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가문 로칠드가 지켜낸 와인

by 산내

잘 알려졌다시피 나치는 전쟁을 통해 수많은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했다.
그중 와인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 로칠드가문일 것이다.

병당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전설적인 와이너리인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무통 로칠드를 탄생시킨 사람들이다.

오래전 마이어 로칠드에게는 다섯 아들들이 있었다.

야심 찬 마이어는 다섯 형제를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들로 보내 유럽을 연결하는 금융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 다섯 도시는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스트리아 빈, 이탈리아 나폴리였다.
이렇게 다섯 나라의 도시로 뻗어간 자손들은 로칠드 분파를 담당하며 국제 금융을 움직여왔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나치가 유럽을 움켜쥐자 추축국이었던 독일과 이탈리아의 로칠드 분파는 가까스로 철수할 수 있었지만, 오스트리아 분파는 전쟁의 시작과 함께 시련을 겪었다.

전쟁 전 오스트리아 분파는 은행과 철도 사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명문가로 입지를 단단히 했지만,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흡수 합병되자 재산을 몰수당했다. 결국 루이 나다니엘 로칠드 남작을 제외한 가문의 사람들은 도망치거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한편, 프랑스 지파는 파리의 금융과 보르도의 와인 산업을 주도해 왔다.
영국 런던 분파의 나다니엘 드 로칠드는 프랑스로 돌아와 보르도의 포도밭을 매입해 샤토 무통 로칠드를 만들었다.

이후, 나다니엘의 삼촌 제임스 마이어 로칠드도 포도밭을 매입해 샤토 라피트 로칠드를 손에 넣게 되었다.
특히 나다니엘의 아들 필립 드 로칠드는 와인 역사에 기념비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20세에 샤토 무통 로칠드의 경영을 맡은 그는 최초로 와이너리에서 직접 와인을 병입 했다.

또한 포도의 품질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자 과감히 샤토 무통 로칠드의 이름을 포기하고 무통 카데(무통의 막내)라는 이름으로 와인을 출시한 선구자적인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1855년 보르도 와인의 등급 분류에서 2등급으로 지정된 샤토 무통 로칠드를 1973년 1등급으로 승급시키는 데 성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공습으로 프랑스 파리를 점령했고, 가문의 사람들은 스위스로 몸을 숨겼다.

로칠드 가문의 파리 저택에는 독일 해군 사령부의 본부가 들어섰고, 필립은 오랜 구금 생활을 해야 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곧바로 포도밭으로 돌아와 황폐해진 포도밭을 복구하는 것에 온 힘을 다했고, 전쟁이 끝난 1945년 전쟁에서 살아남은 포도로 귀한 와인을 만들어냈다.

바로 샤토 무통 로칠드 1945년 산이다.
이 와인의 레이블에는 승리의 알파벳 V가 새겨져 있다.

유대인을 위한 코셔 와인

로칠드 가문이 이스라엘 와인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건 와인 업계에서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스라엘 최초의 와이너리인 '카멜 와이너리'와 현재 이스라엘 와인 산업을 대표하는 '골란 하이츠 와이너리 '가 모두 로칠드 가문에 의해 시작됐다.
그리고 이 두 와이너리에서는 유대인을 위한 '코셔 와인(Kosher wine)'을 만들고 있다.

유대인들은 유대 율법 따라 만들어진 와인을 마셔야 하며,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을 코셔 와인이라고 한다.

코셔 와인을 만들기 위한 규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대교의 안식일을 엄격히 지키는 와인 양조장에서 와인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전통에 위배되거나 인증을 받지 않은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셋째, 포도밭은 매 7년을 주기로 휴식기를 가져야 한다. 이때는 어떠한 생산적인 농작을 할 수 없다.

넷째, 유대인이 판매하는 와인이어야 한다. 유대인이 판매할 수 없는 경우 살균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섯째, 십일조의 의미로 생산된 와인의 1% 이상을 버려야 한다.

여섯째, 포도나무는 처음 3년간은 와인을 만들 수 없고, 4년째부터 양조할 수 있다.


코셔 와인을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까다로운 과정이다.

이 조건들을 모두 지킨다면 이스라엘이 아닌 곳에서도 코셔 와인을 만들 수 있어 현재는 전 세계 와인 산지에서 코셔 와인을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 전체 와인 생산량에서는 코셔 와인이 2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발효주가 아닌 중류주에 대한 규정은 열려 있기 때문에 만약 유대인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 코셔 와인을 구해 가기 어렵다면 중류주를 준비하는 것도 문화적 배려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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