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향기

아로마와 부케

by 산내

"와인은 향으로 마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향은 와인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이 구별할 수 있는 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정도지만 향은 다르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무려 만 가지의 향을 구별할 능력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향수 회사 겔랑의 조향사 티에리 바세는 "향수를 만들 때 약 3,000가지에 이르는 향을 사용하며, 조향사는 이 향들을 모두 구별하고 기억해 낼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향에 관한 한 인간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한 셈이다.

와인의 향을 맡을 때는 와인을 잔에 따른 뒤 가볍게 한 번 맡고, 다시 잔을 스월링 해서 풍부하게 발산되는 향을 느껴본다.

이때 초심자라면 여기서 나는 향이 무엇이라고 표현할 방법을 찾기 힘들 것이다.
향은 누구나 맡을 수 있지만 어떤 향인지 감지하는 데는 훈련이 필요하다.

미각이 어느 정도 선천적인 능력에 의존한다면 향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발달시킬 수 있다.

다만 향을 지각하고 암기하는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미스터리한 향으로만 남을 뿐이다.



와인의 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아로마와 부케다.

아로마는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향이고, 부케는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과정, 즉 와인생성 과정에서 탄생하는 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소비뇽 블랑이라는 청포도로 와인을 만든다고 가정했을 때 이 포도 품종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향인 구스베리, 자몽, 복숭아, 패션프루트 같은 것들이 와인에서 그대로 느껴진다면 아로마라고 할 수 있고, 이 품종을 오크통에서 발효시키고 숙성했을 때 나무에서 얻어지거나 숙성 중에 생기는 향들은 부케다.


와인이 병에서 숙성 중에 생기는 향까지 더해 총 세 가지의 향이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와인의 향은 실제로 분석이 가능한 휘발성 화합물로 와인 안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소비뇽 블랑 품종으로 만든 와인에서 특징적으로 나는 잔디 혹은 허브 향은 메톡시피라진에 의한 것이다.

와인에서 나는 다채로운 향을 느끼는 건 와인을 즐기는 가장 큰 즐거움이지만, 초심자는 물론 와인을 꽤 오랜 시간 즐겼던 사람에게도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아로마 휠이 존재한다.

아로마 휠은 와인의 향의 구별하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그러면 어떻게 와인의 향을 느낄 수 있을까?

어느 정도 향에 관한 생각을 정리했다면 머릿속에 상기하면서 입안에 와인을 넉넉하게 담아 잠시 머금는다.
이때 와인의 향과 맛을 더 살아나게 하기 위해 입안으로 공기를 후루룩 들이마시기도 하는데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는 추천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두세 번에 걸쳐 와인을 목구멍으로 넘긴 뒤, 아주 중요한 잔향을 맡는다.

정확히는 잔향의 길이를 재는 것이다.
이때 느껴지는 와인의 여운은 와인의 품질과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잔향을 맡으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향 바구니 안에 마지막까지 남는 향이 무엇이고 얼마나 오래도록 향이 남는지 그려본다.


시간이 지나면 잔에서 발산하는 와인의 향이 변화한다.
캐러멜 향이 올라온다든지, 원두 향이 난다든지, 처음에 느끼지 못한 향을 감지할 수도 있다.
이 단계를 모두 거쳤다면 와인의 향을 온전히 즐겼다고 할 수 있다.


와인을 입으로 넘길 때마다 매번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고, 첫 잔의 첫 모금에는 이 과정을 거친다.

그런 뒤에는 마음 놓고 음식과 와인을 편하게 즐기면 된다.
복합적인 향이 올라오는 위대한 와인을 만나면 1분을 넘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일상적으로 즐기는 데일리 와인들은 위의 모든 과정이 30~40초 정도면 끝나므로 그리 번거로운 일은 아니다.

이것이 익숙해지다 보면 음식을 먹을 때도 종종 첫 입은 향을 먼저 말고 천천히 씹어 넘긴 뒤 잔향까지 느낀다.

이 과정을 즐기려면 '테이스팅을 해야지' 하고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무의식적으로 음미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이 과정들이 귀찮게 느껴진다면?
그냥 마시면 된다. 그저 편하게 마시고 즐기기만 해도 좋은 것이 바로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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