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승덕의 지백
학창 시절 싫어했던 과목은 국사와 세계사였다.
국사도 어려운데 세계사는 입에 붙지도 않는 이름에 지명까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중년이 되어 역사서적에 흥미가 생겼고 책을 가까이하면서 이를 글로 남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얕은 지식으로 글을 쓴다는 부담은 있지만 용기를 내어 먼저 춘추, 전국 시대 중국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재주와 덕을 온전히 다 갖춘 사람을 '성인'이라고 하며, 재주와 덕이 아울러 없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며 덕이 재주보다 많은 사람을 '군자'라고 하고, 재주가 덕보다 많은 사람을 '소인'이라고 한다.
재주는 뛰어나지만 덕이 없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춘추시대 지백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진(晉)의 대부 지선자가 장자인 지백을 후사로 삼으려고 하였는데, 지과가 말하였다.
"지백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것이 다섯이나 있지만 모자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름다운 턱수염이 길고 큰 것이 뛰어나고,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것이 뛰어나고, 기예가 뛰어나고, 교묘한 문장과 은혜를 베푸는 말솜씨가 뛰어나고, 세고 굳고 과감한 것들이 뛰어납니다.
이와 같지만 그는 아주 어질지 못합니다.
만약에 끝내 지백을 세우면 지 씨 종족은 멸망할 것입니다."
지선지는 지과의 말을 듣지 않고 지백에게 권력을 물려주었다.
지백이 정치를 맡게 되어 한강자에게 땅을 요구하자 한강자는 땅을 주지 않으려 하였지만 측근인 단규가 말하였다.
"지백은 이로운 것을 좋아하고 또 괴팍하니, 주지 않으면 장차 우리를 칠 것이므로 그에게 주느니만 못합니다.
저 사람은 땅을 얻는 일에 맛 들여서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도 요청할 것이고, 다른 사람이 주지 않으면 반드시 군사로 그에게로 향할 것이니, 그런 다음에 우리는 환난에서 면할 수 있고 일의 변화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한강자는 말하였다.
"훌륭하오."
사신을 시켜서 1만 가구의 읍을 지백에게 보내주었다.
지백은 기뻐하였다.
땅을 취한 지백이 또다시 위환자에게도 땅을 요구하였더니 위환자 역시 주려고 하지 않았다.
가신인 임장이 물었다.
"어떠한 연고로 안 주십니까?"
위환자가 말하였다.
"아무 까닭 없이 땅을 요구하니 그런 까닭에 안 주는 것이오."
임장이 말하였다.
"아무 연고 없이 땅을 요구하니 여러 대부들은 반드시 그를 두려워할 것이고, 우리가 그에게 땅을 주면, 지백은 반드시 교만해질 것입니다.
저 사람이 교만해지고 적을 가벼이 생각하여 지백의 운명은 반드시 길게 가지 못할 것입니다.”
위환자가 말하였다.
"훌륭하오."
다시 1만 호의 읍 하나를 그에게 주었다.
지백은 또 조양자에게 채와 고랑 땅을 요구하였는데, 조양자는 주지 않았다. 지백은 화가 나서 한 씨와 위 씨의 갑병을 인솔하여 조 씨를 공격하였다.
세 집안이 진양을 포위하고 그곳에 물을 댔는데 부엌은 물에 잠기고 개구리가 알을 낳았지만 백성들은 배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양자는 장맹담으로 하여금 몰래 성을 빠져나가 한강자와 위환자를 만나보고 말하게 하였다.
'신이 듣건대,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고 합니다.
지금 지백이 한·위를 인솔하여 우리 조를 공격하고 있는데, 우리 조가 망한다면 한·위는 다음 차례일 것입니다."
두 사람은 마침내 몰래 장맹담과 합세해 진을 치기로 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조양자가 밤에 사람을 시켜서 제방을 지키는 관리를 죽이고 물고를 터서 지백의 군대로 물을 댔다.
지백의 군대가 물을 해결하려고 혼란스럽게 되자, 한·위는 양쪽 날개가 되어 그를 공격하고 조양자는 병졸을 거느리고 그 앞을 치고 나가서 지백의 무리를 대패시키고, 드디어 지백을 죽이고 지 씨 종족을 없애버렸다.
지백은 재주가 뛰어났지만 인성을 갖추지 못해 지과가 예측한 대로 지 씨 종족을 멸망의 길로 이끈 소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