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가공품의 왕, 프로슈트
돼지고기 가공품 중에서 가장 귀하고 럭셔리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쿨라텔로이다.
프로슈토 세계에서의 페라리나 에르메스 버킨백 정도 된다고 보면 되겠다.
그래서 이탈리아인들은 쿨라텔로를 돼지 가공품의 왕이라고 한다.
로마의 후손답게 이탈리아는 돼지 한 마리를 잡으면 버리는 것이 없을 정도로
가공육을 미식의 단계로까지 끌어올렸다.
이탈리아에는 프로슈테리아라는 가게가 있다.
이는 한국에도 이제 많이 수입되고 있는 돼지고기를 생으로 말리 숙성시킨 '프로슈토'에서 파생된 단어로,
돼지고기로 만든 각종 가공품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이다.
프로슈테리아에는 프로슈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각종 부위의 가공품을 총망라해 취급한다.
고린 냄새가 나는 각종 소시지나 가공품들이 가득한 가운데, 고개를 천장으로 올리면
말린 돼지 뒷다리가 통째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이게 바로 '프로슈토'로 스페인에서는 '하몽'이라 하고,
프랑스에서는 '장봉’이라 하는 고급 돼지 가공품이다.
처음 볼 땐 조금 징그럽기도 하고 냄새도 나지만
우리의 육회처럼 유럽에서는 아주 오래도록 먹어온 전통 식품이다.
프로슈테리아 한쪽은 이런 상품들을 이용한 간단한 식사와 와인을 파는 식당이기도 하다.
물론 메뉴는 단순해서 햄이나 살라미를 이용한 샐러드나 플레이트(한 접시에 다양하게 담겨 나오는 모둠 요리) 등과 함께 빵이 나온다.
프로슈테리아뿐 아니라 시장이 서는 날에는 농부들이 직접 만든
돼지 가공품이나 치즈를 차에 싣고 나와 손으로 썰어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시골 농가에서 직접 만든 시큼한 와인, 치즈와 함께 먹는 프로슈토는 최고의 궁합이다.
프로슈토는 아주 얇게 썰어야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칼질을 요한다.
보통 레스토랑 등에서는 기계를 이용해서 자르기도 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은 전통적으로 손으로 썬 프로슈토가 주는 질감을 더 즐긴다고 한다.
프로슈토에 잘 익은 멜론을 얹어 먹으면
농익어서 달콤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멜론과
짭조름한 프로슈토가 어우러져서 상상 이상의 맛이 난다.
잘 익은 멜론의 부드러운 살과 생햄의 고소한 기름기,
여기에 짠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느낌은 뭐랄까,
미녀와 야수에 비교할 수 있을까?
게다가 숙성된 단백질이 주는 진한 아미노산의 맛은 우리가 제5의 맛이라 부르는 감칠맛의 향미 아닌가.
그야말로 천연의 조미료 향이다.
한국인은 돼지고기 중에 유독 삼겹살을 선호한다.
그다음에 목살, 또 앞다리는 족발로 먹지만, 뒷다리는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이와 반대로 서양인들은 삼겹살로는 흔한 베이컨을 만들고,
뒷다리로는 프로슈토를 만들기 때문에 오히려 뒷다리가 금값이다.
프로슈토가 왜 그렇게 비싼 고급 식품인지는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보통 9개월 정도 된, 무게가 약 10킬로그램 내외인 돼지의 뒷다리를 써서 만드는데,
고기 단면의 색은 선명한 붉은색부터 핑크색이 감도는 흰색까지 다양하며
근육 사이사이에 지방분으로 마블링이 되어 있어야 한다.
숙성 기간 동안 바로 이 지방분이 분해되며 향을 발하기 때문이다.
맨 먼저 돼지의 뒷다리를 소금에 절였다가 말리는데, 염장을 처음 시작한 날짜를 다리에 달아 놓는다.
염장 후의 숙성 기간은 적어도 12개월에서 36개월, 때로는 특별한 이유로 그 이상 할 수도 있다.
보통은 2년 정도 숙성한 것을 가장 많이 먹는다.
그런데 특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하므로 아무 곳에서나 말릴 수 없다.
프로슈토는 다른 발효식품과 마찬가지로 기후와 지형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특별한 음식이다.
이를 유럽인들은 프랑스어인 떼루로 표현한다.
하나의 농산품 안에 표현되는 토양과 기후 등 자연의 총체를 뜻한다.
천연적인 조건이 맞아야 최상의 산물이 생산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한 거다.
프로슈토 발효에는 서늘하면서도 환기가 잘되고, 골바람과 산바람이 적당히 불어
일교차가 크면 좋으므로 계곡을 끼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습도와 온도 조건도 까다롭다.
현대에는 제조기술이 발달해서 전 공정을 기계로 조절하고,
온도와 습도가 다른 방을 옮겨 다니며 숙성을 시키지만
그래도 마지막 숙성은 바람이 좋은 자연 상태에서 끝마치게 된다.
그 지방 특유의 향을 불어넣기 위해서이다.
여기에 일체의 부가물이나 보존제는 법으로 금지되고 100퍼센트 천연으로 생산되어야 한다.
결국 돼지 그대로의 생 얼굴이 표현되는 것이 프로슈토이므로 고기의 질이 좋아야
프로슈토의 맛도 좋다는 결론이 나온다.
포도의 품질이 그 맛을 결정하는 와인과 똑같은 이치다.
프로슈토에 와인 한잔은 이탈리아인의 삶이며 낭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