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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May 09. 2024

이탈리아 명품 이야기(4)

구두 장인, 페라가모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4명의 아이들이 오글거리는 가난한 집에서 어중간하게 중간에 끼어 손톱만큼의 혜택도 못 받았다. 

초등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니 상상할 만하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우리로 치면 유치원 나이인 여섯 살에 벌써 구두 만드는 일에 흥미를 보였다는 점이다. 

그때부터 페라가모의 구두 사랑은 유별났다. 


<시네마 천국>의 토토가 영화관을 드나들며 영화 기술을 동경했듯이, 

페라가모는 동네의 허름한 구둣방에 매일 들러 장인이 구두 수선하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여덟 살이 되던 해에는 쌍둥이 여동생이 교회에서 견진을 받는데, 천사 같은 드레스에 하얀 구두를 신어야 했다.

하지만 가난해서 도저히 새 구두를 사줄 수 없었던 부모는 한숨만 쉬었고 견진날은 바로 내일로 다가왔다. 

살바토레는 밤을 새워 흰 종이를 붙이고 붙여 두 켤레의 신을 만들었다. 

마치 신데렐라에 나오는 마법사처럼. 

이때부터 시작된 구두 인생에 페라가모는 한 번도 회의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구두가 모든 것이고, 머릿속에 인간의 발에 관한 생각 외에는 없었다. 

이 일로 드디어 구두를 만들어도 좋다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다. 


열 살 남짓부터 구두 장인의 밑에서 수습생활을 시작한 페라가모는 자신의 천재성을 직감했다. 

어설픈 장인 밑에서 일하다 보니 수많은 의문점이 생겼고 이는 페라가모를 더욱 큰 물로 나가게 했다.

시골 구둣방의 수습생은 열여섯 어린 나이에 형들이 이민 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무작정 미국행 배를 탄 페라가모는 빈 주먹만 가진 무일푼이었다. 



그렇게 바닥에서부터 시작한 페라가모에게 운명의 여신은 큰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초심을 잃지 않고 좋은 구두를 만들겠다는 여덟 살 때의 맹세를 지켜나갔다.

그는 고객의 발을 편하게 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끊임없이 공부했다.
 

인체 해부학에서부터, 가죽을 다루기 위한 화학공학, 정확한 치수를 재기 위한 수학, 여기에 소재 응용 법 등... 

이런 끝없는 탐구가 ‘구두의 과학'을 실현시킨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가들이 인체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해 해부학과 원근법, 수학 등을 공부한 것과 같은 이치에서였다.

 

LA에서 구두 수선집을 연 그는 스튜디오에 영화용 구두를 납품하게 되었다. 

할리우드에서도 이탈리아 장인들은 유명했다. 
그러나 배우들에게 신발을 만들어주며 조금씩 신용을 쌓아 성공을 거두던 와중에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형제를 잃고, 페라가모 자신도 다리 한쪽이 살짝 짧아지는 불행을 겪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도의 위기에 몰리지만, 페라가모는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섰다.

1930년대부터 그의 신발은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한다. 

그레타 가르보(1905~1990), 캐서린 헵번(Katherina Hepbum, 1907~2003), 마를렌 디트리히 (Marlene Dietrich, 1901-1992), 에바 가드너(Ava Gardner, 1922~1880), 게리 쿠퍼(Gury Cooper, 1901~1961) 등 전설의 스타들이 그의 구두를 신었다. 


구두와 발의 실질적인 역학 관계에 통달하여 각각의 발바닥 형태에 맞춰 가장 편한 신을 만들어주니 고객은 늘어만 갔다. 

많은 배우들의 발 모양을 조사하다 오랜 시간 촬영을 하며 서서 일해야 하는 배우들이 티눈과 굳은살 각종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고, 정상적인 발을 가진 사람은 1퍼센트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페라가모는 어떻게 하면 이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줄까를 거듭 연구했다. 

진정으로 고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구두를 만들었기에 가난한 나폴리의 변두리 마을에서 태어난 촌뜨기가 구두의 제국을 이룩하고 황제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거리 패션에서 언제나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신발이 있는데 바로 웨지힐 샌들이다. 

기본적으로 발을 편하게 해주는 스타일로 유행을 타지 않는다. 
이를 발명한 사람이 페라가모이다.


세실 B. 드밀 감독은 찰턴 헤스턴과 율 브리너가 주연한 <십계>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의 신발을 페라가모에게 주문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새로운 스타일의 여성용 샌들을 창조했는데 바로 발을 다 드러내며 발목을 감아 올라 끈을 매는 샌들이었다. 

이 신발은 그전까지 발은 꽁꽁 감싸고 있어야 한다는 보수적인 시각에 획기적인 변화를 끌어내 드디어 발이 세상에 그 알몸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이는 곧 에로틱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더불어 편안하고 안락한 착용감으로 인해 1936년 시판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전 세계의 구두 제작자들은 이를 모방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1938년에는 주디 갈란드가 주연한 <오즈의 마법사>를 위해 세무 재질의 구두를 만들었다.

페라가모는 사업가일 뿐 아니라 작품에 시대의 예술을 접목시키는 감각을 발휘한 다다이즘적인 디자이너로 평가받았다. 


마릴린 먼로에게는 타조가죽과 악어가죽 인조 보석으로 장식한 무도회 시리즈를, 오드리 헵번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굽을 달아 오드리 샌들을 만들어 주었다.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둔 페라가모는 피렌체로 넘어와 르네상스 시대의 아름다운 건물 팔라초 스피니 페로니에 본사를 입점했다. 

이는 지금도 페라가모의 본사이자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1층은 매장, 지하는 박물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페라가모가 그동안 제작했던 만 여개의 모델을 스케치와 함께 전시하고 있다.


창업자인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죽은 후에는 그의 부인 완다와 세 딸이 경영 일선에 나서 부인 완다가 총지휘를 맡고, 세 딸은 각 분야의 책임을 맡아 구두, 스카프, 프레타포르테(고급 기성복)에 도전했다. 


현재는 3대째 손자가 총지휘를 맡았지만 완다는 구십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가문을 지키고 있으며 여태까지 가족 중심의 경영이 흔들린 적이 없다. 

페라가모 가족은 호텔업에도 수완을 보여 다양한 종류의 호텔 그룹인 '퉁가르노 컬렉션'과 럭셔리한 요트 호텔 '스완'을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의 배경이 된 피에졸레 언덕에 저택을 구입하고, 토스카나 전원에 있는 포도원과 올리브 농원을 사들이 와인과 올리브유까지 생산한다. 

구치의 역사와는 참으로 대조를 이룬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페라가모를 두고 생긴 말인 것 같다.


출처: <장인을 생각한다.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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