할 사이에 뉴욕시를 정복했다.
1995년에는 피츠버그, 라스베이거스, 샌안토니오, 필라델피아, 신시내티, 볼티모어, 오스틴에도 매장을 내며
연말 무렵에 매장수를 총 676개로 늘렸다.
이듬해에는 매장수를 1천 개까지 불렸는데, 그중 한 곳은 도쿄에 연 매장이었다.
하워드 슐츠는 도쿄를 방문했다가
"스타벅스 경험을 느끼기 위해 35도의 날씨에도
줄지어 기다리는 일본인들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는 그만 눈물까지 흘렸다.
스타벅스는 자체적 음반을 발행하기도 했다.
커피를 홀짝이며 듣기에 편안한 재즈곡 모음 CD 「Blue Note Blend」와
여성 가수들의 곡을 모아 놓은 「Songs of the Siren」이 그런 사례였다.
미국의 초대형 서점 체인 반스&노블과 캐나다의 서점 체인 챕터스에서는
고객들이 매장 안의 편안한 카페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스타벅스는 싱가포르, 하와이, 필리핀, 대만, 한국에도 매장을 열었다.
또한 유나이티드항공과 캐나다항공(Canadian Airlines)의 제휴를 통한 기내 서비스 제공,
오프라 윈프리와 공동으로 문맹 퇴치 활동 전개, 호텔 체인 및 크루즈 회사들과의 거래 체결,
한 베이글 체인의 공동 소유권 획득, 시험 삼아 개시한 대형마트 판매 등 다각도의 사업을 펼쳤다.
이제 스타벅스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오가는 일상어로 등극되었고,
이는 전국적인 광고전을 벌이지 않고 거둔 성과였다.
실제로 스타벅스가 창립 후 25년간 광고에 들인 비용은 1천만 달러도 안 되었다.
애드버타이징 에이지의 어느 기자의 말마따나 그야말로 "입소문의 기적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로고가 박힌 머그잔, 텀블러, 보관 용기를 팔아 돈을 버는 동시에
광고 효과까지 톡톡히 누렸다.
1994년에 데이브 올슨은 선셋북스(Sunset Books)에서 판매한 커피 입문서로서
조리법까지 함께 실린 『커피를 향한 스타벅스의 열정(Starbucks Passion for Coffee』을 펴낸 데 이어,
그 이듬해에도 「스타벅스와 함께 하는 여름의 즐거움 Starbucks Pleastures of Summer」을 써냈다.
2년 후에는 하워드 슐츠가 (『비즈니스위크』의 한 기자와 공저로
자신의 인생사를 담은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담긴 성공 신화』를 펴낸 후,
그 수익금을 신설된 스타벅스 재단(Starbucks Foundation)에 기부했다.
1996년 4월 1일에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의 프로그램,
「생각해 봅시다 All Things Considered」에서는 다음과 같은 보도를 내보냈다.
"스타벅스가 조만간 파이프라인 건설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0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들여, 시애틀에서부터 동해안까지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이에
보스턴, 뉴욕, 워싱턴에 지선을 까는 파이프라인망을 건설함으로써,
이 망을 통해 갓 로스팅한 커피원두를 운송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 보도는 어딜 가든 없는 곳이 없는 스타벅스의 존재감을 여실히 증명해 준 사례였다.
이 만우절 장난을 대다수 사람들이 처음엔 진짜 뉴스 기사인 줄 알고 깜빡 속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