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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Jul 30. 2024

바빌론의 대금업자

바빌론 부자들의 돈 버는 지혜

3년 동안 창을 만들어 왕의 친위대에 납품한 로단은 그의 노고를 인정받아 왕으로부터 50냥의 황금을 상으로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여동생이 찾아와 자신의 남편 사업자금이 필요하니 돈을 빌려 달라고 하자 곤란해진 로단은 현명한 대금업자인 마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마톤은 붉은 돼지가죽으로 감싼 청동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상자 뚜껑을 열며 말했다.
“나는 돈을 빌려 간 사람들에게 담보물을 받아서 이 상자에 보관하네.
사람들이 빚을 갚으면 담보물을 돌려주지만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의 담보물은 여전히 여기에 남아 있지.”

마톤은 미소를 지었다.
온갖 세상 풍파를 겪은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빌린 사람이 돈을 잘 갚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망했을 걸세."
대금업자는 현명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네. 
돈을 빌린 사람이 내 돈을 수익성 좋은 사업에 사용하고, 제때 돈을 갚을 수 있는지 봐야 하지. 
그가 돈을 허비하면 나는 소중한 돈을 잃고, 그는 헤어날 수 없는 빚더미 위에 앉게 되니까 말이야. 
내가 담보로 잡은 물건들을 보여주겠네. 
  


마톤은 상자의 걸쇠를 풀고 뚜껑을 열었다. 
로단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주홍색 천 위에 놓인 청동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마톤은 목걸이를 집어 들고 애틋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목걸이는 언제나 상자에 남아 있을 걸세. 목걸이 주인이 세상을 떠났거든. 
내게는 무척 소중한 목걸이야. 
목걸이 주인은 나의 좋은 친구였네. 좋은 추억도 많았지. 
우리는 함께 사업을 해서 크게 성공했어. 
그런데 친구가 동방에서 데려온 여자와 결혼하면서 문제가 생겼네. 
 

그 여자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우리 바빌론 여자들과는 달랐지. 
친구는 그 여자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었어.
결국 친구는 돈이 바닥나고 말았네.
친구는 괴로워하며 나를 찾아와 도움을 청했지. 
 

나는 친구에게 말했어.
'그 여자를 정리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아끼지 않고 돕겠네.'라고 말이야. 
그는 하늘에 대고 그러겠노라 맹세했지.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어.
부부 싸움을 하던 중 그 여자가 친구의 심장에 칼을 꽂았네.
친구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지."


"그 여자는 어떻게 됐나요?"
마톤은 상자에서 주홍색 천을 집어 들며 말했다.
"이 옷은 그 여자의 유품이네. 
여자는 후회하고 자책하다가 유프라테스강에 몸을 던졌지. 
 

나는 이 유품을 볼 때마다 교훈을 되새긴다네. 
고통스러운 감정에 빠진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 위험하다는 교훈이지."
마톤은 소뼈로 조각한 반지를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네. 이 반지를 보게.
이건 한 농부가 맡긴 거야. 
나는 농부의 아내가 만든 양탄자를 사들이곤 했지.  

어느 해 메뚜기떼가 극성을 부려 흉년이 들었어.

농부 내외는 먹을 것조차 없었지.
나는 농부에게 곡식을 빌려줬고 이듬해 농부는 빌린 곡식을 갚았네. 
그리고 얼마 후 그가 나를 다시 찾아왔지. 

한 여행자에게 들었다면서 먼 나라의 특별한 염소 이야기를 해주었어. 
그 염소는 털이 길고 부드러워 바빌론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양탄자를 만들 수 있다는 거야. 
농부는 그 염소를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지. 
그래서 나는 농부에게 염소를 살 돈과 여행 경비를 빌려줬네. 
지금 농부는 열심히 염소를 키우고 있지. 
내년이면 가장 값 비싸고 아름다운 양탄자가 만들어지네. 
바빌론의 귀족과 부자들은 깜짝 놀랄 테지.
아마 모두 양탄자를 사고 싶어 안달할 걸세.
나는 곧 이 반지를 돌려주게 될 거야.
농부가 돈을 빨리 갚고 싶어 하거든."
 

로단이 다시 물었다.
"아, 돈을 빨리 갚는 사람들도 있군요."
"돈을 벌 확실한 계획이 있는 사람은 그렇다네.
하지만 아무 계획도 없이 무턱대고 돈을 빌리려는 사람은 주의하게."
 
로단이 보석이 박힌 금팔찌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 팔찌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여자에게 관심이 많군."
"저는 어르신보다 젊으니까 당연하죠."
 

"인정하겠네.
하지만 이 팔찌에 담긴 사연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네. 
팔찌의 주인은 뚱뚱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여자였어. 
온종일 쓸데없는 얘기를 떠들어대서 나를 미치게 했지. 
 

원래 여자의 집안은 꽤 잘살았는데 불행한 일이 닥쳐서 가세가 기울었네. 
여자에게는 아들이 있었어.
여자는 아들이 훌륭한 상인이 되기를 바랐네. 
여자는 나를 찾아와서 돈을 빌렸지. 
아들이 낙타를 타고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상단과 동업할 수 있도록 말이야.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상단 주인은 사기꾼이었어. 
먼 도시로 가는 길에 여자의 아들이 잠들자 모든 짐을 챙겨 줄행랑을 쳤지. 
아들은 졸지에 머나먼 이국땅에서 빈털터리가 되었네.
 

아들이 성장하면 언젠가 돈을 갚겠지만 그때까지 나는 돈을 받지 못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지. 
하지만 이 금팔찌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문제는 없네."

“그 여자는 어르신께 아무런 조언을 구하지 않았나요?"
"구하지 않았네.
여자는 아들이 바빌론에서 가장 부자가 되고 힘 있는 사람이 될 거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어.
내가 현실을 얘기하면 오히려 불같이 화를 내곤 했네. 
그러니 더 말해 뭐 하겠나. 
나는 여자의 아들에게 닥칠 일이 뻔히 보였어.

하지만 담보를 맡기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니 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네."
 
마톤은 매듭진 밧줄을 꺼내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이건 낙타 상인 네바투르(Nebatur)의 것이네. 
낙타를 살 돈이 부족하다면서 이걸 들고 나를 찾아왔지. 
 

나는 가치 없는 이 밧줄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줬네.
그는 현명하고 경험이 많은 상인이야.
그의 사업수완은 믿을 수 있지. 
그를 믿고 흔쾌히 돈을 빌려줬네. 
바빌론에는 네바투르 말고도 믿을만한 상인이 많네. 
훌륭한 상인은 바빌론의 자산이지. 
그들이 잘되면 나도 이익을 얻고 바빌론도 더욱 번영한다네.”
 
마톤은 터키의 돌을 조각하여 만든 딱정벌레를 꺼내 바닥에 톡 던지면서 말했다.

"이건 이집트에서 건너온 거야.
이것을 맡긴 청년은 돈을 갚을 생각이 아예 없네. 
나도 포기했지.
내가 돈을 갚으라고 하면 청년은 이렇게 말한다네.  

'온갖 불운이 나를 따라다니는데 어떻게 돈을 갚아요.
돈도 많은 분이 너무하시네요.' 
그러니 내가 뭘 어쩌겠나. 
 

이 담보도 사실 청년의 아버지 물건이라네.
가진 건 별로 없지만 착실한 사람이었지. 
그는 아들의 사업을 밀어주려고 땅과 가축을 담보로 맡겼네. 
처음에 청년은 열심히 일했고 성공했었어. 
하지만 그다음부터 탐욕에 가득 차서 욕심을 부렸지. 
청년이 세상을 얼마나 겪어봤겠나. 
과욕을 부리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네.
 
마톤은 로단에게 아낌없이 조언했다.

"대금업자는 넉넉한 자금이 있어야 하네.
내가 대금업을 하는 것도 넉넉한 지금이 있기 때문이네. 
내 여유자금이 유익하게 쓰여서 빌린 사람도 돈을 벌고 나도 돈을 벌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내 돈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는 않네. 
등골이 휘도록 일하면서 악착같이 아끼고 모았기 때문이네.
  

나는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는 곳이나 돌려받지 못할 곳에는 돈을 빌려주지 않을 거야.
이자를 제때 지급하지 않는 곳도 마찬가지네. 

지금까지 내 담보물 상자에 담긴 비밀을 말해주었네. 
여기에 얽힌 이야기에서 자네가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어.
인간은 약점이 많네. 
갚을 방법도 없으면서 아무런 대책 없이 돈을 빌리려고 한다네. 이해하겠나?  

사람들은 한밑천만 있다면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돈을 벌고 관리할 능력이 없으면 헛된 희망일 뿐이지.
 
자네에게는 돈으로 돈을 벌 수 있을 만한 밑천이 있네. 

자네도 나처럼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될 수 있어. 
금화 50냥을 안전하게 잘 관리하면 그 황금은 자네를 위해 일하고 돈을 벌어줄 걸세. 
평생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원천이지.
 

하지만 자네가 허투루 돈을 낭비하면 슬픔과 후회 속에 살 것이네. 
자, 이제 금화 50냥으로 무엇을 할 생각인가?"
"안전하게 지켜야죠."
마톤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좋네. 무엇보다 안전이 최고니까. 그 돈을 매제에게 맡기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나?"
"아니요. 매제는 돈을 다룰 줄 몰라요. 완전 젬병이죠."
"의무감으로 돈을 빌려줘서는 안 되네. 가족이나 친구라도 말이네. 

가족이나 친구를 돕고 싶나? 
그렇다면 위험이 없는 방법을 찾게.
돈을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은 순식간에 돈을 날리는 법이네. 
다른 사람이 자네 돈을 날리게 할 바에야 차라리 자네가 흥청망청 써 버리는 게 낫네. 
이제 자네 돈은 안전하겠군. 그럼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겠나?"
 

“그 돈으로 더 많은 돈을 벌어야죠."
"현명한 답이네. 돈으로 돈을 벌고 점점 불려야 하네. 
현명하게 돈을 투자하면 돈은 알아서 자라나고 불어나는 법이야. 
돈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 되네.
그 돈이 앞으로 벌어줄 돈도 날아가는 셈이니 말이야.
  

말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이 떠드는 그럴듯한 말에 속지 말게. 
그런 계획은 실현 불가능한 망상이야. 
고수익을 약속하는 사람을 믿으면 큰 손실을 보게 되네.
그러니 기대치를 낮추고 늘 보수적으로 투자하게.
  

그리고 이미 성공한 사람들과 거래하게. 
이미 성공한 사람들은 경험이 많고 현명한 판단을 할 줄 알거든. 
자네 돈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네.
이런 사람들과 거래하면 불행한 일을 피할 수 있네.”
  


로단이 고맙다고 말하자 마톤은 덧붙여 말했다.
"왕의 선물이 자네에게 많은 지혜를 가르쳐줄 걸세. 
금화 50냥을 지키려면 신중해야 하네.
주변에서 유혹하는 사람도 많고 훈수를 두는 사람도 많을 거야.
큰돈을 벌 기회를 제안하는 사람도 많겠지. 
 

그때마다 내 담보물 상자의 교훈을 떠올리게. 빌려주기 전에 돌려받을 방법을 마련하게. 
내 조언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다시 찾아오게나.
기쁜 마음으로 도와주겠네.  


마지막으로 내 담보물 상자 덮개에 새겨진 글을 읽어보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나 빌리는 사람 모두가 알아야 할 교훈이네."
상자 덮개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나중에 크게 후회하지 말고 지금 조심하는 게 낫다."
 "Better a Little Caution Than a Great Reg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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