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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Aug 20. 2024

시니어 패션모델 도전기(1)

오리엔테이션

아파트 사우나 탈의실 한쪽 구석, 목욕을 마친 노인이 한쪽 손으로 반쯤 남은 단팥빵이 쥐고,  다른 손으로 그 빵을 찢고 있지만 기력이 없어 빵이 잘 잘라지지 않는다.  

입 속든 빵을 우물거리며 삼키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노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자꾸 눈길이 간다.  

그래 저 모습이 미래 나의 모습이다.

                             

대한민국 평균 수명이 83세로 곧 100세 시대를 예고하지만 60대 베이비붐 세대의 갈 길은 멀기만 하다.

기존 구축했던 사회에서는 외면당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기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내 주어진 삶에 대한 배신이자 모독이다. 

그래, 뭔가 나 다운 것을 찾아 도전해 보아야 한다.



거울 속에 든 내 모습이 참 우습다. 

올챙이처럼 똑 튀어나온 아랫배,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목주름, 

머리카락이 빠져 휑한 정수리와 이마까지…

아무리 시니어 모델이라지만 이런 모습으로 도전이 가능할지 의문스럽다.     

  

과연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수업  마지막 날까지 완주는 가능할까?

웃음거리가  되는 건 아닐까?



 

밤사이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벚꽃나무가 몽우리를 터뜨렸다. 
하루 사이에 이렇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의 변화가 신비롭다.  

오늘은 나에게도 새로운 도전의 날이다.
밤사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벚꽃처럼 나도 새로워지고 싶다.  


먼저 옷장을 열고 이 옷, 저 옷 꺼내 입어 본다. 
오늘은 시니어 패션모델 전문가 과정 수업을 시작하는 날이다.  

 


언덕 중턱에 자리 잡은 과학기술대학교, 차들이 주차장을 가득 메워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우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봄을 재촉하는 봄비인지 나의 첫 강의를 축하하는 비인지…


개강식이 열리는 국제회의실 앞에는 사람들로 붐볐고 그중에도 유독 눈길을 끄는 사람들이 보인다. 

큰 키에 검은 가죽 바지를 차려입고 교육생을 맞이하는 남자, 아래 폭이 넓은 녹색 바지를 예쁘게 차려입은 여자, 검은 와이셔츠에 갈색 코드를 걸쳐 입은 중년 등등.
 
평생교육원 실장의 사회로 시작된 개강식 그리고 귀빈소개와 부학장의 인사가 끝나자 이번 교육의 주인공인 금한나 교수가 무대에 올랐다. 

모델로서는 그리 크지 않은 체구지만 머리에서 발끝까지 프로의 냄새가 풍기며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귀빈 인사말과 강사 소개까지 마치자 교육생 소개 시간이 주어져 교육에 참가한 사람들이 한 사람씩 자신을 소개했다.    

꿈을  이루고자 지원한 사람.    

주위의  권유로 지원한 사람.

우연히  접하고 서둘러 찾아온 사람. 

자세  교정 효과가 있을 것 같아 신청한 사람 등등

이유와 동기는 달랐지만 이 수업에 대한 기대가 눈빛과 말투에 나타났다.  


자기소개가 후반부로 달려갈 즈음 앞줄에 앉은 여자분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저는 키도 작지만 어려서 몸이 약해 5살까지 오빠들이 업어서 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리가 활처럼 휘어져 심한 ‘O”형 다리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이번 기회에 걸음걸이를 바꾸어 보고 싶은 마음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용기 있는 도전에 듣고 있던 사람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소개까지 마치자, 시니어 모델 교육장 투어가 이어졌다.

열린 강의실 문으로 들어서자 맞은편 구석에는 음악을 틀 수 있는 방송장비들이 갖추어져 있고 출입문 왼편과 정면은 전면 거울이 성처럼 둘러 싸여 있다.
그리고 오른쪽 안쪽에서 시작된 무대가  강의실 중앙으로 쭉 뻗어 있다.  


조명이 켜지고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지자 강의실은 화려한 패션 쇼장으로 바뀌었다. 
용기 있는 교육생 몇 명이 무대에 올라 걷기 시작하자 보고 있는 강사들이 수강생 손을 잡고 무대 위로 올라 즉석 런웨이가 펼쳐졌다.  

한쪽 구석에 멍하니 서 있던 나에게 강사 한 명이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잡고 나의 인생 첫 런웨이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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