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희공이 운명하자 그 아들 양공이 정치를 맡았지만 양공이야말로 희대의 패륜아이자 무능한 자였다.
희공이 정세 파악에 출중한 관중에게 둘째 아들을 맡기고, 정의롭고 강직한 포숙에게 셋째 아들을 맡긴 것은 이런 상황을 예측했기 때문일까?
<좌전>에는 양공이 집권하자 포숙은 희공의 막내아들 소백을 데리고 난리를 피해 거나라로 달아나면서, "지금 군주는 백성 다스림이 방자하다. 장차 난이 일어날 것이다" 했다.
반면 관중은 양공을 폐하려는 쿠데타가 발생하자 노나라로 달아났다.
그렇다면 도대체 양공은 어떤 사람일까?
양공에게는 할아버지 장공과 아버지 희공이 오랫동안 집권하면서 회복해 놓은 국력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날카로운 검을 뛰어난 위사가 가지면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하지만, 불한당이 가지면 사람을 해치는 이치다.
사단은 안팎에서 동시에 자라고 있었다.
양공 즉위 2년, 제나라 군대는 노나라와 국경 분쟁을 벌였다.
제나라 군대가 먼저 침입했지만 약한 노나라는 수동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제나라 양공이 노나라 군주보다 더 도덕적이라면 이런 분쟁은 큰 문제없이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양공은 그렇게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성정이 포함하고 정욕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노나라의 환공은 제나라의 공녀를 부인으로 맞았는데 그 여인은 오라비인 양공과 애초에 특이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문강이다.
노나라 환공 18년, 제나라 양공 4년, 환공이 처남인 양공을 찾았다.
약한 제후가 강한 제후를 찾는 일은 일종의 외교적인 수단이었다.
그런데 노나라 환공이 부인 강 씨를 대동하려고 했다.
아마 강 씨가 가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러자 양공과 문강 남매의 부도덕한 관계를 알고 있는 노나라의 신수가 사단을 막기 위해 데려가지 말라고 했으나, 문강이 고집을 부려 결국 환공과 함께 제나라로 떠났다.
문강은 제나라에 도착하자 이내 오빠와 통정했다.
이 남매가 얼마나 공공연히 정을 나누었는지, 결국 환공도 알게 되었다.
힘없는 나라의 군주란 이럴 때 비참해진다.
특히나 상대는 호시탐탐 노나라를 노리는 양공이 아닌가?
환공은 약한 나라의 군주로서 어쩔 수 없이 그저 아내의 행실을 꾸짖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문강은 오빠이자 연인인 양공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고자질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때 부끄러워하고 사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남녀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극히 사악한 자들이었다.
문강과 양공은 아예 환공을 죽여 입막음하려 했다.
그들의 수단은 악랄하고 교활했다.
이른바 완전범죄를 노린 것이다.
양공은 잔치를 베풀어 환공을 술에 취하게 한 후, 힘이 장사인 공자 팽생에게 환공을 안아 수레에 태우는 척하면서 뼈를 부러뜨리게 했다.
팽생은 엄청난 역사인지라 환공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노나라 사람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힘이 없어 항의하지도 못하고 할 수 없이 희생양을 찾았다.
그래서 말했다.
우리 작은 노나라의 군주께서는 제나라 군주의 위세가 두려워 감히 편안히 계시지도 못하시다가, 이렇게 내방하여 옛 우호를 담으셨습니다.
예를 다하였으나 이제 돌아갈 곳도 없게 되었습니다. 제후들 보기도 민망하니, 청컨대 팽생을 죽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양공은 애꿎은 팽생을 죽여 액땜을 했다.
노나라에서는 새 군주 장공이 즉위했다.
노나라 사람들은 군주를 죽음에 이르게 한 문강을 용서할 마음이 없었다.
문강은 압박을 피해 제나라로 피신한다.
이제 노나라와 제나라는 사실상 원수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제나라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제 양공은 척을 진 사람이 무척 많았다.
원래 신의를 모르는 인간이란 적이 많은 법이다.
우선 사촌인 공손무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양공의 아버지 희공은 조카인 무지를 아껴서 태자와 동등하게 대우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양공은 즉위한 후 곧 무지의 대우를 깎아내렸다.
이로 인해 무지는 양공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또 양공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국경 수비를 위해 파견된 연관지보였다.
원래 양공은 이들에게 만 1년이 지나면 교대해 주겠다고 했으나 1년이 지나자 말을 바꾸고 교대할 군사를 보내지 않았다.
이제 양공을 제거할 음모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양공을 죽이고 자리를 이을 공실의 자손 무지가 있고, 또 군대를 거느리고 있는 장수들이 도성 근교에 있으니 판은 다 짜진 셈이었다.
마침 연칭의 사촌 누이가 궁에 있었으나 군주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연칭이 미끼를 들고 그녀를 회유했다.
"양공의 동태를 잘 살펴라. 싸움에서 이기면 너를 정부인으로 앉히겠다."
양공은 잔혹한 사람이다. 사냥을 나가 부상을 당하고 신발을 잃어버리자 시종인 '비'를 문책했다.
양공은 비를 피가 날 때까지 채찍으로 때렸다.
연칭, 무지 등은 양공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궁으로 들이쳤다.
그러다가 시종 비와 마주쳤다. 비는 비록 양공의 시종에 불과했지만 불가사의하게 인품이 고귀한 사람이었다. 그는 양공을 살릴 요량으로 재빨리 기지를 내어 말한다.
"이렇게 소란을 떨다가는 궁으로 들어가기 힘듭니다."
비는 양공에게 맞은 등의 상처를 보여주고 사람들을 궁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먼저 궁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재빨리 양공을 문틈에 숨긴 뒤 시종들을 데리고 연칭 일당에게 반격을 가했다. 그러나 중과부적이었다.
비는 대문 안에서 죽었고, 시종들이 계단 아래에서 죽었고, 맹양이라는 사람은 양공 대신 침대에 누워 있다가 죽었다.
맹양을 본 연칭은 그가 양공이 아님을 알고는 양공을 찾다가 기어이 문 밖으로 삐져나온 양공의 발을 보게 되었다.
양공은 이렇게 적에게 잡혀 죽었다.
잔혹하고 안하무인격인 양공의 최후는 이렇게 끝나게 되었다.