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내 Sep 27. 2024

준비되지 않은 100세 시대(2)

베이비부머의 퇴직

대한민국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 100세를 향해 가고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근심은 늘어만 간다.

오래 산다는 것은 인간의 강력한 욕망이지만 경제적, 신체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면 장수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100세 시대를 마냥 즐겁게 받아들일 수 없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온 100세 시대에 대비해 베이비부머 세대의 현실을 살펴보자.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는 상황은 여러 이유로 이전과 너무 다르며 설상가상으로 '낀 세대'가 되어 있다.  

이들은 부모님을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녀에게 봉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 즉 '마처 세대'다.

줄 건 다 주고 자신은 못 받는 세대다. 

거기에다 고령화와 저성장을 맞게 된다.  

국가재정이 악화되고 연금재정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수명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고, 노후자금은 넉넉지 못하고, 국가의 연금재정은 불안한 상황에서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는 실험 세대다. 
  

우리나라는 2023년 65세 이상 비율이 총인구의 19퍼센트로 초고령사회 진입을 1퍼센트 포인트 앞두고 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때 60년대생은 55~65세에 속해 있고 수적으로도 860만 명에 이른다. 

시기적으로나 수적으로나 앞으로 20년 이상 초고령사회의 중심축이 된다.  

인생 전반을 고성장과 민주화의 주역으로 보내고 후반에서는 초고령사회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베이비부머의 재취업 현황

재취업 현황을 보면 5060 퇴직자의 83퍼센트가 재취업을 한다.

그리고 지금도 일하고 있는 사람은 10명 중 6명이다. 
재취업자의 절반이상이 2~3개의 직장을 옮기면서 일한다.  

퇴직 후 재취업을 하면 근로조건이 크게 변한다. 


첫 재취업에 가장 큰 폭의 변화가 일어난다. 
퇴직 전에는 89퍼센트가 정규직 혹은 상용직 일자리에 있었지만 퇴직 후 첫 번째 일자리에서 상용직 비율은 46퍼센트로 뚝 떨어진다.  

사업장 규모도 30인 미만인 곳에 재취업하는 비중이 퇴직 전에는 36퍼센트였다가 퇴직 후에는 55퍼센트로 증가한다.  

단순노무 종사자가 퇴직 전에는 4퍼센트였다가 첫 번째 재취업에서는 20퍼센트로, 두 번째 재취업에서는 33퍼센트로 증가하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근로조건 악화는 임금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퇴직 전의 월평균소득은 426만 원이었으나 퇴직 후 첫 번째 재취업 일자리에서 소득은 퇴직 전 소득의 63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두 번째 재취업 일자리에 가게 되면 퇴직 전 소득의 54퍼센트 정도가 된다. 

재취업할 때 가장 아쉬운 점이 소득의 급감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취업할 때는 좋았지만 퇴직할 때는 열악한 환경에 놓인다. 

2,000만 명에 가까우니 퇴직을 하고 또 해도 여전히 많은 수가 직장에 있다.  

이들이 취직할 당시에는 노동집약적 산업 위주라 많은 인력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자본집약적 산업 위주인 데다 자동화로 인력 절감까지 되고, 설상가상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다 보니 인력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10년 이상은 퇴직의 줄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50대 중반 한창때 주된 직장을 나오고, 주된 직장에서 근무 기간이 25년 정도이니 노후 준비는 되어 있지 않고, 불가피하게 찾는 재취업시장의 근로조건은 열악하다. 
노후가 준비되지 못한 베이비 부머 세대는 열악한 노동시장에서 73세까지 일을 해야 한다. 



79달러에  태어나 3만  달러에 퇴직

1960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79달러로, 아프리카 가나와 그 수치가 비슷했다.
튀르키예가 275달러였다. 
60년대 생은 이때 태어났다. 

지독하게 가난할 때 삶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1인당 GDP가 3만 4,000달러에 달한다. 
1996년에는 일찌감치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이 되었다.

이처럼, 60년대생은 지독하게 가난한 때 태어나서 급성장기에 삶의 중요한 시기를 살고, 이제 인생 후반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그들은 진정 극과 극의 삶을 체험한 세계에서 유일한 세대다.


소득 79달러 사회의 모습은 어땠을까? 

60년대에는 일자리가 없어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 
군대와 대학이 일시적 피난처였다. 
논밭과 소를 팔아 대학을 나왔는데 일자리가 없는 고등실업자가 양산되었다.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만 일자리가 없었던 게 아니라 그 당시에는 대학을 나와도 고등실업자가 되었다. 
영화에서 나오듯 실업 문제의 출구는 월남에서 열렸다. 
베트남 전쟁에서 약 10억 달러 이상의 외화가 벌렸다. 
경제성장률도 월남 파병 이후 연평균 11.8퍼센트(1965~1969)로, 1960년대 전반에 비해 두 배가 넘었다.


성장을 했다고는 하지만 경제는 여전히 어려웠다. 

1970년대 오일쇼크의 충격을 중동 건설 붐을 통해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가 되자, 경제는 봄을 맞이한 것처럼 꿈틀거리며 살아나기 시작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를 계기로 달러 약세, 저금리, 저유가가 동시에 진행되는 '3저 시대'가 열렸다.  

달러 약세와 저금리로 외채 부담이 줄고, 수출액이 증가하고, 저유가로 원유 수입액은 줄었다. 
신군부는 물가 안정 등 경제체질 강화에 주력했다. 
체질을 강화하면서 때를 기다리던 중 세계적으로 찾아온 3저 환경은 그야말로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1960년 79달러이던 1인당 GDP가 1980년 1,714달러로 증가했는데, 1987년에는 무려 3,555달러를 기록했다. 

가구원 수가 4명이라고 하면 가구당 소득이 6,800달러에서 1만 4,000달러로 두 배가 된 셈이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60년대생은 바로 이때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 호황이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지속되었으니 우리나라 경제가 날개를 펼 때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부모세대는 어려웠지만 60년대생이 사회 활동을 시작할 때의 경제 환경은 행운 그 자체였다. 
그야말로 졸업장만 가지면 5~6개 기업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80달러에서 1,000달러로 성장하는 것, 1,000달러에서 1만 달러로 성장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3만 달러는 차원이 다르다. 

1만 달러, 2만 달러는 중진국이라는 말을 듣지만 3만 달러를 넘어가면 선진국이란 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너무나도 가뿐하게 선진국이 되었다. 
60년 대생들이 과장, 부장일 때의 성장이다. 
직장에 들어갈 때도 좋은 환경이었지만 한창 직장에서 성장할 때도 좋은 환경이었다.


60년대생은 숫자로 본다면 79달러에 태어났고, 3저 호황 때 직장을 들어가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 20년의 호황을 충분히 누린 뒤, 3만 달러에서 퇴직하고 있다. 

후진국, 중진국, 선진국을 50년 삶에서 모두 경험한 유일한 세대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세대는 60년대생이 유일할 것이다.  


이제 이 세대가 퇴직하면서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준비되지 않은 100세 시대(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