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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May 02. 2024

이탈리아 명품 이야기(2)

프라다

밀라노 태생의 패션 명품을 꼽으라고 하면 무엇보다 프라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구치나 신발로 유명한 페라가모가 피렌체 장인 정신을 대표하는 데 반해서 프라다는 순수 밀라노 태생이다. 

이런 사회적인 현상에는 패션에 있어서만큼은 '프라다'라는 그 기원이 엿보인다.

여기에는 프라다 창업자의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가 한몫했다.


1913년, 할아버지인 마리오 프라다는 동생과 함께 밀라노에 '프라다 형제'라는 가죽제품 가게를 열었다. 
이탈리아 스타일의 고급 핸드백과 영국산 여행용 트렁크, 화장품 케이스 등을 취급하는 수제품 상점이었다. 

고급스럽고 안목 있는 셀렉션으로 당시 많은 귀족과 상류층을 단골로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사보이 왕가에도 납품을 하게 되면서 왕가의 공식 공급업체임을 인증하는 로고 장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1950 년대 마리오가 죽자 사업은 끝없는 추락의 침체기를 걷었다.
당시 제1, 2차 세계대전으로 고급 가죽을 구하기가 힘들어진 데다가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 몰려와 명품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프라다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기다 보수적이고 마초 기질이 강했던 마리오는 집안 여자들이 사업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은 가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결국 딸들이 사업을 승계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 딸은 경영에 별다른 재주가 없었다.
파산 위기에까지 처했던 프라다는 뜻하지 않은 구원투수를 만나게 된다.
바로 1978년, 프라다의 경영을 맡게 된 마리오의 손녀 미우치아였다.


그녀는 밀라노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말없이 하는 연극인 마임에 심취했으며,
공산당에도 입당한 열렬한 페미니스트였다.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 페미니스트 공산 당원이라니, 이 모두를 그녀의 사치스러운 취미 활동이라 꼬집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독특했다.


사회주의 운동을 하던 그녀였지만, 가업을 일으키기 위해 결국 프라다로 들어왔다.
디자이너 출신도 아닌 정치학 전공의 미우치아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냥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었다.
페미니스트적인 옷, 즉 섹시한 옷은 일하기에 불편했기에 섹시함을 뺀 것이다.
그러자 단순한 기능성이 살아났다.
여기에 우아함을 더했다.


성격만큼이나 독특한 소재를 좋아하던 이 튀는 여성은 당시 좋은 가죽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기에
새로운 소재를 찾다 프라다의 고급 트렁크를 보호하기 위해 덮어놓는 검은색 방수천을 보고는
'앗! 이거다'하는 계시를 받았다. 


이 방수천은 포코노라는 소재로 낙하산을 만드는 재질이었다.
곧 그녀는 이 검은 나일론 천에 프라다의 금색 역삼각형 로고를 박은 가방을 출시했다.
관리를 잘해줘야 하는 비싼 가죽 라인은 그대로 두고 70만 원 내외에 새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별 특색 없고 미니멀한 천가방이 그다지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미우치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과는 엄청났다!

이전까지 가방은 최고급 가죽이 아니면 명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미우치아 프라다는 최고급 가죽을 보호하던 나일론 소재의 포코노 천을 가방으로 탈바꿈시켰다.
포코노 나일론 가방은 방수가 되는 것은 물론 쉽게 때가 타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가는 조직의 나일론이 실크와 같은 촉감을 주는 동시에 매우 견고했다.
거기다 가벼웠다.


미우치아는 이런 포코노 원단에 모서리만 가죽으로 감싼 가방을 디자인한 후,
외할아버지 때부터 사용해 오던 '프라다 밀라노' 로고가 들어간 삼각 금속 장식을 더해 전통과 명품의 이미지를 유지했다.
그간 일반적인 명품 가방들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프라다의 이런 시도는 경악에 가까웠다. 


그러나 미우치아 프라다는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그녀의 그런 믿음은 결국 빛을 발했다. 

시대는 프라다를 받아들였고, 프라다는 유행을 이끄는 선두주자가 되었다. 

출시된 지 10여 년이 지난 90년대 프라다 핸드백은 전 세계 여성에게 대히트를 쳤다.


프라다 관계자는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가죽이 가방 소재로 쓰였기 때문에 나일론을 사용한 것은 충격적인 시도였다"며 '처음 선보인 포코노 백은 현대적인 멋과 장인 정신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제품'이라고 평가했다.


검은 포코노 천 위에 삼각형 프라다 로고가 전부였던 가방은 미국의 미니멀리즘과 맞물리며 1990년대 유행을 선도했다. 
미우치아가 내세운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실용성' 전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프라다의 이러한 성공은 이탈리아 장인 정신에 젊은 아이디어가 더해져 또 다른 명품을 만든 좋은 본보기다.

                                                                   

                                                                                   출처: <장인을 생각한다.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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