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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Nov 11. 2021

아픈 손가락, 미르

우연히 우리 가족이 된 미르 이야기




볕 좋은 낮 시간에 미르와 아잉이를 데리고 

아파트 주위를 아내와 산책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오늘은 아내가 다른 일로 같이 하지 못해 혼자 미르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검은 푸들에 약간의 대인 공포증 같은 것이 있어 늘 목줄에 신경을 쓰지만, 

아파트 입구를 나서는 길목에서 우연히 마주친 40대 후반의 등산용 스틱을 든 남자를 보자

 미르가 흥분해서 짖기 시작했고 황급히 미르를 재촉해 지나쳤다.


등 뒤에서 “개XX, 죽여XXX” 소리가 들렸다.
 순간 돌아서서 맞붙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가든 길을 갔다.

 

2010년 2월, 유난히 추었던 날, 

외근을 나갔다 돌아온 회사 사장님이 검정색 푸들을 데려왔다.


 차들이 속도를 내고 달리는 도로 가를 혼자 걷고 있어 

죽을 것 같아 데려왔다고 했다. 


주인을 찾기 위해 전단지를 만들어 주위에 붙이고 뿌렸지만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가족들이 키우기로 했고, ‘미르’ 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냈던지 목욕을 몇 번해도 검정 땟물이 빠지지 않았고,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지나칠 정도로 강한 미르에게는 

쉽게 사람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떠도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몽둥이를 든 사람을 보면 무섭게 돌변해서 달려들었고 눈에 살기를 띄었다. 


 세월이 지나 미르가 가진 특별한 성향은 많이 부드러워지고 좋아졌지만, 

막대기를 든 나이 든 남자를 보면 흥분하는 경향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이런 정황을 미루어 미르가 버림받기 전, 

주인이 40-50대 남자로 미르의 독특한 성향을 바로잡기 위해 몽둥이로 학대를 했고 

살기를 띠고 덤비는 미르를 감당하지 못해 길가에 버렸을 것이라 추측했다.

이렇게 미르는 ‘아픈 손가락’으로 우리 가족이 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동물을 싫어했고 무서워했다. 


 그런 나를 동물들은 용케 알아보고 달려들어 주눅 들게 했고, 

주인이 와서 잡아 주어야 길을 지날 수 있었다. 


 반려견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의 옛 모습이 생각났다.

 그리고 달라진 내 모습이 대견스럽고 

반려견이 주는 행복을 그들도 누릴 수 있길 기대한다



늘 즐거웠던 산책길이 오늘은 그러지 못했고 하루 내내 불쾌했다. 

그러는 순간, 미르의 트라우마가 오늘 만난 낯선 사람에게 옮겨 갔다. 

 그런 행동이 나온다는 사실은 미르와 같은 깊은 트라우마가 있던지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지난 일로 생긴 불쾌함과 사람을 미워했던 감정이 나아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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