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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Apr 26. 2024

폭군 네로 황제를 낳은, 아그리피나

모전자전



중국 역사에서 여태후, 측천무후 그리고 서태후를 3대 악녀로 칭하며,
많은 이야기들이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 

네로 황제는 로마제국의 폭군으로 그의 악행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네로 황제가 폭군으로 군림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머니인 아그리피나에게 물려받은 천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아그리피나는 50세에 황제에 오른 클라우디우스와 35세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결혼했고
이 결혼은 아그리피나의 철저한 계획하에 이루어졌다. 

황제의 아내가 된 아그리피나는 성가시게 졸라대면 그만 귀찮아져서 잘 읽어보지도 않고 서명해 버리는
클라우디우스의 버릇을 충분히 활용했다.


그녀는 우선 자신을 '아우구스타'의 지위로 승격시켰다. 
아우구스타는 아우구스투스의 여성형이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도 유언에서 비로소 아내 리비아에게 이 칭호를 주었다. 
그런 존칭을 아그리피나는 일찌감치 손에 넣어 자신을 황제의 지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친아들 도미티우스(네로)의 교육에도 주도 면밀했다

아들을 교육시킬 교사로서는 당시의 실력자의 세네카를 지정했고
무술로 아들을 지켜줄 인물로는 부루스를 선택해
교육뿐만 아니라 제위를 계승한 뒤에도 보좌역을 맡을 수 있도록 장기적인 포석을 마쳤다.


서기 50년, 황후가 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해에 아그리피나는 아들 도미티우스를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양자로 삼는 데 성공했다. 
클라우디우스에게는 브리타니쿠스라는 아들이 있기 때문에,
아내가 데려온 자식이라고는 하지만 도미티우스를 양자로 맞아들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아그리피나는 남편을 끈질기게 설득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이제 아그리피나가 계획한 준비는 끝이 났다. 
더 이상 황제의 도움이 필요치 않으니 그를 제거할 시간이 되었다.

버섯요리를 좋아하는 클라우디우스에게 독버섯을 먹여 죽였고
네로는 그 길로 곧장 로마 근교에 있는 근위대 병영으로 가서 "임페라토르"라는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아그리피나가 한 가지 사실을 오산을 하고 있었으니 네로는 그녀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고,
따라서 그녀와 똑같은 생각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까지는 계산에 넣지 못했다. 
어머니가 자기 뜻대로 하고 싶어 한다면,
아들 역시 그러고 싶어 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십 대 소년이니까 아직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오산이다. 

아그리피나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아들에게 날마다
'네가 황제가 된 건 엄마 덕분'이라는 말을 되풀이했을 게 분명하다. 

그 결과, 여느 가정의 십 대 아들과 어머니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태가 일어났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반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반항은 어머니가 경멸할 게 뻔한 아크테라는 여자 노예한테 홀딱 빠져 버린 것이다. 
 
네로의 반항이 깊어지자 아그리피나는 죽은 클라우디우스의 아들 브리타나쿠스를 언급하며
네로를 대신해 황제로 만들겠다고 위협하자,
네로는 그를 죽였다. 

그리고 아그리피나는 아들 네로가 즉위한 지 1년도 지나기 전에 모든 영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아그리피나는 패배를 인정하고 얌전히 물러날 여자가 아니었다. 
자금을 모으는 것도 그만두지 않았고,
권력을 쥐기 위해 라인 강 연안에 주둔해 있는 병사들과도 접촉도 계속했다. 


네로는 어머니에게 반항하여 선택한 첫사랑 여인에게 금세 싫증이 나 버렸다. 
그때 나타난 것이 아름답고, 출신 가문도 황제의 애인에게 어울리고, 무엇보다도 재치가 있는 포파이아였다.

하지만 남편이 있던 포파이아는 네로의 애인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남편 오토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애인의 처지로 만족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포파이아를 아내로 맞이하려면 아내인 옥타비아와 이혼해야 했다. 

하지만 옥타비아와 이혼하는 것은 어머니인 아그리피나가 단호히 반대했다.

원하는 것을 포기할 줄 모르는 네로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아그리피나를 죽이는 것이었다.

네로가 잔치를 베풀고 어머니를 초대한 것은 그날이 미네르바 여신의 축일이었다.
 
 

22세의 아들이 다정하면서도 공손하게 어머니를 대접하는 모습은 동석한 세네카와 부루스에게는
오랜만에 보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광경으로 보였을 것이다. 
한밤중이 지나서 네로는 가까운 바닷가 별장으로 돌아가는 어머니를 선착장까지 배웅했다. 
아들이 준비해 준 배에 아그리피나가 올라타고 강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하자
네로가 만든 각본대로 배는 침몰했지만 아그리피나는 물에 빠져 죽지 않았다.

아그리피나는 벤토테네 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수영을 배워 고수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 황태후는 멋진 수영 솜씨를 뽐내며 밤중에 고기를 잡으러 나온 어부에 의해 구조되었다

별장에 돌아온 아그리피나는 조난 사고가 우연이 아니라 아들 네로가 꾸민 짓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시종에게 편지를 주어 아들에게 보냈다. 
편지에는 배가 침몰하긴 했지만 어깨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을 뿐 무사하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적혀 있었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기다리던 네로는 이 편지를 읽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세네카와 부루스를 급히 불러 모든 것을 자백하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다. 
둘 다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그리피나가 모든 것을 눈치챘다고 판단했다. 
그 점은 네로도 마찬가지였다. 


아그리피나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끝날 리는 없었다.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심복 아니케토스에게 아그리피나를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아니케토스는 부하들을 데리고 아그리피나의 별장으로 갔다.

아니케토스와 부하들은 아그리피나의 침상을 에워쌌다. 
아그리피나도 만사가 끝난 것을 깨달았고 죽이려면
네로가 들어 있었던 여기를 찌르라면서 아랫배를 가리켰다. 
그 손짓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랫배만이 아니라 온몸에 칼이 꽂혔다.



네로는 아내 옥타비아와 이혼하고 애인인 포파이아와 결혼했다. 
그리고 이혼한 옥타비아를 섬으로 유배하여 죽여버렸다. 

이로써 네로는 어머니만이 아니라 아내를 죽였다는 오명까지 뒤집어쓰며 폭군으로서의 이름을 역사에 남겼다. 

‘모전자전’이라는 고사성어가 강하게 남는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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