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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Oct 07. 2023

현태와 재인의 유럽여행 70일, 남유럽 편(6)

물바다가 된 호스텔

숙소 창문 쪽 침대 2층을 배정받은 현태의 자리에는 두꺼운 담요가 있었지만 

복도 쪽을 배정받은 재인의 침대에는 얇은 시트만 있었다. 
잠이 들어 새벽에 되자 창문 쪽에서 찬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그래 두꺼운 담요를 준 이유가 있구나!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 아래로 내려오니 다들 침대에 앉아 뭔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먼저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안에 사람이 있다. 
그러고 보니 하나뿐인 화장실과 욕실을 6명이 같이 써야 하니 기다림이 끝이 없을 것 같아 

방을 나와 다른 화장실을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리셉션으로 가 물어보니 더 이상 화장실은 없다고 한다. 
이제부터 아침마다 화장실 전쟁이 펼쳐지겠구나.


공용 식당 구석에 자리를 잡은 현태에게 재인이 급히 다가와,
“우리 방에 난리가 났어요. 
천장에서 물이 새서 떨어지는데 아빠 침대 계단 올라가는 쪽에서 물이 떨어져요.”
“빨리 가 봐야겠네.”

방에 들어서자 천장 쪽 기둥을 타고 물이 떨어져 바닥은 젖어 있었고 

2층 침대로 올라가는 계단 중앙에서도 물이 흥건하다. 
어째 이런 일이…


출입문 앞에 물이 고여 신발이 젖자 누군가 돌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원인은 위층 배관 파손으로 수리를 하자 물 흐르는 것이 멈추어 대소란은 마무리되었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놀라는 기색이 없다. 

점심을 먹고 찾아간 곳은 피렌체 중앙시장 노점 상들이 줄지어 서 있는 사이로 

관광객들이 구경도 하고 흥정도 한다. 
노점상 중앙에 위치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1층에는 채소와 과일, 소시지, 햄 

각종 생필품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고, 

2층으로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시켜 테이블에 앉아 먹고 있다. 
우리나라의 큰 마트나 백화점 식당 코너와 비슷하지만 관광객이 대부분이고, 

주로 와인을 마시는 풍경은 달랐다. 


중앙시장에서 조금 걸으니 두오모라 불리는 피렌체 대성당이 나타났다. 
쾰른 대성당이나 비엔나 슈테판 대성당과는 외관부터 차이가 난다. 
지붕을 차지하는 붉은빛의 돔도 특별하지만 벽면의 색상이나 무늬도 화려하다. 
성당 내부 관람은 포기하고 주위를 한 바퀴 돌며 두오모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한 바퀴를 거의 다 돌 무렵 화려한 밴드 소리가 들리며 경찰차가 나타났고 

뒤를 이어 밴드와 각 지역의 전통 의상을 입은 행렬이 이어졌다. 
북을 치는 사람들, 나팔을 부는 사람들, 지역 깃발을 흔들며 지나가는 사람들 

뒤를 관광객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뒤따른다. 

한 사람은 감기 기운이 가시지 않았고 다른 한 사람은 한 달 중 제일 컨디션이 나쁜 날이어서 

일찍 숙소로 돌아가 좀 쉬었다가 근처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7시가 조금 넘어 먼저 자리를 잡으려 떠난 재인이,
“아빠! 빨리 오세요. 8시부터 예약이 되어있어 그전에 자리를 비워주어야 해요.”
 

제일 안쪽에 자리 잡은 재인을 찾아 육개장 두 그릇과 사이다, 맥주 한잔을 시키니 

공기 밥 양이 작고 밑반찬으로 나온 오이 피클과 콩자반, 김치의 양이 너무 작다.  
공기 밥과 김치를 추가하니 3유로와 2.5유로 요금이 더해진다. 
깔끔하게 관리되고 음식 맛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어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은 거북함을 느끼며 식당을 나왔다.


아침의 복잡함을 피해 저녁에 샤워를 마치고 호스텔 정원에 앉아 맥주를 한잔 마시니 

어린 시절 여름밤 시원한 골목에 마실 나온 기분이다. 
옆 좌석에 있던 한국 여자가 인사를 하며 자리를 옮겨 같이 앉으니, 

지나가던 한 방을 쓰는 영국 친구가 합석을 한다. 
여행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낮 선 호스텔의 정원이 고향의 골목 마냥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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