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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Jun 07. 2024

그리스 신화 - 트로이 전쟁(2)

파트로클로스와 헥토르의 전사

트로클파트로클로스와 헥토르의 전사

잔뜩 수세에 몰린 그리스 군은 이제 함선까지 내몰린 채 자칫 트로이 군의 불화살에 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일 지경이었다.
공포에 질린 그리스 군을 지켜보던 파트로클로스는 출전을 결심했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그는 트로이 전쟁에 아킬레우스와 함께 참전했는데, 아가멤논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아킬레우스와 함께 출전을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리스 동맹군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자 더 이상 물러나 있을 수가 없었다.


파트로클로스가 출전을 결심할 무렵에 이미 그리스 함대 하나가 불길에 휩싸인 상태였다.
그가 출전하겠다고 하자 아킬레우스는 그를 말릴 수 없음을 알고 자신의 갑옷과 부하를 모두 내줬다.
자신은 아가멤논으로부터 명예에 상처를 입은 처지라 출전할 수 없지만, 친구의 죽음까지 방관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미르미돈 군대를 이끌고 출전한 파트로클로스는 용감하게 싸우며 트로이 군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헥토르와 정면 대결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헥토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죽기 살기로 싸웠지만 결국 헥토르의 창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한 줄도 모르고 그가 돌아 오기를 기다렸다.

날이 저물고 전투가 끝나갈 무렵에야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무렵, 그리스 지휘부의 상황도 말이 아니었다.
아르고스의 왕이자 맹장인 디오메데스, 오디세우스 같은 장수는 물론이고 총사령관 아가멤논도 부상을 입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 아킬레우스는 기껏 여인 하나 때문에 친구와 많은 장수를 잃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분노에 찬 얼굴로 마침내 출전을 결심했다.
출전에 앞서 모든 병사가 허기를 채웠지만, 아킬레우스는 굶주린 채 전장으로 나아갔다.
소중한 친구를 잃은 자가 어찌 배를 채우겠느냐는 생각뿐이었다.



트로이 장수 그 누구도 무섭게 치고 달리며 포효하는 아킬레우스를 막아서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덧 헥토르와 아킬레우스가 맞붙었다.
창을 먼저 던진 쪽은 헥토르였지만, 그는 아킬레우스의 목을 명중시키지 못했다.
대신 헥토르의 목숨은 아킬레우스의 창날에 희생되었다.

싸움에서 승리한 아킬레우스는 처참하게 죽어 쓰러져 있던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리고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묶어 끌고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왔다.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프리아모스 왕은 트로이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을 잔뜩 싣고 그리스 진영으로 아킬레우스를 찾아왔다.

그리고 아킬레우스에게 간청했다.


“아킬레우스, 자네 아버님을 생각해 보게나.
그분도 나처럼 오랜 세월 아들이 그리워 얼마나 괴로우셨겠는가?
하지만 더욱 불쌍한 사람은 바로 이 늙은이 아니겠는가?
내 아들을 죽인 사람에게 손을 내밀려고 이렇게 찾아왔으니, 아들의 시신을 돌려줄 수 없겠는가?"


아킬레우스는 그 말을 듣고 헥토르의 시신을 프리아모스에게 내줬다.
이후 9일 동안 헥토르의 장례식이 진행되었고, 헥토르의 시신은 높이 쌓아 올린 화장대 위에서 불태워졌다.

 
 
 

아킬레우스의 전사와 아이아스의 자살

비록 헥토르는 전사했지만 트로이 군대는 여전히 강력했고 그리스 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더구나 에티오피아 왕 멤논까지 가세해 트로이를 지원했다.
멤논은 트로이의 왕이던 라오메돈의 아들 티토노스와 티탄족 출신으로 새벽의 여신이라 불리는 에오스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었다.
따라서 헥토르와 멤논은 사촌인 셈이다.


멤논이 이끌고 온 에티오피아 군대는 대단히 용맹했다.
그 때문에 그리스 측에서는 늙은 장군 네스토르의 아들 안틸로코스 비롯해 많은 장수와 군사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킬레우스는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멤논에게 돌진했고, 마침내 맹위를 떨치던 멤논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이후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군을 성벽까지 내몰았다.
그런데 이때 성벽 위에 있던 트로이전쟁의 유발자 파리스가 화살로 아킬레우스를 명중시켰고, 아킬레우스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신화에 따르면 이때 파리스는 아킬레우스의 유일한 약점인 발목 뒤쪽에 화살을 쏘았다고 한다.

발목 뒤쪽이 아킬레우스의 약점이 된 배경에 대해 신화는 그가 태어났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이를 낳고 그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 스틱스 강에 담갔다고 한다.
그러면 아이의 몸이 강철처럼 단단해져 화살조차 뚫을 수 없는 불사의 육체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테티스가 그를 물에 담그기 위해 잡고 있던 발목 부분은 강물에 닿지 않았고, 그래서 발목이 아킬레우스의 약점으로 남았다.
파리스가 용케 그 약점을 찾아내 화살로 명중시킴으로써 아킬레우스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킬레우스가 전사하자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군대를 방어하고 아이아스가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그리스 진영으로 옮겨 왔다.

그의 시신은 화장대에 올라 태워진 후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유골과 함께 안치되었다.
이로써 트로이 전쟁의 가장 위대한 영웅은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졌다.


아킬레우스가 죽자 당연히 그리스 군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리스 군에서 아킬레우스의 빈자리를 메울 아이아스마저 죽고 말았다.

텔라몬의 아들이자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그리스 장수 중 가장 용맹스러웠던 아이아스는 그야말로 허망하게 죽었다.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 그의 갑옷을 두고 여러 장수가 다툼을 벌였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은 테티스가 헤파이스토스에게서 얻어다 준 것으로 모두 탐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갑옷을 가질 자격이 있는 영웅을 골라냈는데, 마지막으로 오디세우스와 아이아스 두 사람이 남았다.
그리고 둘 중 누가 갑옷을 가질 것인지를 두고 장수들이 비밀투표를 했다.
그 결과, 오디세우스가 갑옷을 차지하게 되었다.


아이아스는 이 일로 몹시 분개했다.
오디세우스에게 패배한 것이 수치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화가 나기도 했다.
분명히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구해 온 사람은 자신인데, 그의 갑옷을 오디세우스가 차지한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분한 마음에 그리스 군을 이끄는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를 죽이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차마 두 상관은 죽이지 못하고, 술을 잔뜩 마시고 광기에 사로잡혀 그리스 군을 위해 기르고 있던 가축을 도살해 버렸다.
또 양들 중 가장 크고 실한 수놈을 잡아 다 오디세우스의 이름을 불러대며 마구잡이로 난도질해 죽여버렸다.  


그런데 제정신이 들어 가축의 사체가 들판에 널브러져 있는 광경을 보자 아이아스는 수치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칼을 뽑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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