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구를 위한 비상계엄인가?

by 산내

가을이 깊어 갈 무렵, 유튜브를 보고 있던 아내가 겁먹은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를 준비한다는데…”
“비상계엄이 무슨 말이고?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댄데, 비상 계엄령이라니…”


우리의 경제 수준이나 의식 수준을 감안했을 때 비상계엄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누가 그런 쓸데없는 유언비어 퍼뜨리노?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대한민국인데…”
이렇게 말하며 아내를 현실을 모르는 사람으로 몰아가자 아내는 입을 닫았고 더 이상 비상계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12월 3일 화요일 저녁, 박구윤이 현역 가수들이 겨루는 경연프로에 나와 자신의 인기곡 <뿐이고>를 부르며 흥을 돋우고 있는데 화면 아래에는 붉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계속해서 속보가 뜬다.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그러던 중 갑자기 화면이 바뀌어 마이크 앞에 앉은 윤석열 대통령이 종북 세력, 반국가세력 운운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황당해하며 TV를 주시하니 국회의사당으로 헬기가 날아가고 국회 정문을 경찰들이 막아 선 가운데 계엄군이 국회에 도착하는 모습이 생중계된다.

국회로 진입하려는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들어 가는 모습이 보였고 의사당 회의실에는 국회의원들이 모이기 시작했지만 비상계엄 해제 안을 투표에 부칠 정족수에는 한참 부족해 보였다.


계속해서 울려대는 카톡 알람과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에 잠에서 깬 아내가 거실로 나와 걱정스러운 눈길로 TV를 주시한다.

자정을 넘긴 시간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안이 통과되어 계엄군이 철수하여 계엄의 위기는 넘겼고 시민들은 ‘윤석열 체포’를 외치며 국회 앞 시위를 이어갔다.



다음 날 새벽, 윤석열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나라를 책임지는 통수권자의 절박한 심정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되었다며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지 모르는 듯했다.

대통령의 나라를 걱정하는 절박한 마음에 계엄을 선포했다는 말이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이 절박한 상황은 자신의 정치적 무능력에서 비롯되었는데 군대를 동원해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약 기업을 운영하는 사장이 자신의 기업이 파산의 위기에 처해 흉기를 들고 은행이나 부잣집에 들어가 금품을 강탈하고 나서 기업을 살리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한다면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까?


계엄이 해제되자 이번 사태가 참 허술하게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들이 치밀하게 계획해 국지전을 일으키거나 국가 소요사태를 조장해 계엄사태를 정당화시켰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피를 흘렸을까 생각하니 그들의 허술함이 다행스럽다.


하지만 이렇게 허술하고 현실 감각이 부족한 사람들이 우리의 안보와 후손들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강한 의문이 고개를 든다.

이들에게 우리의 안보와 미래를 맡겨도 되는 걸까?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옷을 따뜻하게 챙겨 입고 거리로 나선다.

산내로고.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퇴직 후 무기력에 빠지지 않는 7가지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