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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Sep 10. 2024

워터게이트와 지퍼게이트의 차이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과 관련하여 최초의 음모론은 부인인 힐러리가 제기한 것이다.

남편의 말을 믿은 힐러리는 1998년 1월 27일 NBC의 인기 쇼 프로인 <투데이>에 출연해 이 섹스 스캔들을 그를 죽이기 위한 '보수 우파의 음모'로 규정했다.

 
이 음모론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클린턴은 정치생활 내내 보수 우파의 음모에 시달려왔다.  

1974년 아칸소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을 때 보수 우파 인사들은 그가 동성연애자인 데다 마약중독자라고 헛소문을 퍼뜨렸다. 
특히 텔레비전 전도사로 유명한 우익인사 제리 폴웰은 클린턴을 코카인 중독자로 묘사한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해 대량 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음모론은 설사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다.
섹스에 탐닉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꼭 자신이 섹스의 주연이 되어야만 충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변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구경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애써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품위 있는 정론지의 1면 머리기사를 통해 또는 텔레비전 저녁 뉴스를 통해 대통령의 섹스 이야기를 보거나 듣고 당당하게 다른 사람과 대화할 소재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짜릿한 쾌락인가. 
대통령의 성기가 휘어졌다느니 어쨌다느니, 세상에 그런 적나라한 '포르노'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언론이 대중의 그런 호기심을 놓칠 리 만무했다. 
클린턴의 섹스스캔들을 가리켜 '지퍼게이트'라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의 태도는 워터게이트 사건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엔 기자들이 사실 확인을 3중으로 해가면서 조심스럽게 보도했지만 지퍼게이트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소설 쓰는 기분으로 마구 보도를 해댔다.
 
걸프전 당시, 전쟁을 그야말로 신나고 '스펙터클' 한 오락 게임처럼 전달해서 주가를 올렸던 CNN은 이 섹스스캔들을 '드라마틱한 정치 스릴러'처럼 보도해 많은 재미를 봤다.
ABC 등 공중파 방송들도 이에 뒤질세라 연속극도 중단하고 부랴부랴 특별 뉴스 생방송을 편성했을 뿐만 아니라 백악관 브리핑을 생중계했다.  


문제는 이들 언론이 장사에 미쳐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고 심지어는 오보를 마구 양산했다는 사실이다. 
별다른 확인 없이 익명의 제보로만 보도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클린턴의 '성 중독증'

클린턴의 왕성한 성욕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일종의 '성중독증 일까?  


1998년 1월 25일 <워싱턴포스트>는 클린턴 대통령은 가계 전체가 '중독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클린턴의 계부는 알코올 중독, 이복동생인 로저는 코카인 등 약물 중독으로 실형을 살기도 했고 그의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모르핀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1월 21일 힐러리에게 거짓말을 했던 클린턴은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8월 15일 아침에야 잠자는 힐러리를 깨워 진실을 털어놓았다.  

"7개월 전에는 너무 창피했고 당신이 얼마나 상처받고 분노할지 알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는 변명이었다. 
이에 대해 힐러리는 어떻게 반응했던가?


"나는 숨이 탁 막혔다. 
숨을 헐떡여가며 나는 울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무슨 말이야. 
왜 내게 거짓말했어? 
나는 점점 더 분노했다. 
그는 그저 그 자리에 선 채로 계속해 '미안해 미안해. 
나는 당신과 첼시를 보호하려 했어'라고만 되풀이했다.  


기쁘나 슬프나 지난 20여 년간 우리는 부부였고 제일 친한 친구였고 파트너였다. 
그는 우리 딸에게는 좋은 아버지였다. 
그는 내 신념을 짓밟았고 내게 상처를 입혔으며, 적들에게 먹이를 던져줬다. 
아내로서 나는 그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내 남편일 뿐 아니라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빌은 미국과 세계를 내가 지지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나는 빌과 함께 늙어가길 바랐다."

힐러리가 2003년 출간해 첫날 20만 부가 팔려나가는 등 화제를 모은 회고록 <살아 있는 역사(Living History)>에서 털어놓은 말이다. 
 

그녀는 목을 비틀고 싶을 정도로 분노의 대상이었던 바람둥이이자 거짓말쟁이인 클린턴과 왜 이혼하지 않았을까? 
단지 함께 늙어가길 바랐다는 말로 설명이 될 수 있을까? 
일부 사람들은 그건 바로 힐러리의 권력욕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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