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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와인(1)

골라 마시는 재미

by 산내

이탈리아는 전국 방방곡곡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장인의 손맛이 나는 포도주를 생산하는 포도원이 많다.

산업적으로 배양된 표준 효모가 아니라 집집이 자연 효모를 쓰기 때문에 바로 옆 동네에서 만들었는데도 그 맛이 전혀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포도주를 가리켜 "하늘로부터의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다.

꼭 포도주가 아니라도 술이라는 음료는 정말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당히만 마시면 그 취기가 인간의 이성으로 잠긴 마음의 빗장을 풀고 숨겨진 감성을 드러낸다.


언제부터인가 포도주가 우리 문화에도 훌쩍 가까이 와 있다.

아름다운 촛대와 꽃이 올라 있는 저녁 테이블 위의 붉은 포도주는 매혹적이다.

그렇게 포도주는 럭셔리한 이미지로 다가와, 격식과 멋진 분위기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 포도주를 만드는 나라에 가보면 동네 친구들과 정겹게 나누는 막걸리와 다르지 않은 데 놀라게 된다.

유럽의 유명한 포도원 대표도 막상 만나보면 얼굴이 구릿빛으로 타고 손이 거친 농부의 모습이다.

사실 비즈니스에 눈뜬 대단위 포도원이나 전문 와인 중개상들을 제외하면 유럽의 대다수 포도원 주인들은 거의 이런 모습이다.

땅과 하늘과 포도만 바라보며 일생을 살아온 장인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하겠다.

전 세계에서 가장 포도주를 많이 마시는 나라는?
포도주 하면 그 생산량이나 명품 와인의 명성에 있어 프랑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땅덩어리로 봐서는 미국이나 호주도 만만치 않지만 사실 포도주 생산이나 소비량이 프랑스에 필적하는 나라는 이탈리아다.


한국과 지형이 매우 비슷해서 등줄기에 아펜니노 산맥이 자리 잡고, 국토에 평야가 별로 없으며 자원도 부족하지만, 신께서는 '포도주'를 이 땅에 선물하셨다.

일조량 좋은 지중해성 기후이다 보니 어디에서나 포도가 탱글탱글 잘 여물고, 국토의 80퍼센트가 산지여서 물 빠짐이 좋아 포도원 하기에 최적화된 지형이다.


이탈리아는 전국 방방곡곡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장인의 손맛이 나는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이 많다.

그러다 보니 품질의 편차가 많을 수밖에 없지만 대부분이 자국에서 소비되다 보니 사실 표준화할 필요도 별로 못 느꼈다.

그래서 세계 시장에 나오며 좋지 못한 평판을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이탈리아도 1960년대에 들어오며 변하게 된다.

수출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프랑스를 모델로 품질 관리와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탈리아 포도주에는 재미나는 부분이 많다.

같은 값이라도 잘못 고르면 품질이 영 형편없을 수도 있고, 반대로 헐값에 생각지도 않은 보물을 건져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포도주 애호가 중에는 이탈리아 포도주 마니아들이 많다.

골라 먹는 재미에 수천 년의 시간과 땅의 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모스카토'라는 청포도 품종으로 만든 도수 낮고 달달한 백포도주가 히트를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탈리아 백포도주는 모두 달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인들, 특히 여성들이 포도주에서 단맛을 기대하다 보니 수입업체들이 선별해서 가져온 것일 뿐,

이탈리아만큼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다양한 포도주를 생산하는 나라도 없다.


이탈리아인의 포도주에 대한 자부심은 프랑스를 뛰어넘지만 이들에게 포도주란 일상 그 자체이며, 뭐 특별히 이야기할 거리도 못 된다는 식이다.

패션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프랑스가 뛰어난 시스템과 마케팅 실력을 자랑한다면 이탈리아는 라틴 계통의 민족적 특성상 어딘가 느슨하고 엉성하지만 특유의 쿨함과 여유, 그리고 열정이 합쳐져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다.

로마로부터 물려받아 수천 년이라는 시간을 축적한 대국적인 여유가 몸에 배어 있는 거다.


이탈리아가 포도주 품질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반면 프랑스는 19세기말부터 자국의 포도주를 정부 차원에서 관리, 마케팅하는 체계를 잡아왔다.

그러나 포도주의 나라로 불리는 이탈리아는 관리 같은 것은 꿈도 못 꾼 채 20세기를 맞았다.


19세기까지도 독립국을 이루지 못하고 각각의 도시 국가로 나뉘어 세력 다툼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에도 이탈리아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가난했다.

게다가 이들이 포도주를 우리네 된장, 고추장처럼 그저 밥 먹을 때 언제나 상에 오르는 식품으로 생각한 것도 세계화에는 걸림돌이 되었다.

하지만 앞서 간 프랑스의 잘 정비된 제도와 늘어나는 수출을 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 부랴부랴 프랑스의 제도를 벤치마킹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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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탈리아 포도주는 네 개의 등급으로 나뉜다.

가장 낮은 등급인 비노 다 타볼라는 국민 와인이다.

그 위 단계는 지방 포도주인 IGT, 그다음이 바로 원산지를 관리하는 고급 등급인 DOC와 최고 등급인 DOCG이다.


이중 맨 위 두 등급인 DOC와 DOCG는 전통적으로 극소수의 지역에서만 생산되는데

이는 토양이나 기후대에 따라 포도원의 지리적인 경계, 재배하는 품종과 사용 비율, 단위 면적당 포도 수확량, 알코올 함량, 숙성 기간 등을 최적화된 상태로 한정하여 품질을 유지하려는 정책이다.


IGT는 지방에서 생산되는 포도만 쓰면 나머지 비율이나 품종 등은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롭고 가장 하위 등급인 비노 다 타볼라는 '테이블 포도주'라는 의미로

이탈리아 내 포도주를 마음대로 혼합한 것이다.

이 둘이 전체 생산량의 약 90퍼센트를 차지한다.


결국 10퍼센트 정도만이 DOC나 DOCG에 속하므로,

정부의 규제를 받는 고급 포도주의 범주는 상당히 좁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는 35퍼센트, 독일은 민족적 성격답게 98퍼센트가 법적 규제를 받는 것과 비교해 볼 때

턱없이 적은 양이다.


이 말은 믿을 만한 등급 내에 있는 포도주가 적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일률적인 법적 규제 밖에서 전통이나 창의성을 고수하면서 훌륭한 포도주를 생산하는

포도원들이 많다는 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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